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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재 Sep 15. 2022

결혼하면 뭐가 제일 좋아요?

소소하면서, 확실한

때는 4년 전 초봄이었다. 결혼식을 앞두고 청첩장 모임, 이른바 '앞풀이'를 하기 위해 대학교 때 동아리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나는 모임 내에서 결혼을 일찍 하는 편이었지만 나보다 1년 앞서 결혼한 후배(나이는 나보다 형)가 한 명 있었다. 모임에 참석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서른 전후였고 결혼 안 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결혼 관련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은 그 후배 형밖에 없었다. 그래서 결혼 준비를 어떻게 했는지, 프러포즈를 어떻게 했는지 등의 질문이 후배 형에게로 쏟아지게 되었다. 그러다가 누군가 질문했다. "결혼하면 뭐가 제일 좋아요?"


그렇다.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 가장 궁금한 것 중에 하나는 "결혼하면 뭐가 좋은가?" 이다. 사람이 하는 행위에 모두 목적이나 당위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결혼은 선택 사항이고 대부분 스스로의 판단에 의해 결정하기 때문에 결혼은 분명히 장점이 있을 것이다. 과연 그 후배 형은 어떻게 답했을까? 그 당시 후배 형은 이렇게 대답했다. "자기 전에 누워서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는 거."


결혼을 한 달여 남겨두고 있던 나에게는 무척 공감가지 않는 예상 외의 대답이었다.  후배 형의 덤덤하면서도 흐뭇한 미소가, 쑥쓰러운 듯 행복한 그 표정이 기억에 남는다. 그렇게 앞풀이에서의 질의응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 이유는, 결혼하고 나서 나도 그랬기 때문이다. 내가 결혼하고 나서 가장 좋았던 건, 와이프랑 자기 전에 누워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잠드는 거였다.


우리 부부의 수면 패턴은 꽤 달랐다. 나는 일찍 잠들고 일찍 일어나는 스타일이었다. 11~12시쯤 잠들어서 아침 8시 이전에는 일어났다. 9시가 넘어서까지 침대에 누워 있으면 허리도 아프고, 잠도 그만큼 오지 않았다. 하지만 와이프는 12시가 넘어서도 TV를 보곤 했고, 여유로운 주말에는 오전 10시가 되어서야 일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결혼하고나니 같이 잠들기 위해 조금씩 취침시간을 조정하기도 했다. 그렇게 어두운 방 침대에 같이 누우면, 아무런 주제로 대화가 시작되곤 했다. 오늘 있었던 일, 뉴스에서 본 기사 이야기, 친구 이야기 등등. 그렇게 누워서  서로 맞장구치기도 하고 귀기울여 듣다 보면 어느새 1시간이 훌쩍 지나 있곤 했다.


결혼 상대와 티키타카(대화 주고받기)가 잘 된다는 것은 중요하다. 말이 안 통하는 상대와 함께 생각을 나누고 의견을 조율하는 일은 사회생활과 다른 인간관계에서도 느끼는 것이지만 너무나 어렵고 에너지가 많이 소모된다. 하물며 살면서  많은 사건을 함께 경험하고 많은 생각을 공유하는 배우자라면 그 부분이 정말 중요할 것이다. 아마 후배 형도 배우자 분과 티키타카가 잘 되는 편이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결혼 최대의 장점으로 '잠자리에서의 대화'를 꼽지는 않았을 거니까.


결혼을 한다고 해서, 결혼식이 끝나고 새 집에 입주를 했다고 해서, 혼인신고를 한다고 해서 바뀌는 건 거의 없다. 생활 공간과 많은 시간을 공유한다는 점 외에는 사실 큰 변화가 생기지 않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 생활에 많은 환상을 품고 있는 사람이라면 결혼 직후 실망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결혼의 진짜 장점은, 배우자의 몰랐던 장점과 자신조차 몰랐던 자신의 장점을 발견하는 데에 있기도 하다. 그리고 이러한 '장점 찾기'는 부부간의 대화를 통해서 이뤄질 수 있다.


두 사람이 함께 살다 보면 안 맞는 부분이 수도 없이 많고, 연애할 때와는 다르게 상대방의 장점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단점으로 와닿을 때도 있다. 데이트 때 아끼지 않고 선물을 사던 상대방의 씀씀이가 결혼 후 헤프게 느껴질 수도 있고, 상대방의 부지런하게 생활하는 모습 때문에 자신이 게을르다는 자책을 하게 되기도 한다. 사람은 저마다 세세한 부분 하나하나가 달라서 공통점을 찾기 어렵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리고 마찰이 생길수록, 서로의 다른 부분들을 틀린 부분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달리 말하면 세세하지 않은 부분, 그 사람 자체가 지향하는 방향이 같다면 그런 차이점은 '다름'으로 쿨하게 인정하고 넘어가게 된다. 상대방의 장점도 쿨하게 인정하게 되고, 인정받은 장점은 자존감을 높여 준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일상에서의 많은 대화를 통해 이루어지게 된다.


우리 부부는 아직도 대화를 많이 하는 편이다. 아이와 셋이서 있을 때에도 와이프와 나는 서로 이야기하고 들어 주기 바쁘다. 아직 어려서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아이는 우리가 대화에 집중하고 있으면 우리를 향해 외친다. "말하지 마. 엄마 아빠 말하지 마!" 우리는 그러면 아이에게 말한다. "엄마 아빠 이야기 좀 하자. 아빠는 엄마한테 할 말이 엄청 많단 말이야~." 물론 이런 부탁이 언제나 통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우리는 틈이 날 때마다 대화를 이어 간다. 결혼의 최대 장점은 최고의 말동무를 얻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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