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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재 Sep 17. 2022

부부싸움의 기술

여보, 우리 잠깐 얘기 좀 해

와이프와 나는 화를 내는 방식이 다르다. 나는 평소에 조금씩, 자주 짜증 섞인 화를 내고 와이프는 참고 참고 참다가 펑! 터뜨리는 식으로 분노를 표출한다. 두 가지 방법 모두 장단점이 있는데, 평소 자잘하게 분노를 배설해서 감정 찌꺼기가 많이 남아있지 않는 나는 크게 화를 내는 일이 별로 없다. 대신 옆에 있는 사람들이 평소에 내 눈치를 많이 보게 만든다. 와이프는 그에 비해 평소엔 잘 표현하지 않지만 한번 분노가 터지면 그동안 쌓였던 감정 찌꺼기, 오해, 서운함 등이 와르르 쏟아지기 때문에 감정받이가 되는 내가 힘들다. 


부부가,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오랜 시간 함께 지내다 보면 많은 부분에서 서로에게 감정이 쌓인다. 집안일을 내가 더 많이 한 것 같고, 상대방은 그걸 몰라 주는 것 같고, 우리 부모님보다 상대 부모님한테 더 잘해 드린 것 같고, 우리 부모님한테는 잘 못해 드린 것 같고, 상대방은 그걸 또 몰라 주는 것 같고... 그렇게 감정의 원심분리기를 점점 빠른 속도로 회전시키다 보면 마지막에 남는 감정은 대개 '짜증', '서운함', '분노' 같은 것들이다.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하는 옛말이 있다. 칼로 물을 베면 어떻게 될까(이런 발상을 누가 처음에 한 건지 궁금하다)? 칼이 지나간 부분은 잠깐 출렁일 뿐, 금세 다시 원래대로 돌아온다. 하지만 그것은 액체 상태의 물을 베었을 때의 경우이다. 만약 꽝꽝 얼어있는 물에 칼을 댔다면? 칼로 얼음을 베어보면 잘 안 베어진다. 그럼에도 힘으로 어떻게든 베어내면, 톱밥같은 자잘한 얼음 조각들과 함께 거친 자국이 남는다. 그리고 그 상처와도 같은 자국은 얼음이 완전히 녹기 전까지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


부부싸움도, 부부싸움을 끝내는 방법도 이와 마찬가지다. 칼로 물 베기의 '물'은 서로의 마음이다. 마음이 꽝꽝 얼어있다면 상대방이 던진 날카로운 말이 마음속을 지나갈 때마다 거친 상처가 생겨난다. 이렇게 상처나고 마음을 녹이려면 두 가지 도구가 필요한데, 그것은 '말'과 '행동'이다. 마음에 상처를 내는 것은 말이지만 마음을 녹이는 것 또한 말로 할 수 있다. 말은 열원과도 같아서, 상대방 마음 한가운데에 가까이 갈 수록 더 빨리 마음을 녹일 수 있다. 상대방이 서운했던 부분, 화났던 시점과 같이 디테일한 부분을 잘 캐치할수록 상대방 가까운 곳으로 말을 보낼 수 있다.


하지만 말뿐인 화해는 응급처치만 하고 병원에 데려가지 않는 것과 같다. 감았던 붕대는 풀어지고 연고는 말라 없어진다. 행동으로 실천해야 비로소 얼음을 완전히 녹일 수 있다. 말은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사과이고, 행동은 지금부터 미래로 진행되는 사과이다. 과거에 비해 미래에 같은 실수를 줄이고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마음에 남았던 상처 자국을 지울 수 있을 정도로 얼음을 녹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부부싸움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는, 상대방의 마음이 꽝꽝 얼어 있는 상태에서 너무 크고 깊은 상처를 내면 안된다는 것이다. 한 곳에 날카로운 말이 여러 번 꽂히고, 깊숙히 꽂히다 보면 마음이 두 동강 날 수도 있다. 두 동강 나버린 마음은 더 이상 합칠 수가 없다. 물의 응고와 얼음의 융해는 가역적인 반응이지만 마음의 상태변화는 비가역적일 때또 있기 때문이다.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상대방에게 할 말, 하면 안 되는 말을 구분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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