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 청소년 대상 진로특강 후기
몇 주 전, 예전에 업무로 알게 된 학생에게 연락이 왔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마지막으로 만났을 때 그는 고등학생이었는데 사회인이 되어 연락을 해왔다.
"선생님, 잘 지내셨어요? 저 OO이에요."
안부 연락인가 싶어 언제 한 번 밥이나 먹자는 인사로 연락을 마치려는데, 용건이 있었나보다.
"혹시, 시각장애 청소년 대상으로 진로특강 해주실 수 있으세요?"
난 제안을 흔쾌히 수락했다. 나도 시각장애가 있는 입장에서 나만이 줄 수 있는 정보가 있다고 생각했고 무엇보다도... 강사료가 탐났다.
대상은 시각장애가 있는 중,고등학생 70여 명. 물론 저시력부터 전맹, 선천적인 경우와 후천적인 경우, 단일 시각장애와 중복장애, 남학생과 여학생 등등 여러 스펙트럼이 있어 강연 대상을 파악하는 데에 약간의 고민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런 다수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진로 특강의 특성 상 내 직업에 대해 큰 관심이 없거나 애초에 잘 모르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직업의 세부적인 정보도 주지만 그 외에 인생 선배로서, 시각장애 직장인으로서 해줄 수 있는 말들을 골랐다. 시각장애를 가지고 직장을 가지는 법, 직장생활을 하는 법 등등.
강연 자료를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평소 시각장애인의 직업과 관련해서 많은 생각을 했었기 때문이다. 대다수의 시각장애인들은 직업을 택할 때 '내가 좋아하는 일', '내가 잘하는 일' 보다는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 눈 상태에서도 가능한 일'을 기준으로 선택하기 때문이다. 슬프지만, 이게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시각장애인들이 안마사를 직업으로 선택하고, 그 외 장애인의 비중이 높은 직업군으로 가게 된다. 가끔 소수의 인원들이 보다 다양한 직업군에 분포해 있지만 그들은 직장 내에서 홀로 길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나처럼.
강연 날이 되었다. 학생들은 각양각색이었다. 그래도 그중에 사서에 관심 있어한다는 친구도 있었고, 저시력인 친구들도 있어서 나의 강연이 도움이 될 수 있는 학생들이 있었다. 다행히 강연은 별일 없이 잘 끝났고 난 학생들에게 도서관 사서, 사서 공무원이라는 직업에 대해 자세하게 알려줄 수 있었다. 사실 장애인이 사서 공무원이 되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대학에서 문헌정보학과를 졸업하고 9급 공무원 시험을 보면 된다. 공무원 시험은 과락(1과목 40점 미만, 전체 평균 60점 미만이면 무조건 탈락)만 피하면 대부분 합격한다. 그렇기 때문에 비장애인들이 보기에 장애인 구분모집 TO는 불공평해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만약 장애인의 입장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먼저 교재도 잘 안 보이고 인강도 잘 안 보인다. 만약 당신에게 청각장애까지 있다면 강의가 잘 들리지도 않는다. 그 상황에서 과락을 면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특히 어린 시절부터 장애를 가지고 있었다면 이러한 학습의 격차는 커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사실 제일 힘든 점은 취업하기까지의 과정이 아니라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나서일 것이다. 어느 조직, 어느 직장에 가도 쉬운 업무는 없다. 누군가가 일을 덜 하면 누군가의 일이 늘어나는 구조이다. 자신의 업무를 잘 해나가야 주변 동료, 상사, 후배와도 원만하게 지낼 수 있다. 그런데 업무에서부터 깎아먹고 시작하면 원만한 사회 생활은 쉽지 않다. 직장은, 사회는, 냉정하다.
그렇기 때문에 강연을 마친 뒤에도 약간의 씁쓸함이 남았다. 강연 후, 담당자와 이야기를 나눴는데 맹학교 학생들이 대학에 가서 적응을 어려워한다는 말이 나왔다. 시각장애가 있는 소수의 아이들끼리 초등학교~고등학교까지 지내다가 갑자기 너무나 다양한사람들과 어울려 지내려니 적응하기가 힘들다는 것이었다.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에 적응하는 일은 성향을 떠나 누구에게나 큰 스트레스이고 자존감을 갉아먹는 일일텐데, 어쩔 수 없지만 가혹한 현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쉬운 직업은 없다. 쉽게 돈을 버는 방법은 없고 천직이라고 생각되는, 나에게 꼭 맞는 일을 찾은 사람도 극히 드물다. 하지만 바꿔 말하면 내가 못할 정도로 어려운 일도 없다. 끔찍이 하기 싫은 일도 없는 것이다. 직업은 돈을 버는 수단이지만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수단이고, 보람을 주지만 보수가 제일 중요하기도 하다. 여러분은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으신지? 자신의 직업을 아쉬운 직업이라고만 생각하지 말고 쉬운 직업이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