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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재 Aug 31. 2022

장애에 서툰 복학생

대학교 장애학생지원센터 이야기

2013년 1월, 군 전역과 함께 시각장애 5급 판정을 받고 한 학기를 휴학하며 전공을 바꾸었다. 공대생에서 문대생으로. 


2학기에 복학을 해야 했던 나는 장애인으로서 첫 학기를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막막했다. 장애인으로서 학교생활에 두려움을 느꼈던 이유는 '내가 할 수 있을까?'라는 물음의 답을 얻으려면 뭐든 직접 해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해보지 않고는 절대 알 수 없으니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나 또한 그랬다. PPT 화면은 보이나? 칠판 글씨는 보이나? 교수님 얼굴은 보이나? 교재 글씨는 보이나? 확대기로 교재 보면서 수업은 따라갈 수 있나? 등등등.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하지만 왠지 못할 것 같은 이 느낌.


전과(소속 변경)가 승인되고 나서 본격적으로 복학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모르니 인터넷으로 검색해보았다. 'oo대학교 장애'라고 검색하니, 내가 다니고 있던 대학교에 장애학생지원센터(이하 센터)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뭔가 도움이 될 것 같은 곳이었다. 나는 즉시 전화로 문의하고 방문 날짜를 잡았다.


이전에는 있는지조차 몰랐던 센터는 학생회관 2층에 있었다. 작지만 상주직원(한 명)도 있고, 보조하는 학생들도 많아 보였다. 직원(이 분도 나처럼 저시력 시각장애인이셨다)은 나의 현재 상태와 상황을 듣더니 내게 필요한 것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대체 교재가 필요한지, 활동보조인이 필요한지 등등. 그와 함께 도서관에 있는 장애학생 전용 열람실이 있다는 사실도 알려주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우리 학교는 장애학생에 대한 인프라가 잘 되어 있었다!


대체 교재는 시각장애 학생을 위해 교재를 스캔해서 pdf파일로 변환하거나, 스크린리더로 읽을 수 있게 텍스트(.txt) 파일로 변환한 교재를 뜻한다. 나는 아직 수업을 들어보지 않아 나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잘 몰랐기에 우선 개강하고 나서 도움이 필요하면 말씀드리겠다고 말했다. 아직 직접적인 도움을 받지는 않았지만 복학으로 인한 불안이 한결 누그러든 느낌이었다.


그리고 장애학생 전용 열람실(이하 전용 열람실)은 정말 좋은 곳이었다. 도서관 건물 자료실 내에 위치함 전용 열람실은 따로 구분된 방(room)처럼 되어 있었는데, 탁상용 독서확대기와 화면 확대 및 화면낭독 프로그램이 깔려 있는 PC가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푹신한 소파가 있었다.이 곳에서 나는 2년 반의 남은 대학 생활 동안 쾌적하게 공부와 휴식을 할 수 있었다. 장애학생은 개방된 공간에서 다른 사람들의 시선이 신경 쓰이기 마련이라 외부랑 차단된 공간에서 마음 편히 공부와 휴식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용 열람실은 모든 대학교에 꼭 있어야 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센터와 전용 열람실의 존재를 알게 되고 든든한 마음으로 복학한 나는, 사실 많은 지원을 받지는 않았다. ppt는 미리 파일이 올라왔기에 출력해서 보면 되었고, 휴대용 독서확대기로 교재를 보면서 수업을 따라갈 수 있었으며, 칠판에 써 주시는 글씨는 보이지 않았으나 같이 수업을 듣는 친구의 도움을 받거나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어 확대해서 보았다. 어떻게 해서든 방법은 있었다.


아, 제일 어려웠던 수업은 프로그래밍(코딩) 수업이었다. 얄궂게도 공대를 빠져나와 문대생이 되었지만 문헌정보학과에서는 프로그래밍을 전공기초 과목으로 삼고 있었다(...). 그런데 프로그래밍 수업은 보통 교수님께서 실시간으로 코드를 큰 프로젝터 화면으로 보여주시면 각자 컴퓨터에 따라 적으며 실행해보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나는 화면도 잘 안 보이는데 그걸 옮겨 적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었다. RGB 케이블과 모니터 분배기까지 샀지만 실패. 결국 한참 헤매면서 수업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내가 강의를 들었던 교수님들은 대부분 나의 장애에 대해 적절한 관심과 배려하고자 하는 자세를 취해주셨으며, 시험시간 연장과 시험 공간 분리 등의 요청도 흔쾌히 받아들여주셨다. 어떤 교수님께서는 맨 앞자리에서 확대기를 들고 낑낑대며 수업을 든는 나에게 도움이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이야기하라고 선제 호의(?)를 건네기도 하셨다. 


마지막으로, 장애를 가지고 대학에 들어가거나 돌아가려는 학생이 있다면, 몇 가지 유의했으면 좋겠다. 대학별로 장애학생 입학전형이 따로 있는 경우가 있다. 경증/중증 장애를 나누어 구분하기도 하고 장애 유형별로도 조금씩 다른 것으로 알고 있다. 물론 성적에 맞춰 대학교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긴 하지만 가려는 학교에 장애학생 지원 제도가 잘 되어 있는지, 기숙사를 이용해야 한다면 장애인 기숙사는 잘 구비되어 있는지 등의 조건을 잘 따져보면 좋겠다. 붙었는데 다니는 동안 고생해야 한다면, 대학에서 얻을 수 있는 좋은 경험이 줄어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가고자 하는 학교가 있다면 미리 학교의 센터에 연락을 해 상담을 받아보고 캠퍼스 투어를 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자신의 장애를 아직 못 받아들여서, 아니면 장애로 인한 타인의 선입견이 싫어서 장애가 있음에도 센터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실제로 꽤 있었다) 우선 센터를 방문해 자신이 받을 수 있는 도움을 확인하고 필요한 경우 요청했으면 좋겠다. 남들보다 불편하다는 것은 어느 정도의 제도적 지원이 있어야 동등한 출발선에 설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남들과 같은 출발선에 서기 위해서 주어진 기회와 갖춰진 제도를 잘 활용하는 것도 현명한 대학생의 소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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