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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재 Sep 02. 2022

너의 눈, 코, 입 날 만지던 네 손도 안 보여

시각장애인의 눈, 독서확대기를 아시나요

매년 한 번씩 서울대학교 병원 안과에 가서 정기검진을 받는다. 안과에 처음 가면 하는 기본적인 검사들이 있다. 시력 검사, 안압 검사 등등. 시력 검사는 보통 한쪽 눈을 가리개로 가리고 멀리 떨어져 있는 검사판을 읽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보통 안경을 쓰고 진행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최대한의 시력을 발휘하기 위하여 집중해서 읽곤 한다. 하지만 난 시력 검사를 위해 선 앞에 서는 순간, 눈에 힘을 풀어버린다. 왜냐고? 아무것도 안 보이니까.


대형 병원은 시력 검사실이 따로 구분되어 있어 괜찮지만, 동네 안과 대기실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에게 둘러싸여 시력 검사를 하고 있으면 원숭이가, 아니 다치고 가여은 아기 원숭이를 보는 듯한 시선을 견뎌야 한다. "이거 보이세요?"라는 간호사의 물음이 끝나기도 전에 나는 대답하고 있다. "아니요, 안 보여요." "이거는요?" "안 보여요." 문답이 계속되면서 내게 별 관심 없던 어르신 관객들은 점점 나를 주목하기 시작한다. 일반인들은 겪을 일 없겠지만, 시력 검사판으로 시력 측정이 불가능한 경우에 간호사분들이 손가락으로 숫자를 표시하며 가까이 온다. 몇 cm 떨어진 거리에서 인식이 가능한지 확인하기 위해서다. 10~20cm 떨어진 거리까지 가까워지고 나서야 손가락을 알아보고 시력 검사가 끝나면, 병원 내 관객들의 동정론은 만연해진다. '어쩌다 저리 되었을꼬.' '젊은 사람이 안됐네그려.'와 같은 눈빛과 말씀을 건네주신다.


그렇게 글씨도 안 보이고, 손도 안 보인다. 그렇기 때문에 나 같은 저시력 시각장애인들은 독서확대기가 필수이다. 내가 사용하는 독서확대기는 크게 두 가지다. 휴대용 독서확대기탁상용 독서확대기. 그런데 왜 '글자확대기'나 '문자확대기', 심지어 '도서확대기'가 아닌지 의문이다. '독서'는 책을 읽는 행위인데 '독서를 하기 위한 확대기'라는 뜻일까? 이런 궁금증을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지만 아직도 해답을 찾지 못했다. 어쨌든 저 두 가지의 가장 큰 차이점은 '크기'와 '목적'에 있다.


휴대용 독서확대기는 작고 가볍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체로 스마트폰 크기 정도의 액정 화면에 손잡이나 받침대가 달려 있는 경우가 많다. 한 손으로 들 수 있어 물건의 상세 정보나 설명서와 같이 짧은 시간 동안 뭔가를 읽어야 할 때 유용하다. 물론 책이나 긴 문서를 읽을 때 사용할 수는 있다. 하지만 목과 어깨, 눈의 피로도가 엄청나므로 장시간 사용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휴대용 독서확대기. 들고 다니면서 잠깐 잠깐 확대해서 보기 좋다.


예전에 내 몫의 탁상용 독서확대기가 없을 때, 휴대용 독서확대기를 가지고 토익 시험을 보러 갔던 기억이 난다. 몇 시간 동안 독서확대기를 쥐고 이리저리 움직이며 시험을 보느라 시험이 끝나고 녹초가 되었던 기억이 난다. 목도 어깨도 며칠 동안 아팠다. 휴대용은 휴대용일 뿐이라는 사실을 절실히 느꼈다.


다음은 탁상용 독서확대기가 있다. 크고 무겁다. 탁상용 독서확대기가 스마트폰이라면 이쪽은 노트북 내지 데스크톱 컴퓨터에 가깝다. 화면 크기랑 구조, 무게도 제각각이지만 정말 무겁다. 차량이 없으면 운반이 어려운 것도 있고, 가방에 넣어 등에 메고 다닐 만한 것도 있다. 장시간 독서를 위해서는 필수품이다. 글씨를 널찍한 화면에 크게 크게 표시해주고, 색 반전 등으로 편안한 독서를 가능하게 한다. 나 같은 경우에는 화면 빛 때문에 눈이 부시기에, 화면 밝기를 조정하면서 선글라스를 끼고 보는 편이다. 이러한 커스터마이징은 오랜 시간 내게 최적화된 독서 환경을 찾고자 노력하면서 얻은 산물이다.


탁상용 독서확대기. 큰 화면으로 인해 피로도가 적고 장기간 사용이 용이하다.


모든 저시력 시각장애인들이 자신에게 필요한 독서확대기를 모두 구비하면 정말 좋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자신이 원하는 독서확대기를 못 구하거나 어떤 독서확대기가 자신에게 맞는지 알기 어렵다. 가장 큰 문제는 '가격'이다. 휴대용 독서확대기의 경우 대당 80~100만 원 정도이고 탁상용 독서확대기의 경우 200~400만 원 정도이다. 학생뿐 아니라 직장인도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보통신 보조기기 지원사업'과 같은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정보통신 보조기기 지원사업'은 1년에 한 번씩 신청해서 독서확대기를 비롯한 장애인용 보조공학기기를 지원받는 사업인데, 선정만 된다면 20%의 가격으로 독서확대기를 구할 수 있다. 하지만 난 장애인 등록을 한 2013년 첫 해에 휴대용 독서확대기를 지원받고 그 뒤로는 죄다 탈락했다. 우선순위가 있는데 1순위가 학생, 2순위가 취업준비생이라 직장인인 현재는 가망이 없다. 경쟁률이 무척 세기 때문이다.


대학생 때에는 '실로암 시각장애인복지관'에서 대학생을 대상으로 독서확대기를 빌려주는 사업이 있었다. 덕분에 '비지오 북'이라는, 아주아주 내 마음에 쏙 드는 탁상용 독서확대기를 빌려서 썼었다. 덕분에 대학 시절과 공무원 시험 준비할 때 도움을 톡톡히 받았다. 하지만 대여한 기기를 반납하고 나자 내 소유의 탁상용 독서확대기가 없었고, 올해 초까지는 '실명예방재단'에서 오래되어 성능이 떨어지는 독서확대기를 빌려 썼었다. 그런데 올해 초에 장애인 공무원을 대상으로 장애인용 보조공학기기를 지원한다는 공문이 왔다. 그것도 금액 제한이 거의 없이. 나는 덕분에 탁상용 독서확대기와 휴대용 독서확대기를 새로 장만하여 당분간 장비 교체 적정 없이 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시간이 흐르면서, 독서확대기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해지는 듯하다. 특히 대학생을 위한 지원이 다양한 곳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다. 자신에게 필요한 독서확대기나 보조공학기기가 있다면, 지원을 받아 저렴하게 또는 무료로 구해보는 것도 중요한 일임을 떠올리면 좋겠다. 사람마다 다르지만 독서확대기를 비롯하여 자신에게 맞는, 잘 보이는 환경과 상태를 찾는 일은 잔존 시력을 최대로 끌어올리는 중요한 일이다. 저시력 시각장애인에게 독서확대기는 눈, 안경 다음으로 필요한 '제3의 눈'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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