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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재 Sep 05. 2022

젊은 황반변성의 슬픔 (2)

진행성 질환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것

가끔씩 몸이 뻐근할 때면, 집에서 지하철로 한 정거장 떨어진 곳에 있는 안마원에 가곤 한다. 그곳에는 저시력 시각장애 안마사 분들이 안마를 해주신다. 가격도 적당하고 한 번씩 마사지를 받으면 매일 혹사받던 목, 어깨, 등이 가뿐해지는 것 같아 가끔씩 가곤 했었다.


어느 날이었다. 마사지를 받고 있는데 안마사 분께서 말을 걸어오셨다. 나는 보통 30분짜리 코스로 받기 때문에 그 시간 동안 안마사 분과 나 모두가 침묵을 지키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안마사 분과 가볍게 대화를 시작했다. 매번 갈 때마다 다른 분에게 안마를 받아서 대화의 패턴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대체로 초면에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은 많지 않으니 보통 "무슨 일 하세요?"와 같은 질문을 항상 받았던 것 같다. 나는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고 있다고 대답하면서 나도 저시력 시각장애인임을 밝혔다. 


그때부터였다. 안마사분의 충고가 시작된 것은... 그분께서는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셨다. 그분은 자신도 중도에 눈이 나빠졌으며 그렇기 때문에 하던 일을 그만두고 서울맹학교에서 안마를 배웠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눈이 많이 나빠진 상태라 배움이 더뎠고, 고생을 많이 했다는 말씀이셨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질환인 스타가르트병(황반변성의 일종)은 진행성이기 때문에 언젠가 더 눈이 나빠질 수도 있으니 미리 직업을 바꾸는 것이 어떻겠냐는 충고였다. 나는 이용자를 응대하던 버릇대로 상대의 말에 적당히 맞장구를 치며 "하하, 그러게요. 그래야겠어요."와 같은 말을 하며 마사지를 받다가 시간이 다 되어 나왔다. 몸은 개운했는데 마음은 개운하지 않았다.


스타가르트병, 황반변성은 진행성인 질환이다. 이 말은 어제보다 오늘 더, 오늘보다 내일 더 잘 안 보인다는 뜻이다. 치료법이 없으니 다시 좋아질 가능성은 0에 수렴한다. 그렇기 때문에 관리가 중요한데, 관리랄 것도 마땅한 가이드라인이 없다. 그냥 눈 영양제 먹고, 알아서 눈 피곤하지 않게 관리하는 것이 전부다. 나는 잠을 충분히 못 자고 신체적 스트레스가 극도에 달했을 때 발병했기 때문에 최소한 하루에 6~7시간은 자려고 노력한다. 물론 아기가 태어나고부터는 양질의 잠을 자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최근엔 0시~7시 30분까지 규칙적으로 잔다.


이렇게 관리를 하더라도 눈이 나빠지는 속도를 더디게 할 뿐, 눈이 나빠지는 것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막연한 두려움을 마음 깊은 곳에 얹어두고 살아야 한다. 실명까지는 안 가더라도, 혼자서 밖에 다니지 못할 정도로 눈이 나빠진다면? 직장생활을 못 할 정도로 눈이 나빠진다면? 딸의 얼굴을 가까이서도 못 알아볼 정도로 눈이 나빠진다면? 이런 생각들을 하다 보면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기분이다. 내가 지금까지 이루어 온 행복들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견디기 힘들다. 안마사의 말처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빨리 때려치우고 눈이 더 나빠져도 계속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는 것이 옳을지도 모른다.


눈이 나빠지는 속도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설명할 방법이 없다. 내 눈이 어떻게 보이는지 설명하는 것도 어려운데 어떻게 나빠지는지 설명하는 것도 꽤나 어려운 일이다. 하루하루 급격히 나빠지지는 않지만, 1년 전, 2년 전, 몇 년 전에 가능했던 일들이 서서히 어렵거나 불가능해지는 것으로 그 변화를 체감할 수 있을 뿐이다. 처음 군대에서 눈이 나빠지기 시작했을 때에는, 첫 휴가를 나와 병을 진단받았던 날에는 카페 메뉴판이 보였는데 몇 개월 뒤에 나온 다음 휴가 때에는 그 메뉴판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초반엔 악화세가 심했다. 한번 심하게 나빠진 이후로는 서서히 나빠지고 있는데,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영화관에서 선글라스를 쓰고 A~B열에서 외국 영화의 자막을 보며 영화 관람이 가능했는데 이제는 좀 어렵다. 자막을 따라가는 데에도 바빠서 화면은 볼 여유조차 없다.


책은 말할 것도 없다. 처음 눈이 나빠지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맨눈으로(안경 쓰고) 책을 조금씩이나마 읽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몇 글자 읽는 것도 독서확대기 없이는 거의 불가능하다. 어차피 내 책은 독서확대기로 읽으면 되니 괜찮은데, 안타까운 것은 딸에게 책을 읽어주기 점점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3살인 딸이 읽는 책들은 처음엔 글이 한 페이지에 한 줄 있는 짤막한 그림책이었지만 갈수록 수준이 높아지면서 글밥이 많아지고 글씨 크기는 작아져갔다. 요새는 '추피'나 '대발이' 시리즈와 같은, 한 페이지에 4~5줄씩 내용이 있는 책을 읽어달라고 하는데 자꾸 틀리고 더듬더듬 읽는 나를 보며 딸은 지루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결국 "아빠 재미없어. 엄마 읽어 줘."라는 말까지 하게 됐다. 딸은 책을 잘 못 읽는 아빠가 재미없고, 나도 몇 권 읽고 나면 눈이랑 목이 빠지게 아프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앞으로 점점 긴 내용의 책을 읽게 되면 딸에게 책을 읽어 줄 기회는 점점 없어지겠지만, 그래도 가능한 때까지는 읽어 주고 싶다.


그렇게 조금씩 나빠지는 눈을 가지고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다. 눈이 많이 나빠지는 언젠가를 대비해서 직업을 바꾸는 것을 거부하고 현재의 원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나 자신이 옳은 결정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 오지도 않은 불확실한 불행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내가 가진 것을 버릴 자신이 없다. 어떻게 보면 철없는 생각일지도 모르겠지만 난 그래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다. 병도 진행성이지만, 내 삶도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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