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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우재 Sep 06. 2022

잘 보이지 않아도 즐길 수 있어요

시각장애인의 취미생활, 그리고 자기 계발

저시력 시각장애인으로 살면서 일, 사회생활, 인간관계 등 여러 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지만 그렇다고 해서 비장애인들과 크게 다르게 살지는 않는다. '해야 할 일'이 있으면 '하고 싶은 일'도 있는 법. 쉬는 시간과 자투리 시간에 좋아하는 것, 취미 생활을 하고 싶다는 건 누구나 같을 것이다.


나는 아예 안 보이는 전맹 시각장애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일반인들과 같은 건 결코 아니다. 넷플릭스를 통해 자막이 있는 외국 드라마나 영화를 보고, 약속 시간을 기다리는 잠깐 동안 책을 읽으며, 친구들과 함께 게임을 한다든지 하는 것은 나와 능력을 벗어난 일들이다. 대신 집에서 선글라스를 쓰고 한국말로 대사가 나오는 한국 영화를 보거나, 탁상용 독서확대기를 사용해 책을 읽거나, 혼자서 천천히 진행해도 되는 간단한 게임을 하게 된다. 


독서에 있어서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나는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다. 하지만 탁상용 독서확대기가 없으면 책을 읽을 수 없기 때문에 정해진 장소에서 각 잡고 읽어야 하고, 읽는 속도도 비장애인에 비해 5~10배는 느리기 때문에 책 한 권을 다 읽으려면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한다. 그럼에도 책을 읽다 보면 마음이 안정되고 소설을 읽으며 여러 가지 장면들을 상상하다 보면 기분이 즐거워진다. 그렇기에 내 주된 취미는 독서인데, 주로 확대기로 읽기는 하지만 가끔은 오디오북을 듣기도 한다.


오디오북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시각장애인들만을 위한 독서 대체제였다. 하지만 '밀리의 서재'와 같이 비장애인들을 타깃으로 한 오디오북 시장이 커지면서 점차 다양한 오디오북이 보급되게 되었다. 나는 시각장애인들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모바일 소리책'을 이용하는 편이지만, 유료든 무료든 오디오북의 종류가 많아졌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더구나 모바일 소리책에는 소리 영화와 같은 콘텐츠도 있어서, 영화를 직접 보기 힘들더라도 즐길 수 있다. 생각보다 소리 영화의 퀄리티가 높아서, 화면을 직접 보지 않아도 거의 대부분의 장면을 이해하고 즐길 수 있다. 대사 중간중간에 화면 해설도 나오기 때문에 어떨 때는 직접 화면을 보는 것보다 스토리를 이해하기 쉬울 때도 있다.


또 시각장애인들이 많이 하는 취미 중에는 악기 연주가 있다. 영화와 같은 콘텐츠에서 다루는 것처럼 시각장애인이 된다고 청각이나 음감이 뛰어나지지는 않는다. 그건 본인 눈을 감고 악기를 연주해보면 알 것이다. 불편하기만 하지, 딱히 연주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 그래도 시각적인 능력을 덜 필요로 하기 때문에 피아노, 기타, 색소폰 등 악기들은 시각장애인의 친구이자 기량을 뽐낼 수 있는 도구이다. 나는 기타를 대학교 1학년 때(비장애인일 때)부터 치기 시작했는데 시각장애인이 되고 나서부터도 꾸준히 쳤다. 밴드에서 합주, 공연도 하고 작곡 프로그램으로 자작곡도 만들면서 놀았다.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계기를 만들어준다는 점에서 악기 연주를 비롯한 음악 관련 취미는 꽤나 실용적이기까지 한 놀이다.


악기 연주라는 취미가 작곡으로 발전했듯이, 독서라는 취미에서 파생된 글쓰기도 내 즐거운 취미 중 하나이다. 어쩔 수 없이 비장애인과 똑같은, 혹은 비슷한 수준까지 할 수 있는 취미를 찾게 되는데 내게는 글쓰기가 그런 것 같다. 눈으로 보는 것은 느릴지언정 내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글로 풀어내는 능력에는 일반인과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글쓰기는 눈 감고도 할 수 있다. 그렇기에 블로그나 브런치에 잡다한 글을 쓰는 것도 내 취미이고, 시를 쓰는 것도 또한 내 특기이자 취미이다. 시라는 장르는 특성상 양보다는 표현의 질과 남과 다른 시선이 더 중요하기 때문에, 그리고 퇴고할 양도 적기 때문에 여러모로 나랑 잘 맞는다. 때때로 장애인 대상 문학공모전에 응모해서 당선되기도 하는데, 부상으로 받는 상금도 짭짤하다.


지금까지 나열한 나의 취미들은 대체로 진지한 취미들이다. 독서, 악기 연주, 글쓰기 같은 취미들은 유익하고 유용할 수 있으나 어느 정도 에너지가 필요한 것들이다. 그리고 사실 3살짜리 아기를 키우는 근 2년 동안은 취미를 가질 만한 여유시간이 없었다. 육퇴(육아 퇴근)를 하고 나면 늦은 밤이고, 체력은 바닥이었다. 그래도 계속해서 유지해 온 취미는 '수다'이다. 내게 가장 잘 맞는 말동무이자 친구인 와이프와 함께 격일로 술을 마시며 수다를 떠는 것이 요즘 나의 낙이다. 대화 주제는 각자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부터 아기의 미래 교육에 대한 이야기, 이사 계획까지 다양하다. 이야기하다 보면 한없이 편하고 느슨해진다. 그리고 그 느슨함에서 다음 날 다시 열심히 살아갈 힘을 얻는다. 수다야말로 하루의 스트레스를 풀고 에너지를 재충전할 수 있는, 시각장애인들이 가장 애용하는 취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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