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이 우리에게 각자 좋아하는 단어를 말해보라고 하셨다. 특별히 떠오르는 단어가 없던 나는 창밖 먼 산을 바라보다가 문득 '자연'이라는 단어를 말했다. 그 순간,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자연이 주는 특별한 감각이 나를 사로잡았다.
그 후로 자연이라는 단어를 떠올릴 때마다 어린 시절이 생각났다. 우리 집 앞뒤에 펼쳐진 산은 마치 내 앞마당이자 뒷마당처럼 가까운 존재였다. 사계절을 친구들과 뛰놀며 지낸 그곳은 나의 유년기를 채운 소중한 공간이었다. 산불로 검게 탄 모습을 보며 슬퍼했고, 가을에 낙엽이 지는 장면을 보며 이유 없이 눈물이 나기도 했다. 어릴 적 알게 된 ‘환경지킴이’라는 직업도 그 산과의 추억에서 비롯되었고, 진지하게 그 길을 고민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자연은 점점 내 삶에서 멀어졌다.
직장 생활이 시작되면서 자연은 더 이상 내 일상에 없었다. 영업이라는 일에 모든 에너지를 쏟으며 자연을 보며 걷거나 등산을 하는 건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여행을 가더라도 도심 속 화려한 풍경을 더 선호했고, 가족들과의 나들이 역시 박물관이나 전시장이 주를 이루었다. 회사 워크숍으로 산 근처에 가더라도 나는 펜션 안에서 술을 마시는 데에만 집중했다.
그러던 내가 자연과 다시 가까워지기 시작한 것은 걷기 운동을 하면서였다. 조금씩 걷는 것에 익숙해지자 등산에도 흥미가 생겼고, 결국 2021년 8월 15일, 용기를 내어 카이스트 CEO 산악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처음엔 낯선 이들과의 8시간 산행이 막막했지만, 생각보다 잘 해낸 자신을 보며 스스로 놀랐다. 그날 느꼈던 자연과 내가 하나가 된 듯한 감각은 이후 산을 찾는 계기가 되었다. 점차 산악회에서 이름난 멤버가 되었고, 산행과 술자리를 즐기며 새로운 자연과의 관계를 만들어갔다.
‘나는 자연인이다’ 같은 프로그램을 보며 언젠가 자연 속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현실적인 한계가 쉽게 도전을 막았다. 대신 나는 도심 속 자연을 누리는 법을 찾았다. 요즘은 서울숲과 한강에서 달리며 도심 속 자연이 주는 선물에 감사하고,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일요일마다 혼자 산을 오른다.
지난해 청계산에서 미끄러져 손목이 골절되었을 땐 자연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기도 했다. 몇 달간 산을 찾지 못하고 서울숲에서만 운동했지만, 결국 5월 몽블랑 트레킹에 도전했다. 눈 덮인 설산에서의 트레킹은 내게 큰 공포를 안겼지만 끝까지 완주했다. 그 아름다운 설산의 풍경은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었고, 언젠가 다시 도전할 날을 꿈꾸고 있다.
최근에는 용마산 자락에서 차를 마시다 무의식적으로 등산 준비를 하고 산으로 향했다. 자연은 늘 그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흙 내음과 풀벌레 소리가 나를 반겨주며 “왜 이제야 왔냐”고 속삭이는 듯했다. 이후로 일요일 아침이면 옷을 갈아입고 스틱을 챙겨 자연 속으로 향하는 것이 내 일상이 되었다.
자연은 내 마음의 멜로디를 연주하는 악기이자, 삶의 빈 캔버스를 물들이는 붓이며, 지친 영혼을 달래는 달콤한 꿀과도 같다. 나는 자연 속에서 나다움을 찾고, 삶의 에너지를 충전한다.
자연은 나의 영원한 친구이며, 내가 살아가는 이유 중 하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