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첫요리

by 허당 써니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엄마는 종종 큰 쟁반에 기름과 소금을 올려놓고 김을 깔아 큰 솔로 김에 기름을 바르고 소금을 뿌리는 일을 하셨다. 엄마가 힘들어하시면 우리 남매가 돌아가며 김에 기름칠을 하곤 했다. 김이 벽돌처럼 쌓이면, 그것을 구워 먹는 것이 우리 가족만의 별미였다.


어느 날, 나는 그저 김을 싸서 먹기보다는 뭔가 새로운 요리를 해보고 싶었다. 어느 주말, 부모님이 외출하시고 우리 세 자매만 집에 남아 있었다. 점심을 먹어야 했는데, 밥 이외에는 먹을 것이 없었다. 그 당시 가스레인지를 켜는 것이 무서웠던 우리는 간단한 요리를 해보자고 했다. 내가 언니와 동생에게 새로운 요리를 해주겠다고 하며, 손질하지 않은 김으로 김밥을 만들어주겠다고 제안했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김치와 가지무침밖에 없었다. 큰 쟁반 위에 김을 올리고, 넓은 김치 잎 두 장을 깐 뒤 밥을 올렸다. 참기름과 소금, 깨를 살짝 뿌려 김밥 세 줄을 만들었다. 또 다른 김밥은 밥 위에 참기름과 소금, 깨를 뿌리고 가지무침을 올렸고, 마지막 김밥은 김에 김치 잎과 가지를 올려 아무 양념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아홉 개의 김밥을 만들어 세 자매는 맛을 보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외식으로 김밥을 먹을 기회가 거의 없었기에 엄마가 만들어 주시던 김밥이 전부였다. 나의 김밥은 평소 먹던 것과는 다른 특별한 음식처럼 느껴졌다. 언니와 동생은 단순히 김치와 밥에 약간의 조미료만 뿌린 김밥이 가장 맛있다고 했다. 우리는 각자 한 줄씩 더 만들어 먹으며, 통째로 베어 물었다. 그렇게 맛있었던 김밥은 시간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다.


대학 시절, 그 추억을 떠올리며 한 번 김밥을 만들어본 적이 있다. 그러나 그 맛은 어린 시절의 그것과는 달랐다. 아마도 처음 만든 요리에 대한 설렘이나 배고픔이 맛을 더해줬던 것이 아닐까 싶다.

요즘도 가끔 김밥천국이나 건강식 김밥집에서 김밥을 사 먹는다. 고급스럽고 건강하지만, 그 시절의 맛은 느껴지지 않는다. 아이가 초등학생이었을 때 김치 김밥을 만들어 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아이는 “엄마, 내가 거지예요? 김치를 넣어 김밥을 만들 다니, 그냥 김밥천국에서 사 주세요”라며 투덜댔다. 서운했지만, 요즘 시대에 누가 김치 한 조각으로 김밥을 만들겠냐는 생각에 웃음이 나기도 했다. 그 김밥은 솔직히 맛이 없었지만, 옛 추억을 떠올리며 남은 김밥은 혼자 끝까지 다 먹었다.


아들은 남편을 닮아 요리를 잘한다. 중학생 시절부터 엄마의 부재와 ‘똥손’ 탓에 스스로 요리를 해 먹기 시작했다. 가끔 아들이 급하게 만들어 준 음식을 먹으면서 요리가 감칠맛날 정도로 놀랄 때가 있다. 배고픔을 채우는 요리가 아닌, 손맛이 담긴 요리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혼자 있을 때는 여전히 김에 김치를 얻어 밥을 말아 통 김밥째 먹는다. 남편과 아들은 맛이 없다고 하지만, 나는 내 요리가 맛있다.


영업 접대 때문에 맛집을 찾아야 할 때가 많지만, 사실 나는 비싸고 고급스러운 음식에는 별로 욕심이 없다. 고객이 만족해야 하기에 맛집 선택은 고객에게 맡기는 편이다.

어린 시절, 처음으로 만들어본 김밥. 그 서툴고 단순했던 요리와 함께한 시간은 내게 평생 잊히지 않을 추억이 되었다. 맛보다는 과정과 감정이 더해져 특별했던, 나만의 첫 요리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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