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마라톤 참여에 드디어 서브4를 이루다.
마라톤은 단순한 달리기가 아니다. 그것은 인내와 자기와의 싸움이며, 삶을 축소한 하나의 과정이다. 나이 오십이 넘어 마라톤을 시작했고, 불과 한 달 만에 ‘걷지 말고 뛰라’는 조언을 듣고 하프 마라톤을 완주했다. 그리고 네 달 뒤, 풀코스에 도전했다. 하지만 첫 마라톤의 감동은 기대했던 것만큼 크지 않았다. 그저 5시간 동안 걷지 않고 달렸다는 사실에 놀랐고, 완주 후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리는 이들을 보며 의아함을 느꼈다.
대회 후 마신 소맥에 되려 나는 감동을 받았다. ‘소맥이 이렇게 시원할 수 있구나. 한잔에 알딸딸해진 나는 너무나 행복했다.
그 후, 나는 매일 10km씩 달리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꾸준한 습관이 만들어지자 마라톤은 도전의 대상이 아닌 삶의 일부가 되었다.
2025년 2월 23일, 고구려 마라톤 대회 날. 대구 국제 마라톤과 겹쳐서 평소 함께하던 동료들의 절반만이 참가했다. 몸 상태가 최상이 아니기에 풀코스에 대한 확신이 없던 나는 하프만 뛰겠다는 생각으로 대회장에 나갔다. 하지만 몸을 풀다 보니 이미 15km 이상을 달리고 있었다. 바람이 매서웠고, 기온은 낮았다. 보통 풀코스를 뛰기 위해 가벼운 옷을 입지만, 추위 탓에 나는 기모 레깅스와 두 겹의 등산복을 걸쳤다.
출발선에서, 오랜 마라톤 경험을 가진 70세의 훈련 고문님과 나란히 서 있었다. 그는 정확한 페이스 조절로 우리를 이끄는 ‘인간 AI’ 같은 존재였다. 페이스 5분 50초, 그의 꾸준한 페이스를 따라 하프 구간까지 도달했을 때, 내 심장은 여전히 가뿐했다. “써니야, 이대로만 가면 서브4가 가능해.” 그의 말에 힘을 얻었고, 강한 맞바람 속에서도 꾸준히 달렸다. 그러나 10km를 남기고 그는 지친 기색을 보였다. “써니야, 먼저 가라.”
“고문님, 지금까지 뛴 의리가 있죠. 끝까지 같이 뛰겠습니다” 나는 지금까지 패이스를 유지해 준 고문님을 버릴 수 없었다. “마라톤은 의리가 아니라 도전이다.” 그는 내 등을 앞으로 밀쳤다. 그의 밀침에 뒷 바람이 나를 앞으로 전진하게 하듯 나의 페이스를 유지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마라톤은 체력만으로 완주하는 경기가 아니다. 전략과 정신력이 함께 작용해야 한다. 앞서 나간 동료들은 초반 페이스를 조절하지 못해 거의 걷다시피 하고 있었다. 피니시 라인을 1km 앞두고 힘이 빠졌지만, 나는 항상 마지막 30%의 힘을 남겨두는 습관이 있었다. 무리하지 않으려는 본능적 경계심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3시간 59분 24초. 마라톤 하는 사람들의 로망, 서브4를 달성했다.
도착 후에도 내 몸은 여전히 움직일 힘이 남아 있었다. 뒷풀이를 위한 식당까지 2km를 걸어가자 동료들은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살아있는 소머즈 (소머지: 초인적 능력을 가진 여성 캐릭터) 같아.” 고문님은 이제 세 번째 도전한 나에게 감탄했다. 마라톤 모임에서 같이 사용하는 ‘스타라바’ 앱에 표시된 시작과 끝이 동일한 5분 50초 페이스. 그것은 내가 목표를 위해 꾸준함을 지켜낸 증거였다.
마라톤은 곧 삶의 축소판이다. 우리는 달리면서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고, 도전하고, 포기할 것인지 나아갈 것인지를 결정한다.
마라톤의 전설적인 선수 에밀 자토펙은 이렇게 말했다. “고통 없이 달리는 것은 단순한 조깅일 뿐이다.” 마라톤은 결코 쉬운 도전이 아니다. 하지만 인생도 그러하다. 힘든 순간을 지나야 성장할 수 있다.
나는 원래부터 체력이 좋은 편이었지만, 마라톤이 내 삶에서 중요한 이유는 그것이 나의 ‘꾸준함’과 ‘성실함’을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이다. 이 성향은 타고난 것일 수도 있지만, 살아오면서 훈련되고 다듬어진 것이기도 하다.
삶에서든 마라톤에서든, 중요한 것은 포기하지 않는 자세다. 우리는 자신의 가능성을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도전하며 스스로를 증명해야 한다. 마라톤은 내게 늘 속삭인다.
“나는 할 수 있어. I can do it.”
그리고 나는 매번 스스로에게 이 말을 되뇌며 오늘도 변함없이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며 달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