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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릿한 새벽, 달빛 아래에서

by 허당 써니

숲의 가로등 불빛은 모두 꺼져 있다. 흑회색의 흐릿한 어둠이 길을 적당히 밝혀주어 뛰기에 충분하다.

『소년이 온다』의 마지막 장을 넘기며, 막내아들 ‘동호’를 하염없이 그리워하는 가족들의 먹먹한 슬픔에 나도 동요되었다. 두려움 속에 홀로 죽어갔던 동호를 생각하며 밖으로 나와 뛰기 시작했다. 얼마 전 보았던 둥근달은 반달이 되어 떠 있다. 뛰는 길마다 수북이 쌓여있는 나무 밑에 겹겹이 떨어진 나뭇잎들은 자연스럽게 겨울을 맞이하며 떨어졌을까? 아니면 바람, 눈, 비, 날아가는 새에 스쳐 어쩔 수 없이 떨어져 나간 것일까? 나뭇잎을 보며 5.18 시절, 겹겹이 쌓여간 젊은 청년들의 희생을 떠올리며 눈물이 또 흐른다.


달이 지고 서서히 해가 떠오른다. 땀에 젖은 몸이 상쾌함을 느끼며 서울숲을 걷기 시작했다. 몽련 꽃나무 숲으로 향하니, 3월 중순의 차가운 날씨 속에서도 봄이 찾아와 있었다. 봉우리를 살며시 틔운 몽련꽃이 일주일쯤 후면 환하게 피어날 준비를 하고 있다. 자연은 끊임없이 순환한다. 인간도 태어나면 언젠가는 죽는 법이다. 죽음은 내 뜻대로 되지 않지만, 후회 없는 하루를 살고자 노력한다. 그러나 삶은 언제나 쉬운 것이 아니다.


아침 출근 준비를 하던 중, 남편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자기야, 작은 형님이 전화하셨는데, 내 이름으로 들어둔 적금을 해지해 달라네. 형님이 몸이 안 좋아서 앞으로 일을 못 하신다고 하셔. 한 번 전화해 봐.” 오빠는 신용불량자여서 본인이름으로 통장이나 카드를 만들 수 없어 우리부부가 도와주고 있다.

달리며 충전됐던 에너지가 한순간에 가라앉았다. 다섯 손가락 중 아프지 않은 손가락이 없지만, 우리 다섯 형제 중에서도 엄마는 유독 작은오빠를 많이 챙겼다.


오빠는 모성애를 자극하는 외모를 가졌고, 하는 일마다 꼬이면서 엄마의 애간장을 녹였다. 중학생 때까지는 모범생이었지만, 고등학생이 되면서 많은 친구를 사귀며 삶이 복잡해졌다.

어린 시절,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마을 끝자락 개울가에서 놀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작은 오빠와 그의 친구들이 큰길가를 차지하고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흰 고무신을 신은 채, 가방 대신 기타와 섹스폰 같은 밴드부 악기를 어깨에 짊어지고, 교복 모자는 거꾸로 눌러쓰고, 바지는 헐렁하게 입은 채 검은 교복을 풀어헤친 모습이었다. 그 무리의 한가운데 작은 오빠가 있었다.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몸을 웅크리고 오빠와 눈이 마주치지 않도록 숨었다. 그런 오빠가 너무 창피했다.

하지만 오빠는 개의치 않았다. 그는 매일같이 친구들을 집으로 데려와 밥을 먹었다. 엄마는 한숨을 내쉬면서도 그들에게 밥을 차려주었다.

“저 놈은 대체 왜 맨날 친구들을 데리고 와서 밥을 먹어대는 거야? 한 달에 쌀 한 가마니가 그냥 없어지네. 못살겠어.”

잔소리를 하면서도 엄마는 한결같이 그들을 챙겼다. 밥을 먹고 난 후, 오빠와 친구들은 옷을 갈아입고 동네 개울 다리 밑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철렵을 하고, 악기 연습을 하며 밤을 새우곤 했다. 때때로 경찰서에서 전화가 오면, 엄마는 교회로 달려가 밤새 기도를 하셨다.

그러던 어느 날, 작은 오빠는 한 달 동안 친구들을 집에 데려오지 않았다. 엄마와도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집안의 공기는 무겁고, 식사 시간은 고요했다.

“어떻게 한 달 넘도록 엄마한테 한 마디도 안 할 수가 있냐.”

엄마는 혼자 앉아 서운함에 눈물을 훔치셨다. 엄마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서툴렀다. 사랑과 정을 직접적으로 표현하지 않았고, 우리 형제도 그런 엄마 밑에서 자라면서 자연스레 감정을 나누는 것에 서툴렀다.


오빠는 결혼을 했지만, 감정 기복이 심한 올케언니는 술을 너무 좋아했다. 엄마는 직접 올케언니에게 말하지 못하고 나에게만 술을 줄이라고 타일렀다. 엄마의 기도 제목에는 항상 작은오빠가 있었다. 엄마는 늘 복권을 사서 성경책에 꽂아두고는 당첨되면 작은오빠에게 주겠다고 하셨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작은오빠는 매일 엄마의 산소를 찾아 절을 했다. 표현하지 않았지만, 그는 엄마를 가장 사랑했던 자식이었다.


나는 전화를 걸었다.

“오빠, 아프다며? 얼마나 아프길래 일을 그만둔다는 거야?”

“아니, 내가 아니고 언니가 아파. 이제 쉬라 했어.”

나는 위로보다 걱정이 앞섰다. “언니 집에서 쉬면 매일 술만 더 마실 것 같은데, 오빠 괜찮겠어?”

오빠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어젯밤, 직원에게 메시지가 왔다. “전무님, 저희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져 의식을 잃었어요. 내일 상황 보고 말씀드릴게요.”

나는 “추워서 체력이 떨어지는 분들이 많아. 병원 가서 잘 치료하고, 아버지 잘 보살피고, 내일은 쉬도록 해. 별일 없을 거야.”라고 답장을 보냈다.

하지만 새벽 1시 30분, 메시지가 도착했다.

“전무님, 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나는 답장을 할 수 없었다. 그 황망함은 어떤 말로도 위로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의정부 의료원 앞 카페에서 직원들과 만나기로 했다. 우리는 누구나 한 번 태어나고 한 번 죽는다. 하지만 누군가는 너무 짧은 생을 마감한다. 주변인의 죽음은 시간이 지나며 희미해지지만, 가족을 잃은 아픔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삶은 매 순간이 소중하다. 오늘도 나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며 달렸다. 우리가 언젠가 맞이할 죽음 앞에서, 지금 이 순간을 더 충만하게 살아가야 한다.

“죽음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잊히는 순간이 진짜 죽음이다.”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나는 작은 행복에 감사하며, 그 순간을 소중히 여기며 살아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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