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친구들이 엄마아빠 온다고 기대하고 있어.”
영상통화 너머, 아들의 설레는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미소가 번졌다. “그래, 그럼 엄마 도착한 다음 날, 니가 부르고 싶은 친구들 다 불러. 한국식당에서 같이 저녁 먹자.”
“아냐, 엄마. 돈 아까워. 그냥 세 명만 데리고 갈게.”
그 순간 마음이 조금 아릿했다. 늘 친구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하고, 함께 나누는 걸 아끼지 않았던 나와는 다르게 아들은 검소하고 조심스럽다.
“이놈아, 너를 위해서야. 그런 자리에서 엄마가 해주는 걸로 아이들이 너를 더 편하게 대하고, 더 좋아하게 되는 거야.”
“엄마, 그렇게 안 해도 다들 잘해줘.”
아들의 말에 문득 깨달았다. 나는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인정받기 위해, 늘 무언가를 ‘줘야’ 한다고 생각해 왔던 걸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들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도 충분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새벽 4시 반. 서울숲의 벚꽃은 아직도 어제의 꿈을 꾸는 듯했다. 노란 가로등 사이로 붉게 물든 꽃들, 황토색 산책로 위에 나 혼자였다. 마치 내가 영화 속 주인공이 된 듯, 고요한 시간 속을 달렸다.
“왜 이리 얼굴이 붉지?”
잠에서 덜 깬 얼굴이 부끄러워서인지, 너무 이른 새벽 나 자신에게 화가 나서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하나 있었다. 이 순간, 나는 나를 위로하고 있었다. 몸을 움직이며, 숨을 들이쉬며, 서울숲의 자연과 함께 오늘도 달리고 있다.
4년 전, 이 동네로 이사오며 서울숲은 나의 걷기부 운동장이었다. 이제는 매일 아침 10km를 달리는 러너가 되었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엄마’로서, ‘아내’로서, 그리고 무엇보다 ‘나’로서 다시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있다.
오늘은 조금 특별한 아침이다.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떠나는 날. 2년 전, 유학을 결심하고 홀로 미국 땅에 발을 디딘 아들을 만나러 간다.
“엄마, 영주권 없으면 미국에서 취업 못 한대. 영주권 꼭 있어야 한다더라.”
나는 그동안 아이의 유학 생활에 대해 자세히 알지도,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냥 보내주기만 했던 무심한 엄마였다. 그런데 이제는 아이가, 나에게 먼저 다가와 정보를 주고, 조언을 건네준다.
‘내가 도와줄게. 이제는 엄마가 네 편이야.’
내 안에서 작고 단단한 다짐이 피어올랐다.
아이를 낳고, 제대로 안아준 기억이 별로 없다. 그저 일에 쫓겨 살았고, 아들은 언제나 내 삶의 뒷전이었다. “너는 엄마가 돼서 아이를 안아주지도 않니?”
친정엄마의 그 말처럼, 나 역시 사랑을 표현하지 못했다. 엄마 손을 잡아본 적조차 없고, ‘사랑해’라는 말은 입에 익지도 않았다. 그렇게 자라온 환경이, 나를 목석처럼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뒤늦게라도 아들을 품으려 했다. 늘 술에 찌들려 집에 들오 온 나는 알콜 냄새 가득한 몸으로 아들에게 다가갔고, 아이는 어색해하며 등을 돌렸다. 하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몇 달, 몇 해를 지나 어느 날 아이가 처음으로 내 품 안으로 몸을 돌렸을 때, 그 기적 같은 순간을 잊을 수 없다.
남편은 8개월째 휴직 중이다.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일에만 열정인 아내가 방치한 가족 안에서 오랜 시간 정을 쌓지 못하고 일로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다.
이번 여행은 단지 아들을 만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우리 세 사람이 처음으로 ‘가족’이라는 이름을 다시 짓기 위한 여정이다.
인천공항 제2터미널, 투썸플레이스 한 켠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다. 이제 12시간 후면 보고 싶은 아들을 만난다.
벚꽃이 피듯, 나도 다시 피어나고 있다.
일보다, 명예보다, 모든 것을 앞서야 할 단 하나의 가치.
지금부터는 그 이름을 내 열정의 중심에 두기로 했다.
지금부터는, 다시 가족의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