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도 여행 어디까지 가봤니?
전남 화순 이서면의 조용한 들녘 속에는 예상치 못한 비경이 숨겨져 있다. 단순한 시골 마을처럼 보이지만, 그 안에는 수백 년의 시간이 켜켜이 스며든 붉은 절벽과 유배지의 기억이 자리하고 있다.
화순군이 운영하는 ‘화순적벽투어’는 최근 입소문을 타고 주목받는 지역 명소다. 약 3시간 코스로 진행되는 이 투어는 전용버스를 타고 화순 이용대체육관에서 출발해 노루목적벽, 보산적벽, 망향정, 망미정을 돌아 다시 시작점으로 돌아오는 방식이다.
첫 장면은 창 너머로 보이는 거북섬이다. 적벽을 향해 헤엄치는 듯한 이 바위섬은 실제 정차 없이 지나가지만 그 형상만으로도 강한 인상을 남긴다. 본격적인 절경은 노루목적벽과 보산적벽 구간에서 시작된다.
‘화순적벽’은 7km에 이르는 붉은 절벽 지대로, 창랑리, 보산리, 장학리 일대를 따라 뻗어 있다. 조선 중종 때 기묘사화로 이곳에 유배된 신재 최산두가 중국의 적벽에 견줄 만한 장관이라 표현한 데서 유래된 이름이다. 투어에 참여해야만 접근 가능한 절벽들이 있어 희소성도 높다.
노루의 목을 닮았다는 데서 유래된 ‘노루목적벽’은 예술가들이 즐겨 찾던 경승지로, 기암절벽과 강의 흐름이 어우러진 자연 예술이다. 옆에 자리한 ‘보산적벽’은 망향정을 뒤로 품은 채 보다 고요하고 정제된 분위기를 풍긴다. 바위 면의 정교한 결은 마치 조각 작품처럼 느껴진다.
망향정은 단순한 쉼터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동복댐 건설로 수몰된 마을의 고향 사람들을 기리는 정자로, 매년 천제가 열리며 그들의 기억을 되새긴다. 윤창병 목수의 손을 거쳐 전통 방식으로 지어진 이곳에는 망향비와 망배단, 천제단 등이 함께 남아 있다.
인근 망미정은 한 선비의 고뇌가 녹아든 공간이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의 삼전도 항복 소식을 들은 정지준이 충격과 분노를 안고 은거하며 세운 정자다. 학문에 몰두하며 생을 마감한 그의 발자취는 지금도 이곳에서 조용히 숨 쉬고 있다. 원래는 적벽 강가에 있었으나, 수몰을 피해 1983년 현 위치로 옮겨졌다.
화순적벽투어는 단순히 풍경을 감상하는 수준을 넘어선다. 한 걸음마다 수백 년 전 선비의 숨결이 느껴지고, 수몰민들의 슬픔과 의지가 고요한 자연과 어우러진다. 설명을 곁들인 해설사와 함께 자연과 역사를 함께 걷는 여정은 마음속 깊이 남는 경험을 선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