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균, 쇠 - 제러드 다이아몬드
어느 날 유튜브 알고리즘이 내게 낯선 책 제목 하나를 건넸다.
고작 20분짜리 요약 영상이었다.
역사에 흥미가 많던 나는 설민석 선생님의 숏츠 영상을 즐겨보며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러다 '책읽어드립니다'라는 프로그램에서 '총,균,쇠'를 다룬 회차를 우연히 보게 됐다.
처음엔 가벼운 호기심이었다. 그러나 영상을 다 보고 난 뒤에도 마음 한켠이 허전했다.
분명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어딘가 빠진 2%가 계속 신경 쓰였다.
그렇게 나는 고민 끝에 결심했다.
직접 읽어보자.
평소 두꺼운 책을 사지도, 즐기지도 않던 내가
무려 700쪽에 달하는 이 책을 구매하는 데에는 꽤 큰 결심이 필요했다.
책을 받아든 순간, 나는 두 번 놀랐다.
처음은 상상 이상으로 묵직한 두께였고,
두 번째는 그 안에 자간 없이 빼곡하게 들어찬 글자들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총균쇠’ 나들이는 예상보다 훨씬 더 깊고,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질문을 던지는 여정이었다.
이 글은 단순히 내가 이 책을 얼마나 제대로 읽었는지를 되돌아보는 기록이다.
본문에 담긴 생각은 어디까지나 개인적 관점이며,
저자나 해석자들의 본래 의도와는 다를 수 있음을 미리 밝힌다.
책을 끝까지 읽고 나니, 질문이 더 많아졌다
인류의 불평등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이 책이 던지는 핵심 질문은 단 하나다.
"왜 어떤 사회는 발전했고, 어떤 사회는 정복당했는가?"
쉽게 말해, 왜 유럽은 아메리카를 정복할 수 있었을까?
그 이유를 총이나 잔인성, 지능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저자인 재레드 다이아몬드는 그 관점을 부정한다.
그는 모든 인류는 비슷한 지능을 가졌다고 전제한다.
대신 환경과 지리, 식량 생산과 질병의 차이가 역사의 흐름을 갈랐다고 주장한다.
처음에는 생소했지만, 설명은 점점 설득력을 더해갔다.
가장 먼저 곡식을 심은 대륙이 역사의 주인공이 된다
책을 읽다 보면 농업이 전부였다고 느껴질 정도다.
인류 문명의 격차는 결국 ‘잉여 식량’에서 비롯되었다는 설명이다.
식량이 남아돌기 시작하면서 계층이 생기고, 기술이 생겼다.
그리고 곡식을 남보다 먼저 재배한 지역이 경쟁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이 단순한 구조가, 거대한 문명의 기반이 된다니.
책을 읽기 전에는 생각해보지 못한 논리였다.
대륙의 축 방향이 문명의 운명을 바꿨다?
‘유라시아 대륙은 동서로 길고, 아프리카와 아메리카는 남북으로 길다.’
너무나 당연한 이 사실이 이렇게까지 중요할 줄은 몰랐다.
동서 방향으로 길게 뻗은 대륙은 같은 기후대가 넓게 퍼져 있다.
같은 작물과 가축이 더 쉽게 퍼져 나갈 수 있는 조건이다.
반대로 남북 방향으로 긴 대륙은, 기후대가 자주 바뀌고 식량 전파가 어려웠다.
이러한 구조적 차이가 문명의 성장 속도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다 읽고 나니, 세계 지도를 다시 보게 되었다.
가장 치명적인 무기는 병이었다
나는 제목에서 ‘총’과 ‘쇠’에 집중했다.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 가장 기억에 남은 건 ‘균’이었다.
유럽인들이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할 수 있었던 진짜 이유.
그건 총이나 전투력이 아니라, ‘면역력’이었다.
가축과 가까이 지낸 유라시아인들은 수천 년간 병에 시달리며 면역을 키워왔다.
반면 원주민들은 그런 경험이 없었다.
전염병은 총보다 먼저 도착했고, 더 많은 생명을 앗아갔다.
이렇게 균이 세계의 권력을 바꾸었다.
지리적 우위가 만든 문명의 불균형
읽는 내내 불편한 진실들이 이어졌다.
내가 알던 세계사는 대부분 유럽 중심이었다.
하지만 이 책은 철저히 ‘환경 중심’이다.
똑같은 사람이지만, 살아가는 땅이 달랐고, 그 땅의 조건이 전부를 갈랐다.
물론 모든 것을 환경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저자 역시 자신이 내린 결론이 전부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이론서가 아니라 ‘시선의 전환’처럼 느껴졌다.
지금 내가 있는 위치가 어디서부터 비롯된 것인지 묻게 한다.
나는 여전히 2%가 부족하다
책을 다 읽고 나서도 이해하지 못한 부분이 많다.
역사, 생물학, 인류학이 한데 뒤섞여 있어 몇몇 장은 여러 번 되짚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읽기 전과 읽은 후의 시선이 달라졌다는 점이다.
나는 이제 '지리'를 다르게 본다.
'환경'은 더 이상 배경이 아니라, 사건의 주체처럼 느껴진다.
나에게 남은 2%의 궁금증은, 어쩌면 내가 살아가며 찾아야 할 다음 질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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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책과 내용, 사진은 모두 김 기자 방 한켠 책장에서 먼지와 함께 발굴된 귀중한 자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