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성룡 Jun 18. 2021

어느 성소수자의 죽음에 부쳐

아파하는 나도 그저 그런 방관자였다

밤이 늦은 시각.. 집에 들어와 쇼셜미디어 창을 여는데.. 고독한 투쟁을 홀로 이어가던 어느 성소수자 활동가의 부음 기사가 뜬다. 잘 안다면 잘 아는 사이지만, 그의 외로움과 고통, 번민과 소외에 대해 얼마나 알고 얼마나 공감을 했느냐고 묻는다면 안다고 답할 수 없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밀러들었다  


얼마전에 자신의 이야기를 쓴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따로 주문하지는 않았다. 거의 매일 힘들고 지친다는 이야기, 세상으로 부터 입은 커다란 상처와 믿었던 사람들로 부터 받은 날선 공격으로 그의 영혼은 날로 피폐해갔고, 독한 말들에 중독되어 발버둥을 쳐도  쉽게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거의 매일 쓰는 페이스북 포스팅을 통해 지켜보면서도, 기껏 힘내라는 몇 줄 글이나, 이모티콘 밖에 날릴 수 밖에 없는 나 자신이 무력하게 느껴져 제대로 읽는 것 조차 저어됐던 게 사실이다.


전화가 걸려왔었고, 힘겨운 일상을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기라도 한 듯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응대했다. 진주에 오면 꼭 연락하라고, 만나서 맛나는 걸 사주겠노라, 소주라도 한 잔 하자는 아마도 상투적으로 들렸을 말들을 진심으로 건넸다. 하지만 그도 나도 막상 만나면 호칭부터 서로 어떻게 불러야 할지, 서먹함을 털어낼 제스쳐나 정감 어린 말들을 상처 없이 할 수 있을까란 의심과 두려움의 벽이 가로놓여 있었던 것 같다.

그 후에도 그는 몇 차례 섬에서 육지를 오갔고 진주에도 들렀지만 연락하고 만나지는 못했다.

 

다만 전화를 걸어와 책을 보냈는데 받아보았냐고 물었고, 어찌된 영문인지 난 받아보지 못했다. 새 주소를 그에게 다시 보냈는지 아닌지 희미 하지만, 한 두 주 정도 경비실 택배함을 열심히 들여다 보긴 했다. 그러나 끝내 책은 오지 않았다.

왜 연락을 다시 해 볼 생각을 안했던 걸까. 힘들어 하는 줄글들을 보면서도 전화라도 해볼 생각을 왜 못했을까. 전화를 했더라면 혹시나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지는 않았을까. 내가 뭐라고 그의 상처를 다독이고 마음을 돌릴 수 있었겠는가. 그저 좀 더 다정하게 말을 걸지 못한 것에 대한, 애써 눈을 돌리고 외면하고자 했던 마음의 짐과 죄인된 심정을 덜고자 하는 방어용 자책일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언제까지 이런 부음을 들어야 하는가. 그저 명복을 빈다는 비겁하고 나약한 말로 언제까지 추도만 해야 하는가.

약자와 소수자들을 끝내 죽음으로 내모는 혐오와 힐난의 말들, 흉기가 된 입과 혀끝은 반성할 줄 멈출줄을 모르고 날로 더 흉포해지고, 뻔뻔해져만 가는데.


그는 오늘 하루 ‘극단적 선택’으로 죽음에 이른 게 아니다. 그는 흉기가 된 말들에 찔리고 맞아 매일 피흘리고 신음하다 고통에 겨운 나머지 끝내 영원한 쉼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상처입어 고통속에 쓰러진 사람은 있어도 그를 찌른 사람의 실체는 없다.

한 사람이 너무 많은 사람을 죽여도 범죄가 안되지만, 너무 많은 사람이 한 사람을 죽여도 범죄가 안되는 것이다.

그것이 이 시대의 공포요 비극의 근원이다.

부디 모든 아픔들을 씻어내고 영면하시게. 기홍씨.

작가의 이전글 불안을 먹고 자라는 사업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