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처럼 넷플릭스가 우선이 아니었던 시절 집에 귀가하면 티비를 틀고 내가 좋아하는 시트콤들을 마구 보았었다. 대충 기억이 나는대로 적어보자면 순풍 산부인과, 웬만해서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똑바로 살아라, 하이킥 시리즈, 안녕 프란체스카, 논스톱 등등이 있다. 내 최애는 똑바로 살아라이다. 어쩜 매일 하는 시트콤인데도 겹치지 않는 소재로 이렇게까지 재미를 주는 건지 경이롭기 까지 했다. 나또한 유능한 시트콤 작가가 되어보겠다는 의지하에 각 에피소드가 왜 웃겼는지 분석해서 공식을 알아내보고자 하는 노력도 잠깐 해보기도 했다(결국에는 포기했지만). 늘 신기하고 경이로웠다. 어떻게 저런 보통의 상황에서 저런 생각과 행동을 이끌어내는지 말이다.
내 최애 에피소드 중에 하나는 똑바로 살아라에서 '자존심 센 남자' 편이다. 가수 윤종신이 출연한 편인데 크게 웃길 요소가 없어보이는 내용인데 어쩜 그렇게 재밌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내용은 이렇다. 음악을 업으로 삼고 있지만 아직은 유명세를 얻지 못한 탓에 생활고에 찌든 남자 윤종신은 능력 있는 정형외과 의사와 소개팅을 하고 데이트를 한다. 웃음 공식은 대체로 이렇다. 자존심 부리는 상황마다 1) 돈이 없는데 써야하는 상황, 도움을 받아도 되는 상황에서 주인공은 됐다며 때를 쓴다. 2) 그리고 반복되는 대사 '그건 말이 안되구요'. 적고보니 큰 내용이 없는데 아직도 웃음버튼이다.
이러한 시트콤적 요소를 이미 삶에 적용한 예들을 간혹 보았다. 예를 들어 길을 걷다 넘어지면 부끄럽게 생각하기보다, 머릿속에서 시트콤 효과음인 '두둥~ 창공을 향해 달려 하이킥 하이킥'을 재생한다. 그러면 순간적으로 창피함이 사라지고, 그 상황이 마치 하루의 작은 에피소드처럼 느껴진다. 버스에서 문이 안닫히거나, 친구와 카페에서 주문이 꼬이는 작은 사건들도 모두 '오늘의 장면'이 된다. 이렇게 시트콤적 요소를 곁들인 사고를 하게 되면 감정 소모를 줄이고, 웃음을 늘릴 수 있다. 1) 좌절감, 창피함, 답답함 같은 부정적 감정을 '이건 그냥 에피소드'라고 인식하면서 가볍게 흘려보낼 수 있다. 2) 인간관계에서도, 예상치 못한 반응이나 작은 갈등을 지나치게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상황을 한 발짝 떨어져 관찰할 수 있다. 실제 내 삶에서도 작은 사건들을 이렇게 변환하면서 초점이 바뀌고 감정은 가벼워진다. 시트콤에서처럼 왜 저러지? 싶은 엉뚱한 행도, 결과적으로는 생각보다 심각하지 않다.
능력만 있다면 시트콤 작가가 되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자주 하곤 했지만 그건 안되는 것 같고 세미 시트콤 작가로서 살아보고 싶다. 즉 내 일상을 조금 더 시트콤처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삶이 조금 더 유쾌해진다. 만족스럽지 않은 상황에서도 웃음과 경이로움으로 초점을 바꾸는 습관, 그것이 바로 내 삶을 조금 더 가볍고, 웃음 가득하게 만드는 '시트콤적 사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