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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이 넓다, 아니 하늘이 넓다

로드 에세이

by 심웅섭

13. 땅이 넓다, 아니 하늘이 넓다.

로스 아르꼬스(Los Arcos) – 비아나(Viana), 10월 25일



오늘도 어둠을 뚫고 출발, 시작한 지 불과 일주일인데 점점 해가 짧아지는 게 느껴진다. 숙소를 나와서 마을을 벗어날 즈음, 동쪽 하늘에 장관이 펼쳐진다. 아침노을이다. 집 몇 채를 배경으로 넓은 지평선이 펼쳐지고 그 지평선 위로 하늘이 온통 붉은 물감을 칠해놓은 듯하다.


장엄한 우주 쇼를 왼쪽에 두고 끝없이 뻗어있는 까미노를 걷는다. 땅이 넓다. 아니, 땅이 이렇게 넓었던가, 바보 같은 생각이 든다.


스페인은 크게 봐서 유년기 지형이다. 우리나라는 노년기 지형이라서 만만하고 아기자기한 산들이 많지만 스페인은 야트막한 구릉이나 넓은 평원이 많다. 아르헨티나에서 팜파스를 1박 2일 간 차로 달려본 적도 있지만 느낌은 오히려 스페인 평원이 더 넓다는 느낌이다. 아무것도 걸리는 것 없는 평원보다는 구릉과 야트막한 산들이 아득히 보이는 게 더 넓어 보이는, 일종의 착시 인지도 모르겠다.


크고 작은 산들과 집과 빌딩과 간판들, 더 가까이는 신호등과 행인과 위험한 자동차들, 늘 가까운 것들만 바라보고 살던 나에게 이렇게 넓은 지평선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평지인가 싶을 정도의 완만한 구릉들이 지평선을 이루고, 그 지평선을 경계로 땅과 하늘이 만나고, 산티아고 순례길은 지평선의 한 점을 향해 곧게 뻗어있다. 하늘과 땅과 까미노가 만나는 점을 향해 나는 터덜터덜 아무 생각 없이 걷는다. 넓은 흙길인데 자갈 하나 없다. 스틱까지 들었으니 넘어질 염려도 없다. 고개를 들었다. 이제는 땅을 보고 걷는 게 아니라 하늘을 보며 걷는다.


하늘이 넓다.

문득 땅보다 하늘이 더 넓다는 생각이 든다.


하늘이 흐물흐물 내 속으로 녹아든다.

아니 내가 하늘로 녹아드는 것이리라.

하늘이 깊다. 빠질 것 같다.

이런, 내가 땅 위에 살고 있는 게 아니라 하늘 아래 살고 있구나.

내가 땅에 속한 존재가 아니라 하늘에 속한 존재로구나



하늘과 땅과 길과 내가 하나가 된 듯,

그렇게 흐느적거리며 걷는다.


그렇지만 자연만으로는 좀 심심하지 않아? 이렇게 말하는 듯, 30년 만의 휴가로 찾아온 순례자를 위해 스페인 사람들은 하늘을 캔버스 삼아 멋진 행위예술을 준비해두었다. 불과 1-2분을 간격으로 수 십 대의 비행기들이 하늘에 흰색 크레파스로 선을 긋는다. 햇살을 받아 반짝거리는 작은 비행기가 열심히 선을 긋고 지나가면 그 선은 조금씩 넓어지고, 또 다른 비행기가 이번에는 다른 방향에서 선을 긋는다. 선들의 방향을 보니 내가 걷는 까미노, 산티아고 방향이다. 하늘에 이정표라도 그리려는 걸까? 하늘과 땅과 스페인 사람들이 모두 나의 순례를 축복하고 응원하고 있다.



비아나(Viana)에 도착, 이제 점심시간이다. 비아나는 성당 광장과 순례길 주변으로 레스토랑과 오래된 가게들이 모여 있는 작은 마을이다.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이곳을 지나쳐 로그로뇨(Logrono)까지 걷는다. 로그로뇨(Logrono)까지 두 시간만 걸으면 더 걸으면 되는데, 너무 짧게 잡았나 보다. 그러나 이미 숙소를 예약하고 짐까지 보냈으니 어쩔 수 없다. 광장 주변의 노천카페에서 보까띠요에 와인을 마시며 여유를 즐긴다. 무슨 성당의 행사가 있는지 사람들이 광장에 가득한데 거의 마을 주민들이다. 햇살이 따사롭다.



웬 여인이 순례길에 어울리지 않는 드레시한 복장에 모자까지 갖추고 옆 테이블에 앉는다. 조금 있으니 남편으로 보이는 잘 생긴 남자가 와서 같이 앉는다. 선한 눈매에 적당한 턱수염이 보기 좋다. 독일에서 이곳까지 카라반을 끌고 왔단다. 엔지니어로 근무하다가 정년퇴직을 하고 부부가 같이 유럽여행을 다니는데, 하루 20km씩, 아주 천천히 야금야금 다닌단다. 나이가 나랑 비슷하거나 한 두 살쯤 많을 듯싶은데, 열심히 일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당당함과 마음의 평화가 느껴진다. 보기 좋다. 그런데 나에게는 그 당당함과 마음의 평화가 과연 있을까?


따지고 보면 나도 꽤나 성실하게, 틀에 맞추어 살았다. 내 아내나 직장 동료들이 이 말을 들으면 웃을지언정,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때는 선생님과 부모님 말을 어긴 적이 별로 없다. 숙제도 꼬박꼬박, 국민교육헌장도 달달 외웠고 불온 삐라를 주우면 파출소로 달려갔다.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떠드는 사람 이름도 모두 적어서 일러바쳤다. 반장, 어린이 회장, 학생회장......, 크고 작은 애들 감투는 다 써봤고 집에서는 약하고 막내둥이라고 특별대접을 받았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아버지의 죽음과 사춘기가 겹쳐 제법 찐한 방황의 시간을 보내고 덕분에 속칭 일류대학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괜찮은 직장에 들어가서 별 탈 없이 정년퇴직을 맞았다. 좋은 남편인지 아내에게 물어볼 자신은 없지만 가족들에게 자상한 가장이었다고 스스로 생각한다.



그런데 그걸로 내가 잘 살았다고 볼 수 있을까? 결국은 주변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그들이 정해 준 코스를 따라서 튀지 않고 살았다는 뜻이니 어쩌면 내 인생의 주인으로 살지 못하고 배우로 산 것은 아닐까? 내 삶의 주인공일 수는 있으나 감독이나 시나리오 작가는 아니었다는 말이다. 내가 저 남자의 당당한 평화로움을 부러워하는 것은, 어쩌면 그 때문은 아닐까?


호젓하다 못해 쓸쓸해 보이기까지 한 조그만 마을, 비야나에서 오늘은 휴식 같은 하루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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