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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내가 너를 용서하노라

로드 에세이

by 심웅섭

12. 스페인, 내가 너를 용서하노라.

에스떼야 (Estella) - 로스 아르꼬스(Los Arcos), 10월 24일


순례 6일차, 숙소를 나서서 얼마 걷지 않았는데 순례자들이 웅성웅성 모여 있다. 뭔가 싶어서 걸음을 멈춰보니 성당으로 보이는 건물 앞에 수도꼭지가 달려있고 순례자들이 거기서 와인을 따라 마시고 증명사진도 찍는다. 아하, 여기가 바로 그 유명한 이라체 수도원이구나. 이곳이 스페인에서 워낙에 유명한 포도주 산지라고는 해도 무료로 포도주를 나눠주는 일은 쉽지 않을 텐데, 순례자들을 위한 배려가 고맙다. 이른 아침이라서 조금 망설여지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반 잔을 따라 마셨다. 왠지 그래야만 할 것 같다.

몇 걸음 옮기는데 마을 끝자락에 카페를 겸한 와이너리가 열려있다. 아무리 갈 길이 멀다고 해도 이걸 그냥 지나칠 수야 없지, 아내와 판쵸 우의를 벗어 놓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 넓지 않은 실내에는 옛날 와인을 만들던 기구들이 전시돼 있다. 구리를 두들겨 만든 증류기, 오크통처럼 나무를 이어 붙인 압착기 등에서 세월의 깊이가 느껴진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칭 목수인 내 눈을 끄는 것은 오래된 가구들이다. 캐비넷이며 테이블이며 찬장들이 전시돼 있는데, 모두 집성을 하지 않은 통판들, 두께 40mm정도의 두꺼운 판재로 만들어져 있다. 이렇게 가구를 만들려면 우선 두꺼운 나무를 구해야하고 건조를 잘 해야 한다, 최소한 몇 년 동안, 대충 건조했다가는 만들어 놓은 가구가 갈라지거나 틀어질 게 뻔하다. 나무끼리의 접합은 짜맞춤이 아니라 못과 접착제를 쓴 듯 보이고 표면도 대패질을 했으련만 매끈하지 못하다. 음각으로 문양을 새겼는데 이 또한 미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뛰어난 수준은 아니다.


그런데 이런 질감, 느낌들이 나를 매료시킨다. 정제되고 날렵하고 현대적인 것들도 좋긴 하지만 정작 내 눈길과 손길을 사로잡는 가구는 이처럼 오래되고 투박하고 세월의 손때가 묻은 놈들이다. 이런 가구의 표면을 만지다보면 산에서 나무를 자르고 켜고 뚝딱뚝딱 만든 목수들의 땀과, 그걸 수백 년 간 닦고 어루만지며 사용했던 사람들의 체온과 숨결이 느껴진다. 다소 투박하고 거친 것은 손 맛이려니 하면 그만이다.


지하는 와인을 저장했던 공간인데 벽속에 엄청나게 큰 통들이 나란히 묻혀있고 조금 작은 오크통들, 먼지 쌓인 와인 병들이 잠자고 있다. 1933년이라고 쓰인 글씨도 보인다. 얼마나 맛이 깊을까보다 얼마나 비쌀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든다.


나는 사실 스페인에 대한 선입견이 좋지 않았다. 20년 전 쯤 멕시코와 칠레, 아르헨티나를 취재한 적이 있는데 주제는 기록문화에 대한 것이었다. 그런데 오래된 기록문화를 찾다보니 자연스럽게 스페인의 침략과정이 나오게 되고 이들의 조상들이 얼마나 많은 만행을 저질렀는지를 알게 되었다. 총을 든 스페인 군에 짐승처럼 사냥당하고, 돌멩이로 맞서며 수천 km를 쫓겼다는 아르헨티나의 한 부족, 그 부족의 후예는 조상들에게서 구전으로 내려 온 이야기를 들려주며 눈물을 흘렸고, 나도 눈물을 흘렸다. 그들의 아픔을 정말로 공감하는 눈물이었다.


역사를 기록한 책에는 스페인 개척자가 원주민 아이를 사냥개의 먹이로 주는 끔찍한 삽화도 들어 있었다. 1550년, 원주민을 인간으로 존중할 것이냐 아니냐를 놓고 격렬한 바야돌리드 논쟁을 벌였다는 이야기는 역설적으로 스페인의 만행을 넉넉히 짐작하게 만드는 사건이다.



그런데 이 투박하고 실용적인 가구들을 바라보며 마음이 조금씩 누그러진다. 어쩌면 땀을 흘려 포도를 따서 포도주를 담그고 가구를 만들던 이곳의 사람들을 미워할 이유는 없을 것 같다. 국가, 혹은 종교라는 이름으로 이루어진 집단의 만행에 대해 이곳에 사는 순박한 사람들은 알지도 못했으리라. 더구나 지금 스페인 사람들은 그 사람들의 후손 아닌가? 조상들이 잘 못 했다 쳐도 그건 벌써 몇 백 년 지났으니 자손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말이다.


마음이 약해진다. 와이너리에서 아내와 커피를 마시며 나는 그동안 스페인에 대해 가졌던 나쁜 선입견을 버린다. 아니, 용서한다. 생각해보니 며칠 전, 용서의 언덕을 넘은 데다가 조금 전에는 수도꼭지에서 포도주까지 얻어 마셨다. 공짜인줄 알았더니 비싼 포도주였던 셈이다.


로스 아르꼬스에서는 공립 알베르게에서 묵었다. 낡고 크지 않은 건물에 이층 침대가 다닥다닥 붙어있다. 침대도 좁고 낡아서 오르내리거나 몸을 움직이면 삐걱거리는 소리가 난다. 그래도 재미있다. 한국 순례자들과 같은 숙소에 든 것이다. 한국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일단 마음이 편하다. 말을 알아들으려고 귀를 쫑긋할 것도 없고 혹시나 매너 없는 행동은 아닌지 조심할 필요도 없다.


이들과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고 잠시 동네도 살펴보고, 아내와 광장부근의 바에서 생맥주와 치킨을 시켜 먹었다. 늦은 오후 햇살아래 노천 바에 앉아서 오래된 성당을 바라보며 마시는 생맥주가 별미다. 와인 자랑을 했지만 사실 스페인 여행을 하다보면 세르베차라고 불리는 생맥주도 빼놓을 수 없다. 수도꼭지처럼 생긴 곳에서 거품과 함께 따라주는 것은 우리나라와 똑 같은데, 씁쓸한 맹물 맛이 아니라 좀 더 진한 감칠맛과 호프 향이 입에 가득하다. 따라서 맥주를 시킬 때 세르베차 그란데 (큰 거)라고 꼭 말해야한다.



결혼 30년, 직장생활 30여년 만에 처음으로 길고도 자유로운 여행, 휴가를 받았다. 물론 아내와 짧은 외국여행은 몇 번 다녀왔고 결혼 10년차에는 네 가족이 한 달간 미국여행을 다녀 온 적도 있다 (나는 회사를 가야하니 2주 후 먼저 귀국했지만). 회사에서는 출장으로 10여 개 국을 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여행처럼 자유로운 여행, 아니 휴가는 없었다. 짧은 외국여행은 여기저기 둘러보고 사진 찍기에 바빴고, 패키지에 친척 방문을 붙인 미국여행은 정해진 코스를 따라 도느라, 그리고 어린 아들, 딸을 돌보느라 자유롭지 않았다. 출장이야 아무리 좋은 곳을 가도 일로 가는 거니 여행이랄 것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 순례는 그런 여행들과 차원이 다르다. 일단 두 달이라는 엄청나게 긴 시간이 주어져있다. 꼭 정해진 일정이나 코스가 있는 것도 아니다. 물론 순례길을 따라 걷고 있지만 한 곳에 더 머물 수도 있고 주변을 둘러보는 여행자가 될 수도 있다. 아이들을 챙길 일도 없다. 그냥 온전히 내가 즐기고 쉬고 느끼면 된다.



광장에서 아내와 치킨과 생맥주를 먹고 마시며 갑자기 자유롭다고 느끼는 건, 뭔가를 해야 하거나 누군가를 책임져야하는 인생의 기본적인 의무에서 처음으로 해방된 때문이리라. 그래, 이건 내 인생의 휴가야. 학교나 군대나 직장에서는 누군가가 휴가를 정해주었지만 이 휴가는 내가 나 스스로에게 주는 셀프 휴가야. 그동안 고생했으니 맘껏 쉬렴. 순례자들의 왁자지껄 떠드는 소리, 깔깔 거리는 웃음소리가 기분 좋다. 해는 기울어가고 치킨도 식었는데 자리를 뜨고 싶지 않다. 자유롭다.



숙소에 들어와서는 내일 묵을 숙소를 예약해야한다. 오늘은 처음으로 전화예약에 도전했다. 스마트 폰에 buen camino라는 앱이 있어서 이걸 통하면 카드로 결제를 할 수 있는데, 가끔은 전화로 예약해야하는 숙소도 있다. 알베르게를 관리하는 노부부가 영어를 하기에 방이 스페인어로 뭐냐고 물었다. 아비따숑(habitation)이란다. 그럼 됐다. 앱에서 숙소를 골라 전화번호를 눌렀다. 잘 할 수 있을까? 두근두근.

“올라”


굵직한 여자 목소리, 할머니쯤 되겠다.


“올라, 마냐나 우노 아비따숑 뽀르 도스 뻬르소나 꼰 바뇨, 뽀씨블레?”


대충 외운 스페인어 단어들을 죽 늘어놨다. 해석하자면 ‘내일 방 하나, 두 사람, 욕실 딸린 거, 가능?’ 이정도니 사실 회화라고 하기에는 민망한 수준이다. 다행히 알아 듣는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놈브레?” 하고 묻는 게 이름을 묻는 것 같은데 내 아무리 이름을 말해도 알아듣지를 못한다. 나중에는 포기했는지 이름은 됐단다. 할머니도 나의 엄청난 스페인어가 기가 막힌 지 허허 웃으며 전화를 끊는다. 어쨌거나 나의 스페인어는 통했다. 한국 순례자들이 깔깔거리며 잘했다고 칭찬을 해 주고 나는 어깨가 으쓱, 자신감이 하늘을 찌른다. 그래, 이제부터는 스페인어다. 까짓거 되지도 않는 영어로 서로 고생하느니 차라리 서툰 스페인어가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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