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길에서 나를 보다

로드 에세이

by 심웅섭

길에서 나를 보다

에스떼야 (Estella) 10월23일.


걷는 게 지루해질 무렵, 길가에 갑자기 예약한 숙소가 나타났다. 반갑다. 3층짜리 예쁘장한 호텔인데 순례자를 위한 알베르게를 겸하고 있다. 일단 깔끔하고 엘리베이터도 있는데다가 뷔페식도 훌륭하다. 며칠간 시골길만 걷다가 갑자기 문명세계로 돌아온 느낌이다. 뜨거운 물에 샤워하고, 순례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저녁식사에 와인도 한 잔 했다.



뭔가 아쉬워서 어정거리는데 크리스틴이 휴게실에 혼자 앉아있다. 30대쯤으로 보이는 영국 여자인데 순례길에서 대충 인사를 나누고 아는 체하는 사이다. 밥 먹었냐? 어쩌고 물어보는데 안색이 안 좋다. 괜찮냐고 물으니 속이 꽉 막히고 소화가 안 된단다.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 나갔다.

“내가 좀 도와줄까? 내가 침 좀 놓거든”

“침? 너 그럼 의사야?”

“아니, 의사는 아니야. 자격증도 없어.

그런데 나 스스로와 가족에게는 가끔 놓지”


워낙 급했는지 아니면 자격증 따위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지는 몰라도 그리하란다. 어느새 독일 친구 조지도 지나다가 합석했다. 독일인이 보는 앞에서 영국 여자에게 한국 야매 침쟁이가 침을 놓게 된 것이다.


우선 맥진을 한다. 솔직히 맥은 잘 모른다. 이치는 대충 알지만 맥을 보고 병의 증세와 근원을 알아내는 것은 초보 야매인 나로서는 먼 얘기다. 내가 맥진을 하는 주된 이유는 혹시나 부정맥이 있는지, 그리고 침을 놓기 전 후의 차이가 생기는지를 알기 위해서다. 다행히 부정맥은 없다. 사관을 트고 두번째 와 세번째 발가락 뼈가 갈라지는 곳, 함곡에 침을 놓고 잠시 기다린다. 사실은 이 정도만해도 웬만한 위장문제는 안정이 된다. 여기에 공손, 내관, 임읍, 외관, 마지막으로 족삼리를 뚫어서 기운을 내린다.


이정도로 침을 놓고 15분 정도 기다리면 몸이 따뜻해지고 스르르 풀리는 느낌이 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예민한 사람들은 손과 발에 따뜻한 기운이 물처럼 흘러들어가는 느낌을 받기도 한다. 참 신기한 일이다. 머리카락보다 가늘다는 0.25mm의 침으로 몸을 다스릴 수 있다는 것 말이다. 그리고 감사한 일이다. 주머니에 작은 침 몇 쌈 들고다니다가 소파에 앉아서 간단하게 치료할 수 있다는 것 말이다. 이점은 현대의학이 아무리 발전했다고 해도 절대로 따라 올 수 없는 장점이다.


내친김에 기 치료까지 보탰다. 환부에 직접 손을 대지 않고 약간 띄워서 기운을 느끼면서 기운에 따라 정리를 한다. 기 치료는 기공 수련을 하면서 터득했는데 한 동안은 제법 기운도 강하고 치료효과도 좋았었다. 그러나 자칫 사이비로 찍히거나 불법 의료행위로 고발당할까 봐 한국에서는 여간해서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스페인에서 이 정도로 고발당하거나 사이비로 매장 당할 것 같지는 않다.


다행히 안색이 돌아오고 손도 따뜻해진다. 많이 좋아졌다면서 고마워한다. 말문이 터져서 얘기를 나눠보니 크리스틴은 트라우마를 치료하는 심리치료사란다. 기 치료에 대한 걸 묻더니 자신을 리딩(Reading)을 할 줄 안단다. 그게 뭐냐고 물으니 전문용어로 뭐라고 하는데 잘 모르겠다. 처음 듣는 단어에 워낙 빠른 영국식 영어가 귀에 들어 올 리 없다. 다시 물었다. 이번엔 좀 쉽게 설명한다. 뭔가 사람들의 심리상태, 혹은 영적인 상태를 읽어낸다는 뜻인 듯하다. 평범해 보이는 서양여자가 기치료와 비슷한 방법으로 리딩을 한다니 뜻밖이다. 호기심이 발동, 나를 리딩해 주겠냐고 하니 그러란다. 이번에는 위치가 뒤바뀌었다. 크리스틴이 시술자, 내가 피술자다.



눈을 감고 내 머리 위로 두 손으로 감싸듯 들고는 1-2분간 침묵한다. 미간을 찌푸리고 잔뜩 집중하는 게 뭔가 기운을 쓰는, 혹은 연결하는 눈치다. 조지도 신기한 듯 조용히 지켜본다.


리딩을 끝냈다. 나는 어떤 벽에 안전하게 보호되어 있단다. 안전하다는 말은 좋은데 벽이라는 말이 걸린다. 느낌이 이상해서 되물었다. 솔까말, 벽이라니 그건 무슨 뜻이냐? 내가 벽 밖으로 나갈 수도 있는데, 그러고도 싶은데 그냥 안전한 벽을 만들고 그 속에 머물고 있단다.


이래서 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내가 안전하게 보호되고 있다는 말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용기를 못 내고 벽 속에 숨어 있다는 뜻이다.

헉, 들켰다.



나는 회사 동료들에게 약간 별종 인간으로 여겨져 왔다. 젊었을 때는 여차하면 상사에게 대들고, 회사에 이상한 생활한복을 입고 출근하다가 아예 방송 출연까지 하고, 명상이니 기 치료니 미신 같은 이상한 짓이나 하고, 노조니 협회니 나서서 들썩거리고......, 아무리 봐도 믿음직한 주류로 인정받기엔 한참 빗나갔다.


그러나 딱 거기 까지다. 이것저것 마음 가는 데로 움직여 보지만 내가 돌아가야 할 곳을 늘 가까운 거리에 두고는 멀리 벗어나지 못한다. 노조, PD협회, 명상과 침술, 하다못해 취미로 시작했던 기타와 우크렐레, 오디오 바꿈질, 목공 어느 것 하나도 끝까지 가질 못했다. 어느 수준에 올라서 재미를 느낄 만하면 슬그머니 접거나 소홀히 한다. 어디에도 매이지 않고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건 바람일 뿐, 실제로는 아빠로서 남편으로서 혹은 PD로서 벗어나지 않아야 할 경계를 절대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항상 그저 그런 PD중의 하나로, 커다란 성과도 별 잘못도 없이 그렇게 30여년을 보내고, 때가 되면 누구나 하는 정년퇴직을 맞은 것이다.



아내는 끈기가 없어서라고 말하지만 어쩌면 나는 끈기가 없는 게 아니라 크리스틴의 말대로 벽을 벗어날 용기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 나의 두려움, 내 소심함은 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어쩌면 발육이 늦고 약골이었던 유년기일까? 외딴 과수원에서 또래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강아지, 두더지와 놀던 외로움일까? 아니면 부모님, 조상님들에게 받은 나의 유전인자일까? 아니, 원인은 그렇다 치고 남은 인생은 벽을 나와서 바람처럼 자유롭게 살 수 있을까? 크리스틴의 리딩은 나에게 큰 질문을 던진다. 어쩌면 순례를 하면서 그 답을 찾을 수 있을까?



크리스틴이 피곤하다고 먼저 들어가고 조지와 단 둘이 남았다. 이 친구에게서 느껴지는 내공과 에너지는 도대체 무얼까 궁금해서 당신도 기도와 명상을 하냐고 하니 그렇단다. 기공수련도 하냐고 물으니 역시 그렇단다. 더 이상 자세한 설명 없이 단답형으로 툭 툭 던지는데 무게감이 느껴진다. 어쩌면 조지가 우리 셋 중에서 제일 고수 인지도 모른다. 그저 하는 짓들이 귀여워서 그윽한 눈길로 바라만 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너는 네 길을, 아들은 아들 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