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사람들, 2022.5.26
“우리 동네에 카페가 생겼어요” 이렇게 말하면 사람들의 반응은 대충 둘 중의 하나다. ‘그런데, 그게 어때서?’ 하는 의아한 표정이거나 “아니, 그 동네에 카페가요?” 하며 가벼운 놀람과 호기심을 보이는 경우. 앞의 반응을 보인 사람들은 내가 사는 동네를 잘 모르는 이들이다. 카페야 시내 거리거리마다 두 집 건너 하나씩 생기는데 그게 뭐 뉴스냐는 뜻이다. 뒤의 반응은 내가 사는 동네가 외부인의 출입이 거의 없는 전형적인 농촌 마을임을 아는 사람들의 것이다. 작은 시골 마을에 카페라니, 도대체 누가 열었으며 장사는 될까, 분위기 어떨까 등의 궁금증이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표정이다.
처음 시작은 동네 청년들의 사랑방이었다. 내가 사는 회인 면 눌곡리는 5~60대의 늙은 청년(?)들이 스무 명이 넘는, 요즘 농촌치고는 제법 젊은 동네다. 그런데 막상 청년들이 모여 앉을 곳이 마땅치 않았다. 옛날 새끼꼬며 고구마 깎아 먹던 사랑방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고 마을회관은 좀 더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의 쉼터가 되었다. 누구네 집으로 마실가는 문화도 없어졌으니 평생 이웃들과 어울리며 살아온 청년들은 사랑방이 고팠단다. 때마침 선정된 마을 가꾸기 사업비 일부분으로 비어있던 옛날 마을회관 건물을 고칠 수 있었다. 이곳에서 마을 카페를 운영하면서 농촌체험과 농산물 판매도 해보자는 뜻으로 아예 협동조합까지 만들었다. 그러나 막상 카페를 여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카페를 여는 데 필요한 실내장식과 기계들, 운영할 사람을 위한 예산은 나올 곳이 없었다. 자칫하면 건물만 꾸며놓고 비워놓을 수도 있는 상황, 그런데 마침 조합원의 자녀이자 카페 창업이 꿈인 청년 한 명이 용기를 냈다. 전망이 불확실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젊음을 투자하기로 한 것이다. 마을 주민들을 위해서 따로 시간을 정해 사랑방으로 내놓고 커피값도 깎아주기로 했다. 새로운 모델의 마을 카페가 탄생한 것이다. 카페가 생기고 나니 우선 갈 곳이 생겨서 좋다. 주민들끼리 만남도 쉬워졌고 외부에서 손님이 와도 고민할 게 없다. 이웃 동네 사람들은 은근히 부러워하고 소문 듣고 찾아온 사람들은 시골 마을 카페에 재미있어한다. 마을 사람들은 낯선 이들이 마을을 찾아오는 것이 반갑다. 이러다가 우리 마을 유명해지는 거 아닌가, 은근히 희망도 걸어본다.
농촌을 살리기 위한 여러 가지 정책들이 시행되고 있다. 당연한 일이다. 농촌이 고령화, 공동화되고 지방이 소멸하면 식량안보, 환경보전, 도시 과밀화, 실업, 복지비용 증대 등의 문제가 늘어날 테고 이는 국가 경쟁력에도 마이너스가 될 것이 뻔하니 말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농촌 살리기가 제법 큰 예산을 한꺼번에 투자해서 건물과 시설을 짓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는 점이다. 전문가 집단과 컨설팅회사, 건설회사들이 주도하고 주민들은 교육대상으로 취급받기도 한다. 그러나 지어진 시설들을 운영할 사람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에는 대단히 인색한 편이다. 몇십억씩 투자한 시설들이 몇 년 후 문을 닫거나 흉물로 남는 것은 모두 계몽주의적 시각으로 기획하고, 사람이 아니라 시설에 투자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마을 카페를 만들면 어떨까? 주민들과 청년들의 아이디어를 활용하여 카페를 만들고 마을의 사랑방 겸 복합 문화공간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으로 주민들에게는 행복한 삶을, 도시 청년들에게는 일자리와 가능성을 제공한다. 창의적인 농촌체험과 수익사업, 농산물 판매 등으로 마을소득도 올라가고 귀촌을 하는 청년들이 늘어난다. 정부에서는 이런 과정들을 지원하되 획일적 통제는 일절 하지 않는다……. 문제는 발상의 전환이다. 시설이 아니라 사람에 투자하는 일, 엘리트들이 만든 최선의 방법을 일률적으로 적용하지 않고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게 허용하는 일, 마을 만들기가 하나의 놀이가 되어 스스로 자라도록 기다려주는 일, 결국은 사람을 믿는 발상의 전환 말이다. 이렇게만 된다면 어쩌면 조그마한 카페가 마을을 구할지도 모른다. 내가 우리 마을 카페에 거는 기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