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은사람들. 2022.04,27
선거의 계절이다. 전 국민이 청군과 백군으로 나뉘어서 열띤 단체전과 응원전을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아슬아슬한 승부에 흥분과 아쉬움이 채 식지도 않았는데 또 다른 선거가 시작되고 있다. 사람들은 지방선거가 대선보다 참여 열기와 흥행도가 한참 떨어진다고 말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대통령 선거는 청군과 백군이 명확하게 갈리고 엎치락뒤치락 쫓고 쫓기는 싸움이 짜릿하지만 거리감은 좀 떨어진다. 내가 직접 아는 사람도 아니고 내 표가 꼭 당락을 결정지으리라고 보기도 어렵다. 누가 돼도 내 삶에 직접 영향을 주지는 않으리라고 슬쩍 밀쳐두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지방선거는 좀 다르다. 내가 사는 고장의 일꾼들을 내가 아는 사람 중에서 내가 뽑는다. 은근히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신경전들이 벌어진다. 주로 학연과 지연에 바탕을 둔 자존심 싸움들이다. 우리면 출신인가, 우리 학교 동문인가, 나와 잘 아는 사람인가 등등……. 대선과는 다르게 수많은 선수가 나서는 것도 흥미롭다. 보은만 해도 군수와 도의원, 군의원 선거에 직접 선수로 나서는 사람만 해도 수십 명에 달할 것이고 이들을 가까이에서 돕거나 적극적으로 응원하는 사람들, 거기에 이런저런 인연으로 입소문이라도 내주려는 지지층까지 합친다면 아마도 상당수의 주민이 지방선거에 깊숙이 발을 담그고 있을 것이다. 보은에 이사 온 지 이제 10년, 별다른 학연과 지연이 없는 나에게도 이런저런 인연들을 핑계로 특정 후보를 지원해달라는 요구가 꽤 많이 들어오는 걸 보면 지방선거의 열기는 대선과 총선에 못 하지 않을 듯싶다.
그런데 선거의 열기에서 잠시 벗어나서 자문해본다. 도대체 선거는 왜 하는 걸까? 제일 유능하고 청렴한 사람을 뽑기 위해서? 그렇다면 선거가 아닌 다른 방법, 예컨대 시험을 본다든가 컴퓨터를 통해서 뽑는 등의 다른 방법은 없을까? 아니면 아예 사람을 지도자로 뽑지 말고 인공지능과 즉각적인 여론조사로 스마트 민주주의를 해보는 스마트한 방법도 있지 않은가? 이렇게 바보같은 질문을 떠올리는 이유는 단 하나, 선거가 사회와 사회구성원의 행복과 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지 못하는 반면 너무 많은 갈등과 비용을 발생시킨다는 생각 때문이다. 짧은 우리 역사를 보아도 그렇다. 부정선거와 체육관 선거, 고무신 선거에 막걸리 선거 등 온갖 선거의 흑역사들, 거기에 경상도와 전라도가 대립하는 분열의 선거에서 이제는 진보와 보수, 남자와 여자, 거기에 세대 간의 갈등까지 좀 더 전선이 복잡해졌으니 말해 무엇하랴. 이번 대선만 해도 그렇다. 성장과 분배, 노동과 복지와 지역균형발전, 외교와 안보 등 우리나라의 선택을 둘러싼 밀도 있는 토론 대신 서로를 헐뜯는 수준 낮은 선거전이 되지 않았던가? 그리하여 우리 사회의 문제점들을 드러내고 지향해야 할 방향을 도출해내는 선거의 기본적인 기능, 의제설정 기능은 사라지고 진영간 미움과 냉소만 남지 않았던가?
나는 이번 지방선거에 이런 희망을 담아본다. 첫째는 누구를 뽑느냐에서 잠시 벗어나보자는 것이다. 가장 훌륭한 사람을 뽑아서 모든 것을 믿고 맡기는 것도 좋고 나와 가장 가까운 인물, 학연과 지연이 있는 사람을 뽑는 것도 좋지만 이번에는 한번 정책토론에 치중해보자는 말이다. 농촌소멸의 위기 앞에서 농업과 관광과 지역개발 중에 어떤 것이 과연 우선시 되어야 하는지, 젊은이들을 끌어들이고 외부인이 머물게 할 방법은 없는지, 군민들의 삶의 질을 어떻게 높일 것인지에 대해서 후보들과 구성원들이 함께 고민하고 토론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그런 면에서 얼마 전에 보은신문 · 보은사람들신문 · 보은e뉴스 · 보은방송TV가 공동으로 실시한 2022년 지방선거 군수 예비후보자 초청 토론회는 매우 시의적절하고 바람직했다고 본다. 앞으로도 더 많은 기회가 만들어져서 후보자들에 대한 검증은 물론이고 우리 지역사회가 지향할 의제를 자연스럽게 설정했으면 좋겠다. 더 이상 학연과 지연에 얽매이는 깜깜이 지방선거는 사라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