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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웅섭 Jun 14. 2022

숲길, 어디까지 걸어봤니?

속리산 둘레길 4-1코스 (대원리 마을회관 - 신월리 월송정교 8.9km

햇살이 찬란한 6월의 아침, 속리산 둘레길 4-1코스를 시작한다. 전체가 8.9km로 거리가 짧고 편안한 숲길이라니 시작부터 마음이 가볍다. 가뭄과 함께 일찍 찾아온 더위로 벌써부터 한낮에 걷기가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대원리 마을회관에 도착했다.  일단 마을회관이 크고 주차공간이 넓어서 좋다. 아마도 내가 다녀본 산촌마을 중에서 마을회관과 주차공간 모두 제일 크고 넓은 듯싶다. 마을 입구부터 산촌 두메마을이라는 안내판이 눈에 띄더니만 외부 방문객들을 적극적으로 환영한다는 뜻이리라.

대원리는 예스러운 산촌마을의 모습이 대체로 잘 보존되어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며 마을 곳곳에 남아있는 오래된 집들과 담장들이 정겹다. 마을 안쪽으로는 디딜방아와 우물터를 복원하여 놓았는데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고 방치된  데다가 옛 모습이라기에는 조금 억지스러워 보인다. 그러나 우물 속에는 아직도 맑은 물이 그득하고 커다란 두레박도 매어 있어서 옛 모습을 상상하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동네 할머니에게 여쭤보니 이 마을에서 유일한 우물이었단다. 물이 많이 나서 아무리 가물어도 마른 적이 없고  여름에는 시원하고 겨울에는 미지근했단다. 여인들은 매일 한 두 번씩 우물을 찾곤 했는데 주로 물을 길어가기 위해서였단다. 항아리를 이거나 지게를 지고 물을 길어다가 집에서 썼다는 얘기다. 우물가에서 깨끗한 채소는 씻을 수 있었지만 쌀을 씻거나 빨래를 할 수는 없었단다. 그만큼 서로 조심하면서 깨끗하게 썼다는 말이다. 스물둘에 마을에 들어와서 올해로 아흔이 되었다는 할머니는 그러나 언제부터 우물이 사용되지 않았는지는 기억하지 못하셨다. 그저 오래됐지....., 라는 긴 여운으로 세월의 두께를 가늠할 수밖에.

  한편으로 아쉬운 것도 눈에 띈다. 마을 곳곳에 돌담들이 보이고 마을 공원도 조성해 놓았는데 돌담들이 옛 모습이 아니라 발파석에 시멘트 몰탈을 섞어 쌓아 엉성하기 그지없고 마을 공원은 제대로 관리되지 않고 있다. 사실 이 마을은  십여 년 전 제법 많은 예산이 투입되어 산촌생태마을로 조성된 적이 있다. 마을 입구의 낡은 안내판이 말해주듯이 돌담과 우물과 디딜방아를 복원했고 마을에 습지공원도 조성한 바 있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투자 없이 일시적으로 시설에 투자하는 것으로는 자생력이 생기지 않는다는 걸 대원리가 보여주고 있다.

 

  



돌담 사이로 마을을 벗어나자 산과 논 사이에 좁은 둘레길이 펼쳐진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 눈에 띈다. 논과 둘레길 사이에 펜스가 설치되어 있는 것이다. 논 주인들이 특별히 돈을 들여 설치할 이유가 없으니 둘레길을 만들면서 농작물에 피해를 주지 않으려는 뜻으로 설치한 듯싶다. 조금 더 가니 좁은 둘레길에 야자매트까지 깔려 있다. 길은 좁지만 잘 관리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이제 둘레길은 산속 숲길로 이어진다. 그런데 이 숲길 역시 잘 관리되어 있다. 필요한 곳마다 돌계단을 꼼꼼히 만들어 놓았고 풀들도 정갈하게 잘 깎아놓아서 걷기게 아주 편안하다. 조금 더 걷다 보니 갑자기 숲길이 넓어진다. 찾는 이가 많지 않은 한적한 둘레길이고 보니 이 넓고 호젓한 길을 혼자 걸어도 되나 싶다. 아마도 오래전에 임도로 만들었다가 지금은 둘레길로 쓰는 게 아닌가 싶다. 아침부터 햇살이 제법 따가운 날씨 건만 숲 속 길은 걷기 딱 좋을 정도로 쾌적하다. 아직 땀이 흐를 정도의 더위는 아니고 습도도 적당하다. 꾀꼬리 두 마리가 앞뒤에서 울더니 이번에는 검은등 뻐꾸기가 마이크를 물려받았다. 네 박자의 울음소리가 마치 "홀딱벗고"처럼 들린다고 해서 '홀딱벗고 새'라는 다소 외설적인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는 새다. 그런데 이 녀석의 울음소리가 특이하다. 네박자가 아니라 가끔씩 세 박자로, 또 아주 가끔은 다섯 박자로 울어댄다. 남들은 모두 네박자로 노래하는데 혼자서 세 박자에서 다섯 박자까지 넘나드는 걸 보면 아무래도 이 녀석은 창의력이 뛰어난 새인가 보다.  그래, 모두가 똑같은 모습에 똑같은 방식으로 경쟁하며 사는 세상, 너 같은 이단아도 있어야 좀 숨이 트이겠다 싶어서 은근히 응원하고 싶다. 어쩌면 독특한 창법이 수많은 수컷 중에서 도드라져 보이기에는  꽤나 좋은 전략일것도 같다.


활목재에 도착했다. 활목재는 활의 목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란다. 이제부터는 좁은 숲길이 아니라 신작로를 닮은 널찍한 숲 속 고속도로를 걷는다.  길도 넓은 데다가 중간중간에 도로에나 설치하는 반사경과 교통 표지판까지 설치해놓아서 정말로 숲 속 신작로를 걷는 느낌이다. 마치 매연을 내뿜는 오래된 버스가 금방이라도 모퉁이에서 나타날 것 같다. 그러나 안심해도 좋다. 차가 나타날 가능성은 제로인 데다가 길 양 옆으로 우거진 나무들이 짙고 시원한 그늘을 드리워 주기 때문에 뜨거운 햇살과 마주할 일도 거의 없다. 태양을 가리려고 준비한 모자를 훌떡 벗어버리고 홀가분하게 걷는다. 점점 숲으로 들어가면서 이곳의 원래 주인인 나무와 생물들이 하나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소나무와 굴피나무에 이어 굴참나무들이 시원한 군락을 이루고 있고 길가로는 층층나무의 이파리들이 햇살에 부딪히며 찰랑거린다. 기린초가 노란 꽃을 내밀고 덩굴 딸기와 복분자, 뱀딸기가 빨간 열매를 매달고 있다. 길가에는 작은 꽃 으아리가 천연덕스럽게 꽃을 피우고 아카시아를 닮은 너삼도 분홍색 꽃을 조롱조롱 매달았다. 일광욕을 나온 게으른 뱀도 두 번이나 마주쳤으나 서로 적당히 무시하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한다. 아무렴 고요한 숲의 나라에 불쑥 들어왔으니 잘해야 불청객이요 잘못하면 무단 침입자인 셈, 쫓겨나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기며 조용히 지나가는 수밖에.

 

숲의 나라에서 숲길을 걷는다. 그런데 문득 질문 하나가 올라온다.  특별한 볼거리도 즐길거리도 없는 평범한 숲길을 걸으며, 나무와 꽃과 뱀이 나타나는 어쩌면 지극히 평범한 상황이 이처럼 재미있고 감동적인 것은 도대체 왜일까? 잠시 생각해보니 이 시대에 두 발로 숲길을 걷는 행위 자체가 평범하지 않다.  반세기 전에는 지극히 흔하고 평범한 일이었지만 말이다. 사실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곤 했다. 마을에서 마을로, 마을에서 도시로 가기 위해서는 좁은 숲길과 논두렁길과 마을 길을 지나야 했고 작은 꽃들과 가시에 숨은 산딸기가 지루함을 달래주곤 했다. 물론 가끔씩 뱀이 스르륵 지나가거나 개구리가 펄쩍 뛰어서 어린 가슴을 놀라게 하기도 했지만 약간의 놀람과 두려움은 오히려 숲길의 매력을 배가시키는 조미료였지 방해 요소는 아니었다. 이들 때문에 숲길은 즐거움에 모험까지 더해진 완벽한 패키지였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평범한 경험들이 오래전부터 사라져서 이제는 일상생활에서는 전혀 경험할 수 없는 추억이 돼 버렸다. 이 숲길을 걸으며 차례로 내게 다가온 출연자들이 모두 소중하고 감사한 이유가 바로 추억 속의 일이 내 눈앞에 마법처럼 재연되고 있기 때문이리라. 어디 숲길 뿐이랴, 어떤 종류의 길이든 길을 두발로 걷는다는 것 자체가 이제는 특별한 경험이 되어버렸다. 둘레길을 걷는 둘레꾼이 아니고야 이삼십 리를 두 다리로 걸을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러고 보면 둘레길을 걷는다는 것은 도시와 자동차로 대표되는 문명, 그 문명에 대한  작은 저항일지도 모르겠다. 아니, 그 말이 너무 거창하다면 편리함과 맞바꿔버린 우리의 본능을 기억하기 위한 몸부림 정도로 표현해도 좋겠다.



숲 속 고속도로라고 할 만큼 널찍한 임도를 따라 걷는 평범한 코스가 나름대로 매력적인 것은  숲길을 걷는 행위 자체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다. 만일 관광지처럼 중간중간에 수많은 볼거리와 이야깃거리가 있었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그렇다고 이 길에 전해오는 이야기가 없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사실 금단산 숲길에는 어마어마한 이야기가 담겨 있으니 바로 고운 최치원에 관한 설화다. 백제시대 이곳에는 검단이라는 스님이 살아서 검단산이라 불렸는데 이곳에 신령스러운 금돼지가 살았더란다. (두 인물이 동시대에 산 것 같지는 않다). 그런데 이 금돼지가 고을의 수령이 부임할 때마다 사람으로 변하여 수령의 부인을 납치해 갔단다. 사정이 이러니 모두들 이 고을에 수령으로 오길 꺼릴 수밖에, 그런데 어느 날 담력과 힘이 남다른 한 사람이 고을 수령을 자청했다. 그리고는 부임 첫날밤에 명주실을 아내의 치마 주름 끝에 단단히 매어놓고 다음날 명주실을 따라서 사라진 금돼지를 찾아내 물리치고 아내를 구해왔단다. 그 후 아내는 임신을 하여 옥동자를 낳았는데 그가 바로 신라의 석학 최치원이라는 얘기다. (금돼지의 아이인지 아닌지도 부인이 이미 죽어서 확인할 수 없다.)  어디선가 한 번 본 듯도 한 데다가 구성도 다소 엉성하긴 하지만, 신화적이면서도 다이내믹한 스토리와 최치원이라는 실명으로 사실성을 더한 것까지 마치 한 편의 판타지 영화처럼 훌륭한 이야기다.  해발 746m의 다소 평범한 산에는 약간 과분하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말이다.

대원리 마을회관을 떠난 지 한 시간 반 만에 금단산 고개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잠시 물과 간식으로 휴식을 취한다. 안내판을 보니 이곳에서 출발지인 대원리가 4.08km, 목적지인 신월리 월송교가 4.81km라고 쓰여 있다. 그러나 동행한 조성상 등산 지도사님 말로는 월송교까지의 거리가 잘못 표기돼 있단다. 사실은 5.4km란다.  여기에서 둘레길은 내리막 임도를 통해 바로 월송정교로 향하지만 불과 10여 분만 걸으면 금단산 정상이라니 그곳을 포기할 수는 없다. 게다가 정상이 사방으로 트여서 유명한 조망 포인트라니 말이다. 그런데  정상으로 향하는 표지판이 없다. 풀로 뒤덮인 기상관측 시설 옆의 샛길을 겨우 찾아 몇 발짝을 옮기니 등산 동호인들이 붙여놓은 꼬리표가 나타난다. 이제부터 정상은 10분 남짓, 그러나 숨을 몰아 쉬어야 할 정도로 가파른 경사길이니 조금은 각오를 하는 것이 좋겠다. 정상에 오르면 먼저 통신탑이 나타나고 몇 걸음 더 걸으니 정상 표지석과 헬기장이 보인다. 바로 이곳이 조망 포인트다.


잠시 호흡을 고르고 사방을 둘러본다. 과연, 동쪽으로 통신탑이 살짝 가리는 것 외에는 사방이 모두 훤하게 트였다. 동남쪽으로는 톱날 같은 묘봉 줄기를 지나 마치 비석처럼 우뚝 선 문장대와 속리산 능선들이 펼쳐져 있고 북쪽으로는 가까이 도명산과 희양산, 북동쪽 멀리로는 조령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능선이 아스라이 이어진다. 조금 아쉬운 것은 날씨가 약간 흐려서 시계가 그리 멀지 않다는 점이다. 흐릿하게 안갯속으로 숨은 능선들을 위해서는 마치 컴퓨터 그래픽처럼 머릿속으로 약간의 보정을 할 수밖에 없다.


정상에서 세상을 내려다본다. 내 눈길은 도시와 마을에 머문 적이 없다. 오로지 산과 산과 산을 따라, 멀리 아스라이 사라지는 능선을 따라 한 없이 멀어질 뿐이다. 문득 김관식 시인의 거산호 2를 읊조리고 싶다.


거산호 2    

                                           김관식

오늘, 북창을 열어

장거릴 등지고 산을 향하여 앉은 뜻은

사람은 맨날 변해 쌓지만

태고로부터 푸르러온 산이 아니냐.

고요하고 너그러워 수(壽)하는 데다가

보옥(寶玉)을 갖고도 자랑 않는 겸허한 산.

마음이 본시 산을 사랑해

평생 산을 보고 산을 배우네.

그 품안에서 자라나 거기에 가 또 묻히리니

내 이승의 낮과 저승의 밤에

아아(峨峨)라히 뻗쳐 있어 다리 놓는 산.

네 품이 고향인 그리운 산아

미역취 한 이파리 상긋한 산 내음새

산에서도 오히려 산을 그리며

꿈 같은 산 정기(山精氣)를 그리며 산다.



희미하게 보일 듯 말 듯 안개처럼 먼 저곳에는 어쩌면 잊고 살던 철부지 어린 시절과, 내 영혼의 진짜 고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비교하고 상처받으며  나이 들어가는 초라한 내가 아니라 그 누구도, 그 무엇도 위협할 수 없는 순수한 내 영혼이 반짝거리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 순수한 영혼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다시 한번 위로를 받고 힘을 얻는다.


이제부터는 편안하고 널찍한 내리막길이다.  쭉 뻗은 낙엽송 나라를 지나고 구불구불 우아한 소나무 동네를 지나서 눈과 코와 발과 온몸으로 숲을 느끼며 걷는다. 이렇게 부담스럽지도 않고 호들갑 떨 일도 없는 숲길을 세 시간쯤 걸어서 드디어 목적지인 신월리에 도착했다. 신월리 보건지소와 해품달 수련원을 지나니 조그마한 다리가 나타난다. 4-1코스의 종착지인 월송정교다.

오늘의 여행이 너무 빨리 끝났는가 싶어서 아쉬워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다리를 건너 옛 신월리 마을의 중간쯤에 깜짝 선물이 기다리고 있으니 바로 돌담 시인학교다. 먼저 만난 마늘밭 어귀의 작은 안내판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달이 사는 돌담, 돌담 시인학교'란다. 그렇지 여기가 월송정이니 달이 사는 동네로구나, 달이 사는 동네에 시인학교라니 썩 잘 어울리는 조합인 듯싶어 설레는 마음으로 다가선다. 시인학교는 여기저기 허물어진 오래된 농촌주택을 그대로 살려서 흰색 회벽과 판재와 못쓰는 TV에 수십 편의 시들을 빼곡히 적어 놓았다. 천천히 시 몇 편을 읽어 본다.


월송정 돌담에 달이 산다.

                   운서 김건휘


구름 부셔넣고

바람 섞어 휘저어

여백에 그린 둥근달

돌담사이에 끼워 놓으니

별 찾아와 소꿉놀이한다

늙어버린 동심 수줍게 다가가

슬며시 내려놓는 흔적

추억으로 비비는 동안

낡은 돌담에 낮달이 뜬다


  낡은 회벽에 적힌 글씨들이 하나씩 하나씩 살아나 내 가슴에 별처럼 박힌다. 시인은 참으로 고운 감성과 시심을 가졌구나, 그 시심이 내 가슴에도 훈훈한 온기를 만든다. 아름다운 것은 시뿐만이 아니다. 군데군데에 낮달맞이와 넝쿨장미가 꽃을 피우고 있는 모습이 마치 손님맞이하는 주인이라도 되는 듯 소박하고도 당당하다. 밤이 되면 전등 대신 달빛이 찾아와 놀고 갈 테니 이곳은 빈집이 아니라 달과 시와 꽃이 함께 사는 셰어하우스라는 말이다. 무엇보다도 지나는 이들에게 마음껏 둘러보라고 정성스레 꾸며놓은 주인장의 마음씨가 내 가슴을 따뜻하게 한다.


시인의 집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갈증, 2%가 아쉬운 분들은 인근의 사담계곡을 찾는 것도 좋다.  사담계곡은 워낙 물이 맑고 경치가 좋아서 여름이면 가족단위 계곡 물놀이터로 유명한 곳이다. 거기에 기암괴석과 하얀 모래밭이 일품이고 가까이에 낙영산과 공림사가 있어서 여름 여행지로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내가 찾은 시기에는 오랜 가뭄으로 수량이 그리 많지 않아 물놀이를 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조금 늦은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묘봉 두부마을을 찾았다. 사실 묘봉 두부마을은 산행을 좋아하는 등산 동호인들에게는 유명한 곳이다. 바위능선들이 올망졸망 공룡능선을 닮은 묘봉을 오르기 위한 출발지로 많이 소개되어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식당 뒤에는 널찍한 주차장이 있어서 여기에 차를 대고 산행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많다. 두부 버섯전골을 시켰다. 몽글몽글 부드러워 보이는 두부와 이름을 알 수 없는 버섯들이 푸짐하다. 두부를 한 숟가락 떠서 입에 넣는다. 부드럽다. 씹고 자시고 할 새도 없이 고소한 맛과 상큼한 여운을 남기고 어느새 목구멍을 타고 넘어간다. 국물 또한 짜거나 자극적이지 않고 적당히 간간하다. 비결을 물어보았다. 우선 두부가 부드러운 것은 간수를 약하게 치고 너무 무거운 돌로 강하게 짜지 않기 때문이란다. 또 전골은 소금을 일절 쓰지 않고 오래된 간장으로만 간을 맞춘단다. 소금을 넣으면 아무래도 쓴맛이 잡히기 때문이다. 왠지 기분 좋은 간간함의 정체가 바로 직접 담근 오래된 국간장이었다는 말이다.


음미하며 두부전골을 뜨고 있는데 한 켠에서는 식당에서 일하시는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이 소주까지 곁들인 식사를 끝내고 이야기 꽃을 피우신다.  무슨 이야기를 나누나 잠시 들어보니 뜻밖에 된장을 맛있게 담그는 요령에 관한 토크 배틀이다.  이게 웬 떡이냐, 눈앞에서 요리 고수들의 리얼 토크쇼가 펼쳐지다니, 밥을 먹는 척 귀를 쫑긋 모았다. 그러나 직접 된장을 담아본 적도 없는 나로서는 고수들의 전문용어를 이해할 수 없다. 나중에 물어보니 장을 가를때 된장에 두부를 거르고 나온 숫물을 넣어 지름하게(질게) 비벼놓으면 된다는 얘기였단다. 혹시 나중에 된장이 너무 짜게 말라버릴 때도 같은 방법을 쓰면 된단다. 간장이 완전히 말라서 소금이 되었을 때는 버리지 말고 다음 장 담글 때 소금으로 쓰면 맛이 좋아진다는 비법도 하나 더 건졌다.


편안하고 매력적인 숲길에 흠뻑 빠졌다가 나온 탓일까, 아니면 우연히 들른 시인학교에서 따뜻한 시심으로 가슴을 덮힌 덕일까, 어쩌면 부드럽고 기분 좋게 간간한 두부전골 때문일까, 평소와는 다르게 피곤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마치 한 코스 더 걸어도 될 것 같은 묘한 자신감을 억누르고 오늘의 트레킹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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