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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웅섭 Jun 05. 2022

백두대간 가는 길

속리산 둘레길 8코스 (연풍 행촌리 - 평전치, 11.07km)

5월의 마지막 날, 속리산 둘레길 8코스를 시작한다. 충청북도의 보은군에서 시작하여 괴산군을 거치면서 산과 마을과 강을 따라온 72KM,  6개 코스가 오늘로서 끝이다.  물론 둘레길은 도계를 넘어 경상북도 지역으로 계속 이어지겠지만 마치 한 문단이 끝나고 다른 문단이 시작되는 것처럼,  충북구간은 일단 마침표를 찍는 날이다. 약간은 아쉽고 약간은 설렌다. 아쉬운 거야 일단 끝내려니 당연하다 치고 설레는 것은 왜일까? 오늘 걸을 8코스가 지나온 다른 코스와는 다른 특별한 길, 바로 백두대간을 넘는 둘레길이기 때문이다. 백두대간과 둘레길은 왠지 잘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 둘레길은 좀 편안하고 만만한 마을길이나 기껏해야 약간의 오르내림이 있는  산자락 길 정도를 의미할 것 같은데 그 둘레길이 백두대간을 넘는다니 말이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지리산에 이르는 1400KM의 산줄기로 주로 분수계(分水界)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개념이다. 백두대간에서 뻗어 나온 13개의 정맥들과 그 정맥 사이사이에 흐르는 10개의 강들이 고대로부터 지역과 지역을 나누기도 하고 강과 고개를 통해 이어주는 역할도 했단다. 따라서 산맥이 땅의 지질학적 특성을 위주로 정의하는 것과는 달리 대간과 정맥이라는 개념은  다분히 인문지리적인 관점에서 만들어진 개념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에게 백두대간은 이런 사전적, 인문지리적 개념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도 한다. 백두산에서 기원한 땅기운을 지리산까지, 그리고 정맥들을 통하여 전국으로 골고루 전달해주는 일종의 척추, 혹은 대동맥으로 인식한다는 것이다. 백두대간은 종종 우리나라에서 땅의 기운이 가장 강하게 흐르는 곳이며 백두대간을 종주한다는 것은 단순한 등산코스 아니라 우리 국토, 민족의 뿌리를 몸으로 느끼고 받아들인다는 약간은 종교적인 의미가 포함되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아쉽게도 백두대간 종주를 해보지 못했다. 대간에 속하는 명산들이 워낙에 많다 보니 개별적으로 등산한 적들은 제법 있지만, 지리산에서 부터 향로봉까지 구간을 나누어 이동하면서 종주한 적은 없다. 이 점은 은근히 나의 약점이 되기도 하는데, 산악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백두대간 종주 얘기만 나오면 스리슬쩍 꼬리를 내리게 된다. 그런데 오늘 둘레길 8코스는 백화산과 이만봉 사이, 백두대간의 평전치를 넘는다니 설레지 않을 수가 없다.


일단 연풍 읍내를 벗어나 중앙로를 따라 남동쪽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아스팔트 길과 포장된 농로인데 지나는 차도 많지 않고 주변으로 마을과 논밭들을 바라보며 걸을 수 있어서 크게 지루하지는 않다. 더구나 남쪽, 이화령과 백화산 희양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품 안으로 들어가는 형국이니 사실 기대감으로 걸을 만하다. 1시간쯤 걸으니 진촌이라는 마을이 나타나고 마을 어귀에 둥그나무와 정자가 쉼터를 제공하고 있다. 예스럽고 아름다운 농촌마을로 예로부터 개금 나무가 많아 개금 나무 진(榛)자를 써서 진촌(榛村)이라 불린다고 마을 유래비에 적혀 있다.


 여기서부터는 약간 오르막 경사길을 걷는다. 20여분을 걸으니 중부내륙고속도로를 만나 밑으로 통과하게 되고 곧바로 분지 저수지에 닿는다. 분지 저수지는 백두대간에서 내려오는 청정 물을 가두어 연풍 뜰에 농업용수를 제공하는데 상류지역에 오염원이 없다 보니 워낙 물이 맑고 특히 겨울철 빙어 낚시터로 유명하단다. 그러나 내가 찾은 5월 마지막 날은 낚시꾼이나 관광객은 없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들의 굉음이 오히려 적막감을 더해줄 뿐이다.

40여분을 더 걸으니 분지리 마을 입구임을 알리는 마을 자랑비가 서 있다. 그런데 마을자랑 비보다 우선 눈에 띄는 게 있다. 계곡 양쪽의 산 능선들과 능선들 사이에 좁게 끼어있는 하늘을 한꺼번에 담은 귀여운 다락논이다. 모내기를 위해서 물을 가두어 놓았는데 작고 동그스름한 논배미와 야트막한 논두렁, 그리고 하늘이 담긴 모습이 정겹기 그지없다. 주인이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무척 심성이 곱고 거기에 멋을 아는 분이라는 느낌이 든다.


안말 마을에 도착했다. 분지리는 입구에서부터 셋집담 마을, 도막 마을, 안 마을의 세 동네로 이루어져 있는데 안말은 가장 깊숙한 곳, 차로 올 수 있는 마지막 동네다. 이 안말에서 왼쪽으로는 해발 1063m의 백화산을, 오른쪽으로는 이만봉으로 오를 수 있다. 그러나 오늘 내가 걸을 곳은 남동쪽으로 곧장 오르는 길, 평전치 길이다. 마을을 벗어나 시멘트 포장된 임도로 접어들었다. 이곳에서부터 평전치까지는 약 4km, 느릿느릿 구경하며 걸어도 한 시간 반이면 닿을 수 있단다. 입구에서부터 빨갛게 익은 산딸기가 발길을 붙잡는다. 가뭄에 잘 익은 산딸기를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 산나물 채취를 금한다는 현수막을 보니 이곳에 산나물이 많다는 얘기다. 산이 높고 골은 깊고 북사면 그늘이니 산나물이 없을 수 없겠구나 싶다.


임도를 따라 숲 속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그런데 이곳의 임도가 재미있다. 군데군데 시멘트로 포장되거나 흙길로 되어있어 제법 걸을만한데 작은 나뭇가지들이 자꾸만 스킨십을 시도한다. 지나는 사람들이 많지 않다 보니 작은 관목들이 길 위로 가지를 뻗은 탓이다. 그러나 특별히 가시나무나 해충이 있는 것도 아니니 슬쩍슬쩍 피하거나 밀어내면서 걸으면 그만이다. 어느 순간 뻗어 나온 가지들을 살펴본다. 철이 지나 시든 꽃을 매달고 있는 붉은 병꽃, 하얀 앙증맞은 꽃들이 한창인 국수나무, 이제 겨우 꽃봉오리를 내밀고 있는 산수국, 이름도 정겨운 사위질빵, 거기에 이파리에 흰 무늬가 군데군데 박힌 개다래에 쭉 곧게 하늘로 뻗은 가래나무......,

그 외에도 이름조차 모를 온갖 풀과 꽃과 크고 작은 나무들이 숲을 가득 채우고 있다. 길은 편안한데 그늘이 깊으니 무더운 여름에 걷기에는 최고의 맞춤코스다 싶다. 멀리서 딱따구리 한 마리가 나무를 두드리고 가까이에서는 꾀꼬리가 화려한 목소리를 자랑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딱 멈추고 흐르는 적막. 무슨 소리가 날 텐데, 아니 무슨 소린가가 나야 하는데 은근히 조바심을 내는 나를 깨닫는다. 항상 무슨 소린가에 길들여져서, 말소리 건 음악소리건 하다못해 자동차의 소음이라도 귀에 닿아야 편안해하는 불쌍한 현대인이구나. 이번에는 소리를 찾으려 하지 않고 그저 적막 속에 머물러본다. 얼마 정도 지나니 마음이 편해지고 묘한 쾌감 같은 것이 올라온다. 문득 적막은 소리의 부재가 아니라 또 하나의 소리가 아닌가 하는 엉뚱한 생각이 올라온다. 마치 불교나 도교, 최첨단의 양자물리학에서조차 비어있는 허공에서 물질과 우주가 태어났다고 생각하듯이, 적막은 어쩌면 모든 소리가 포함되어 있으되 서로 완벽하게 균형을 이루어 어느 것 하나 드러나지 않는 소리의 진공 상태는 아닐까? 그런데 귀한 소리보다 훨씬 더 귀한 적막이 왜 이곳에서만 살고 있을까? 생각해보니 내가 지금 걷고 있는 이곳은 백두대간으로 이르는 옛길, 그야말로 인적 없는 숲길이로구나, 내가 소리의 세상에서 어느 순간 적막의 세계로 들어왔구나.



조금 더 길을 오르니 갑자기 넓은 공터가 나타나고 둘레길 안내판이 우리를 반긴다.  이곳이 괴산 속리산 둘레길의 마지막 구간이며 앞으로 2km만 가면 경북구간이란다. 사실 새롭거나 별로 중요한 정보는 아닌데, 이 깊은 숲 속에서 갑자기 나타난 안내판이 반갑다. 여기서부터 임도의 느낌은 사라지고 숲 속 오솔길로 이어진다. 그런데 등산 지도사분의 설명으로는 이 길도 사실은 임도란다. 오랫동안 관리가 되지 않아서 잡목이 자랐을 뿐이란다. 과연 제법 굵직한 나무들을 머릿속에서 지워보니 벌목 차들이 다녔음직한 임도가 흐릿하게 나타난다. 예로부터 이곳은 숲이 울창해서 예로부터 숯가마가 여럿 있었단다. 벌목한 나무와 숯을 운반하기 위해서 임도가 생겼으리라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멋진 소나무와 붉은 앵초를 지나 조금 더 오르니 숲 속으로 너덜지대가 나타나고 꼬리표가 하나 붙어있다. 이제 임도는 끝나고 오솔길로 걸어야 한다. 잠시 더 숲길을 걸으니 드디어 평전치, 오늘의 목적지라기에는 다소 평범한 고갯마루가 나타난다. 어쨌든 여기가 오늘의 목적지이며 백두대간 백화산과 이만봉의 중간지점이다. 벤치에서 땀을 식히다 보니 백화산 쪽으로 전망대가 슬쩍 보인다. 그러면 그렇지, 냉큼 전망대로 자리를 옮겼다.


평전치고개
평전치 전망대에서 백화산쪽으로 본 풍경


평전치 전망대에서 바라본 문경의 마을


내가 나고 자라고 묻힐 내 어머니 국토, 그 국토의 허리인 백두대간 능선에 서서 국토를 내려다본다. 왼쪽으로는 백화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앞으로는 문경시에 속한 마을들과 멀리로는 크고 작은 능선들이 끝없이 뻗어있다. 오른쪽으로는 백두대간이 희양산 대야산 속리산을 거쳐 지리산까지 아스라이 이어지고 있다. 문득 우리 인간들이 어머니 국토에 대해서 무슨 짓을 하고 있나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길을 닦는다고 산허리를 파헤치고 터널을 뚫고 그리고 그 옆에 더 넓은 길을 다시 만들고, 산을 깎아 마을을 만들고 도시를 만들고......, 모두들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 어머니 국토를 파헤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인간들 중의 하나인 내가 아무런 성찰과 반성도 없이 백두대간의 능선에 서서 어머니 어쩌고 하면서 감회를 느끼는 것은 어쩌면 가증스러운 일이 아닐까? 그러나 다행히 인간들이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어낸 인공구조물, 도시와 도로들은 산의 능선들에 가리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엄청난 규모로 산을 파헤치고 도시를 만들어대는 것 같지만 어머니 국토는 아직까지는 별 이상이 없는가 보다. 하기야 크게 보고 길게 보면 인간의 문명이라는 게 잠시 성했다가 사그라드는 일시적인 현상일 뿐이니 어머니 국토의 안녕을 걱정한다는 것 자체가 인간의 오만일 수도 있겠구나 싶다. 아쉬운 발걸음을 여기서 일단 멈춘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인위적인 경계, 충북과 경북의 도계가 내 발길을 잡는다. 그냥 발길을 옮기면 경북 쪽 속리산 둘레길이 이어지련만, 등산 지도사 분도 여기서부터는 잘 모르고 돌아올 교통편도 대책이 없으니 발길을 돌릴 수밖에. 멀지 않은 미래에 다시 만나리라, 아쉬운 마음을 남기고 분지리로 향한다.

이종철 분지리 이장님

내려오다 보니 계곡 옆으로 올라갈 때는 눈에 띄지 않던 평평한 땅들이 보인다. 비록 잡목들이 우거졌으나 사람들이 일구어놓은 논밭임이 분명하다. 어쩌면 화전민 이야기를 들을 것 같아서 마을의 이장댁을 찾았다. 예상대로다. 1970년대만 해도 평전치 계곡에는 화전민들이 살았는데 그 수가 서른 가구가 넘었단다. 예로부터 숲이 깊다 보니 이곳에서 숯가마가 많았는데 숯을 굽기 위해 나무를 베면 자연스럽게 개간이 되어 농사를 지으며 화전민이 되었단다. 사람들은 구운 숯과 나뭇짐, 그리고 이곳에서 풍성하게 나는 산나물들을 지게에 지고 머리에 이고 장에 내다 팔았는데, 재미있는 것은 연풍장뿐 아니라 문경장도 봤다는 사실이다. 마침 연풍장으로 가는 장꾼들은 내리막길이니 그렇다고 치고, 문경장을 보려면 가파른 평전치 고개를 넘어야 했으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그런데 하필이면 연풍장과 문경장이 같은 날이라서 사람들은 눈치껏 장을 골랐고, 장날만 되면 마을 앞으로 장꾼들이 숫하게 지나다녔단다.  나무와 꽃과 적막만이 살고 있는 숲 속 오솔길인 줄 알았더니만 사실은 연풍과 문경을 오가는 제법 번화한 도로 옆이었다는 말이다.

연풍 읍내로 돌아왔다. 8코스 둘레길은 마쳤고 연풍 읍내도 지난 7코스에서 둘러보았지만 시간도 여유가 있으니 오늘은 주변을 둘러볼 참이다. 수옥정 폭포를 만나볼까, 발길을 옮기는데 특이한 건물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하얀 회벽에 넓은 나무 창틀과 하늘색 기와지붕, 그리고 연풍 직행 정류소라는 낡은 간판을 매단 오래된 신식 건물이다. 최소한 50년을 됐을 테니 새것이 판을 치는 요즘 세태로 보면 오래되긴 했지만 당시로서는 신식 건물이었으니 오래된 신식 건물이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떠오른 것이다. 안에 들어가 보니 최근에 사용한 흔적은 없이 휑뎅그르한데 코로나로 일시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안내문이 덜렁 한 장 붙어있다. 보기에는 마치 근현대사 유적 같은데, 아직도 제 기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코로나로 인한 제한들이 풀리면 사람들이 다시 이곳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자식들을 배웅하며 서성거릴 수 있을까? TV문학관에 나올 법한 오래된 모습 때문인지 잘 상상이 되지 않는다.


수옥정폭포를 구경하러 왔는데, 먼저 나를 사로잡는 것이 있다. 커다란 느티나무가 마치 손바닥 지붕처럼 그늘을 만들어주는 멋진 장소에 카페가 자리 잡고 있다. 시원한 냉커피의 유혹을 뿌리칠 재간이 없다. 잠시 그늘에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으로 더위를 식힌다.

워낙 가뭄이 심해서 과연 폭포에 물이 있을까 하는 걱정은 그야말로 기우였다. 수옥정폭포로 이르는 작은 계곡에 들어서니 벌써부터 맑은 물이 풍성하게 흐르고 서늘한 기운과 함께 멀리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기대감을 안고 다가가 본다. 높이 20m, 제법 장쾌한 규모와 균형 잡힌 모양새가 역시 수옥정이다 싶다. 이 심한 가뭄에 어쩌면 이렇게 수량이 풍부할까, 생각해보니 가두어놓은 저수지의 물을 연풍 뜰에서 농업용수로 활용하기 위해서 흘리는 과정이구나 싶다. 그렇다면 나 같은 관광객이 가뭄 땡볕 속에서 폭포를 즐기는 것은 그야말로 덤인 셈이다. 평일 이건만 나처럼 폭포를 보려는 사람들이 제법 눈에 띈다. 아예 접은 의자를 들고 와서 자리를 잡는 이들도 보인다. 제대로 폭포를 바라보며 피서를 하려나보다.

다시 연풍 쪽으로 발길을 돌린다. 원풍로를 따라 조금 내려가니 오른쪽 소나무사로 바위 절벽에 새겨진 마애불이 나타난다. 이름하여 원풍리 마애이불병좌상이란다. 짧은 한자실력으로 풀어보자면 절벽에 새겨진 두 부처님이 나란히 앉은 모습이라는 뜻이리라. 자료를 찾아보니 높이가 12m이며 고려시대의 것으로 두 부처님을 나란히 새겨 넣은 것은 드문 경우라고 한다. 얼굴을 바라보니 그동안 절에서 보았던 부처님과는 좀 다른 느낌이다. 훨씬 더 소박하고 평범한, 그러면서도 자비로운 느낌이 든다. 거기에다 지키는 이도 막는 담도 없이 바로 고갯길 옆에서 굽어보고 있으니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무척이나 친근하게 대했을성 싶다. 오가면서 잠시 머리를 조아리고 가족과 자신의 안녕을 빌었을 테니 어쩌면 법당에 근엄하게 앉아계신 부처님보다 서민들의 속 이야기를 더 많이 들었을 법도 하다. 소박하고 서민적인 모습이 오히려 경건해 잠시 손을 모아 예를 올린다.


한지박물관에 닿았다. 예로부터 신풍마을은 물이 맑아 좋은 한지가 생산됐단다. 한지는 생산과정에서 물을 많이 쓰는 데다가 물에 따라서 종이 질이 달라지기도 해서 좋은 물이 있는 곳에 한지공장이 들어섰다고 한다. 그런데 수옥정 폭포아래 이곳 신풍리 마을에는 풍부한 수량의 용천 샘물이 두 개나 있어서 한지공장들이 성황을 이루었고 그중에 한 분이 한지장으로 지정되어 지금까지 명맥을 잇고 있단다. 박물관은 한지의 역사와 제작과정 등에 대한 자세한 설명과 함께 한지로 만들어진 다양한 생활용품들도 전시해놓았는데 내용이 알차고 풍성해서 마치 잘 차려진 한정식을 먹은 것처럼 만족스러운 느낌이다. 한지로 옷과 지함과 항아리까지 만들었다는 사실이 재미있고 특히 천연염색 한지는 그 자체만으로 작품이라 할 정도로 질감과 색감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안치용 한지장은 이외에도 흡음 한지, 나노 연옥 장판지, 물방울 한지 등의 새로운 시도로 전통을 현대화하는 노력들을 하고 있단다. 전통을 지키고 보존하는 것만도 고마운데 거기에 새롭게 현대화하려는 시도들, 그리고 지나는 이들에게 좋은 구경거리까지 제공하고 있으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한지박물관을 끝으로 충북구간의 속리산 둘레길을 마무리한다. 경북 구간은 아직도 개척 중이라고 하니 금방 답사를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길은 스스로 이어지려는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마치 담쟁이의 새순이 벽을 타고 오르듯 스스로 뻗어가고 이어지려는  의지를 지니고 있다는 말이다. 물론 의식 없는 길이 실제로 그렇다기보다는 어디로든 가고 싶어 하는 인간들이 조금씩 길을 만들고 다른 길과 이어나간다는 뜻임을 새겨 읽기 바란다. 어쨌거나 멀지 않은 미래에 경북구간을 거쳐 다시 임곡리 첫 출발지로 순환하는 속리산 둘레길이 완성되고 많은 이들이 감사한 마음으로 이곳을 찾을 날을 기대하며 잠시 마침표를 찍는다. 무더위도 마다하지 않고 친절하게 길안내와 정보제공을 해 주신 조성상, 유재환, 김태익 등산 지도사님, 그리고 무엇보다도 기회를 만들어주신 최원석 속리산 둘레길 사무국장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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