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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하고 싶다면 호이안

은퇴부부의 베트남 자유여행 3

by 심웅섭

다낭에서 3일 밤을 자고 호이안으로 향한다. 새벽 비행기로 흐트러진 컨디션을 회복하기 위해 꼬박 하루를 뒹굴거리느라 지체된 것이다. 수탉 성당이니 골든 브릿지니 알려진 관광지들이 많지만 대체로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는 법, 너무 기성품화 된 것들에는 흥미를 덜 느끼는 게 취향이니 어쩌랴? 교통편을 알아보니 버스는 없단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원래는 있었는데 코로나로 운행 중지라는 글도 보이고 현지인에게 물어보니 버스가 다니는데 어디서 타는지는 모르겠단다. 베트남의 우버, 그랩에서 검색해 보니 택시비가 대충 30만 동, 우리 돈으로 치면 16,000원 꼴이다. 백수라고는 해도 부담스러울 정도의 가격은 아니다. 아니, 도쿄에서의 살인적인 택시비를 생각하면 거의 버스비에 가까운 가격이라고 할 정도다.


오전 10시에 다낭의 호텔을 출발, 그런데 택시 기사가 코코넛 관광을 하고 가잔다. 이 녀석이 택시비 더 받으려고 꼼수를 부리는구나, 택시비로 얼마를 더 내야 하냐고 물으니 공짜란다. 주차비도 대기료도 없이 그냥 기다려준단다. 어차피 시간이 일러서 지금 가도 체크인할 수도 없으니 구경하고 가라고 나의 약점까지 파고든다. 마지못해 받아들였다. 한참을 달려서 도착한 코코넛 관광, 이게 무슨 농장에서 코코넛 수확체험인가 싶었는데 도착해 보니 TV에서 보았던 둥그런 바구니 배, 코코넛 배를 타는 체험이다. 대나무로 커다란 바구니를 엮고 틈새를 무슨 진흙 같은 소재로 메꿔서 배로 쓰는데 속도가 느리고 파도에 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러나 이곳은 호수처럼 워낙 잔잔한 강의 하구이니 파도 걱정은 없을 테고 주로 고기를 잡거나 큰 배에서 육지로 생선을 나르는 정도의 작업을 하기에는 손색이 없다. 우리 부부가 도착하니 여직원이 다가와서 60만 동을 내란다. 이거 뭔가 비싸다 싶어서 안 타겠다고 버티니 40만 동, 일인 당 20만 동을 내란다. 한국 돈으로 2만 원 남짓이니 뭐 괜찮다 싶어서 돈을 건넸다. 나중에 검색해 보니 어른 요금이 5달러란다. 둘이서 10달러, 베트남 돈으로 계산하면 23만 동이니 제법 바가지를 쓴 셈이다 싶다. 물론 이 정도의 바가지까지 쓰지 않으려면 무척이나 피곤할 터, 적당히 웃으며 감내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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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끗한 수염과 선한 눈매의 제법 나이가 들어 보이는 아저씨가 우리 배의 선장님이다. 노 하나로 바구니 배를 잘도 저어 간다. 잠시 지켜보니 다른 배에서는 남자 손님들이 함께 노를 젓고 있다. 냉큼 여분의 노를 찾아서 노젓기에 합류했다. 선장님이 아주 만족스러운 미소를 보내신다. 아주 짧은 순간에 나는 코코넛 배의 항해사로 취직된 것이다. 잔잔한 강, 아니 호수를 따라 코코넛 숲을 헤치며 항해를 한다. 코코넛 나무 사이로 일부러 수로를 만들어 놓은 모습도 보이고 붉은 코코넛 게가 뻘 밖으로 기어 다니는 모습도 눈에 띈다. 오토바이의 소음과 매연에 머리가 지끈거렸는데, 넓은 호수를 가르며 항해(^^)를 하니 가슴이 확 트이는 느낌이다. 하긴 사춘기 때 내 꿈 중의 하나가 마도로스였으니 이제라도 꿈을 이룬 게 아닌가 하는 장난스러운 생각이 떠오른다. 그런데 어디선가 꽃 향기가 코를 감싼다. 아무리 봐도 꽃은 보이지 않는데 이 향기가 설마 코코넛 나무에서 나는 걸까, 아니면 주변에 보이지 않는 꽃나무가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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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넓은 곳에 도착하니 시끌시끌 노래와 공연이 한참이다. 자세히 보니 대체로 두 그룹으로 나뉘어서 한쪽에서는 중국 노래, 다른 쪽에서는 한국의 트롯이 뿡짝거린다. 기둥에 묶어둔 코코넛 배에 앰프시설을 갖추고 한 남자가 춤을 추고 음악을 틀어대는 것이다. 어떤 배 하나는 제자리에서 뱅글뱅글 돌아가는 퍼포먼스를 하고 둘러싼 관광객들은 좋아하고 웃으며 박수를 치는데 그 모습이 마치 상모 돌리기를 연상케 한다. 소음과 트롯을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사람들의 표정이 너무 밝아서일까, 슬며시 웃음이 나온다. 한쪽에서는 착하게 생긴 아저씨가 멋진 자세로 투망질을 해 댄다. 고기를 잡나 싶어서 살펴보니 고기는 한 마리도 잡히지 않는다. 관광객들을 위한 퍼포먼스라는 말이다. 돌아오는 길은 선장님의 지시에 따라 속도를 올려야 했다. 서툰 한국말로 영차 영차 구령을 붙이시는데 여기에 맞추려니 제법 팔이 뻐근 해질 정도, 덕분에 운동량은 좀 채웠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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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분 정도 걸려서 12시쯤 호이안에 도착, 체크인 시간이 한 시란다. 예약한 숙소에 짐을 맡겨 두고 거리 구경을 나섰다. 조금 걸으니 구 시가지, 올드타운의 입구다. 이곳에서 한 컷 찍고 갈까, 카메라를 꺼내는데 웬 아줌마가 긴 장대 양쪽으로 과일바구니를 매달고는 웃으면서 달려온다. 함께 사진을 찍어주고는 과일을 판다더니 니 현지 상인의 고전적인 상술인가 싶지만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다. 망고 1KG에 60,000동, 다낭에서도 그 가격에 사 먹었으니 딱히 비싼 가격은 아니다. 손질한 망고를 먹기 위해 길 가에 주저앉았다. 그런데 눈앞에 갑자기 베트남 길거리 음식을 파는 가판대가 나타났다. 없던 가판대가 갑자기 나타날 리는 없고 보면 눈에 띄지 않았다가 주저앉는 순간 발견했다고 봐야 하겠지만 말이다. 마침 출출하던 참이다. 다가가서 이게 뭐냐고 물으니 반 쎄오란다. 쌀가루 반죽을 부침개 모양으로 바삭하게 튀긴 위에 해산물과 채소, 양념을 넣어 감싼 요리다. 옆에는 새우 몇 마리가 들어있는 피자 모양의 간식이 있는데 이름을 들었으나 잊어버렸다. 아무튼 반 쎄오와 다른 간식, 거기에 망고 세 개로 간식 같은 점심을 길거리에 앉아서 먹는다. 나야 원래부터 길거리에서 아무렇게나 주저앉아 먹거나 잠을 자는데 아무런 주저함이 없는 편이지만 아내는 사실 망설이는 편이었다. 그런데 지금 서슴없이 주저앉아서 길거리 음식을 먹는 걸 보니 나와 결혼해서 참 많이 변했구나 싶다.


허기가 채워지니 풍경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우선 건물들은 모두 1-2층의 나트막한 옛날 집들인데 벽돌과 목조주택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 건물들이 도시의 상가처럼 어깨를 바짝바짝 맞대어 거리를 형성하고 있는데 오래된 기와와 기와 위의 이끼, 그리고 낡은 벽과 창들이 마치 동화처럼 그림처럼 느껴진다. 거리를 걷노라니 내가 옛날 민화 속으로 들어온 듯, 타임머신을 타고 옛날로 여행 온듯한 착각을 일으킨다. 호이안의 역사가 궁금하여 잠시 검색을 해 보았다. 호이안은 베트남 중부에 위치한 오래된 항구도시다. 1세기경에는 동남아시아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항구가 여기에 있었고 16세기말부터 17세기 초까지는 "바다의 실크로드"라고 불리던 중요한 국제 무역항이었단다. 주로 중국 상인과 일본인, 네덜란드인, 그리고 인도인들이 드나들며 나중에는 이들 중 정착민들이 늘기 시작하여 서구적이면서도 동양적인 풍경이 자리 잡았단다. 이후 무역의 중심이 다낭으로 옮겨가면서 급격히 쇠락하였는데 역설적이게도 이런 이유로 호이안이 옛 모습을 간직한 채 살아남을 수 있었고 덕분에 1999년에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고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관광명소가 되었단다. 개발의 축에서 비껴 난 덕분에 유명해졌다니 어찌 보면 아이러니한 일이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는 말이 사람의 인생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닌가 보다.


그런데 호이안이 유명해진 것은 단순히 옛날 건물이 많아서는 아닌 것 같다. 이곳 사람들의 의지와 노력들도 함께 했음이 눈에 보인다. 그 첫 번째 이유는 우선 오토바이가 없다는 것이다. 베트남에 온 지 겨우 사나흘인데 그놈의 오토바이 소음과 매연, 그리고 무질서함에 슬슬 질리기 시작했었다. 무질서하면서도 용케도 피해 가는 운전자들과 스마트폰을 켜고 들여다보면서 곡예 운전하는 모습이 신기한 것도 잠시, 무엇보다 매캐한 매연 냄새에 은근히 머리가 지끈거리던 참이었다. 그런데 올드타운에는 오토바이와 차가 다니지 않는다. 오직 걷거나 자전거만 허용될 뿐이다. 소음과 매연에서 벗어나 안심하고 걸을 수 있으니 아름다운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처음 이곳에 오토바이와 차량 진입을 제한하자고 제안한 사람을 누구일까, 과연 그 일이 모든 사람들의 동의하에 순조롭게 진행되었을까? 아마 그렇지 않으리라. 사람들은 대체로 미래의 불확실한 성과를 위해 당장의 불편을 감수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강한 편이다. 게다가 목소리 큰 사람이야 어디 가나 있는 법, 누군가의 마음이 상하고 복잡한 논의 과정을 거쳐서야 동의가 이루어졌겠다 싶다. 중간중간 그림이나 사진작품을 전시해 놓은 갤러리, 오래된 고가를 외지인에게 개방해 놓은 곳들도 제법 눈에 띄는데 물론 입장료를 받거나 판매를 하기는 하지만 일정 부분의 지원이 없이는 유지하기 어렵겠다는 생각도 든다. 어쩌면 구시가지 전체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서 약간의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겠다는 생각도 머리를 스친다.


강가의 오래된 찻집에서 달달한 베트남 커피를 마시며 다리 쉼을 한다. 낡고 어두운 실내와 밝고 활기찬 거리가 묘한 대비를 이루어 편안함을 더해준다. 마치 창문이 아니라 동영상 액자를 걸어 놓은 듯하다. 그런데 문득 질문 하나가 떠오른다. 사람들은 왜 낡고 오래된 것을 좋아할까? 더 편하고 깨끗하고 기능적인 것들을 마다하고 낡고 어둡고 좁은 곳에서 편안함을 느낄까? 미학이나 심리학을 전공하지 않은 나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질문이다. 어쩌면 안전한 곳을 찾는 본능 때문일까, 혹은 시간이라고 하는 4차원의 자연이 만들어 낸 '낡음'이라는 작품에 매료되는 것일까? 오래된 마을에서 낡은 찻집에 앉아 달달한 차를 마시며 내 마음은 자꾸만 행복해지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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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정도의 행복감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깨닫기에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하자 여기저기에서 나룻배들이 슬금슬금 나타나더니 배에 매단 둥그런 색깔 등이 하나씩 켜지기 시작한다. 호수처럼 잔잔한 투본강은 마치 헤엄치는 반딧불이의 무리를 풀어놓은 듯, 움직이는 불빛들로 가득해진다. 거기에 상가들도 아낌없이 불을 밝히고 입구에는 대나무로 만든 색등들을 화려하게 매달아 놓으니 그야말로 온 천지가 불야성이다. 한쪽으로는 어느새 야시장이 들어서서 불을 밝히고 번쩍이는 형광 장난감을 파는 상인들에 과일 행상에 강에 띄우는 촛불을 파는 할머니들까지, 그야말로 순식간에 마법처럼 밤의 나라가 펼쳐진다. 흥겨운 음악소리에 호객하는 소리에 사람들의 재잘거림......, 기분 좋은 소음들이 내 귀를 간지럽힌다. 내가 판타지 영화 속에라도 들어온 걸까, 자꾸만 마음이 가벼워진다. 좀처럼 감정표현을 하지 않는 아내도 행복감을 참을 수 없는지 한마디 건넨다


"여보, 포르투도 좋았는데 여기가 더 좋은 것 같애"


3년 전, 산티아고 순례에 이어 찾은 포르투 여행에서 본 야경을 말하는 것이다. 포르투의 다리에서 내려다본 야경은 마치 동화 속 스머프 마을에라도 들어온 느낌이었다. 그런데 그때는 멀리서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바라보는 느낌이었다면 지금 호이안의 야경은 내가 그 속에 들어와 있는 느낌이다. 다르게 표현하자면 포르투의 야경이 환상적인 3D 영화였다면 이곳은 청각과 후각, 미각, 그리고 피부에 닿는 촉각까지 모두가 즐거운 5D 영화라는 뜻이다.


강가에 앉아서 망고를 먹으며 끊임없이 움직이는 배의 불빛들을 바라본다. 사람들의 재잘거림이 이처럼 기분 좋은 간질거림이었던가, 밤이 이처럼 환상적이고 재미있는 녀석이었던가, 내가 원래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행복해서 해해거리는 사람이었던가, 아니 나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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