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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정글 속으로

은퇴부부의 베트남 자유여행 17

by 심웅섭

말로만 듣던 정글 속으로 떠난다. 베트남에 입국한 지 22일 만이다. 베트남에 오면 도시와 농경지를 빼고는 온통 정글인줄 알았다. 조금만 숲에 들어가면 독사와 거미들이 득실거리고 낮에도 해가 들지 않을 정도로 빽빽한, 어디선가 원숭이가 깩깩거리고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는 위험하고도 매혹적인 별세계인줄 알았다. 그런데 뜻밖에 내가 만난 베트남 산들은 우리나라와 별 다를 바 없이 소나무가 울창하고 간혹 다른 활엽수와 잡목들이 자라고 있을 뿐이었다. 이제 말로만 듣던 정글로 떠난다.


숙소에서 소개하는 정글투어를 신청했다. 가이드를 따라 국립공원 숲 속을 걸으며 식물과 동물에 관한 안내를 받는 세 시간짜리 투어코스다. 가이드 비를 포함해서 일인당 20달러로 다른 투어에 비해 비교적 싼 가격이다. 사실은 조금 더 비싼, 일인당 9만 원 정도의 탐험투어를 신청했더니 인원이 모자라서 안된단다. 우리 두 부부만 가이드해서는 인건비가 제대로 나오지 않으니 이해할만하다. 결국 이웃집에 묶은 말레이시아 가족 3명과 함께 5인 투어에 나선 것이다. 아침 7시에 숙소에서 제공하는 식사를 마치고 8시까지 리셉션에 도착하니 숙소주인이 이상하게 생긴 양말을 준다. 발부터 무릎까지 한꺼번에 감싸는 일종의 덧버선이다. 이걸 신고 끈을 꼭 묶은 상태로 신발을 신으란다. 또 조그마한 연고를 두 개 나눠주면서 이걸 덧버선의 바깥 부분에 살짝 묻히란다. 짐작은 가지만 혹시나 싶어서 무슨 용도냐고 물으니 거머리를 막기 위해서란다. 내 표정이 걱정스러워서인지 씩 웃으면서, '걱정 마, 요즘은 많지 않아. 한두 마리 정도?' 아마 건기이기 때문에 거머리가 기승을 부리지는 않은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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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에 들어서려면 먼저 표를 끊고 배를 타고 건너야 한다. 낡은 통통배에 열명쯤 되는 관광객이 타고 강을 건넌다. 뱃삯은 입장료에 포함되어 있는지 따로 내지 않는다. 정글탐험을 안내할 가이드를 만났다. 비장한 표정의 나와는 달리 가이드는 동네 산책이라도 안내하듯, 심드렁한 표정으로 일행을 안내한다.


정글에 첫 발을 들였을 때 느낌은 향기가 난다는 거다. 울창한 나무와 빽빽한 덤불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겠지만 정작 내 주의를 먼저 끈 것은 흙냄새와 꽃냄새를 섞어 놓은 듯한 알 수 없는 냄새였다. 아무리 보아도 꽃이 보이지는 않으니 꽃 향기일리는 없고, 아마도 흙과 낙엽이 오랫동안 쌓여 부패와 발효를 하면서 이런 향기를 만들었으리라. 사실 우리나라 산도 좀 습한 계절에 걷다 보면 버섯향과 비슷한 독특한 냄새가 날 때가 있다. 그런데 정글의 냄새는 그와는 달리 조금 더 꽃향기에 가까운 정도다. 이 향기는 정글 탐험하는 세 시간 내내 코에 붙어 다녔다. 나무와 덤불들은 영화에서 본 것처럼 제법 울창하다.


아침마다 묘한 소리로 노래하듯 울어대는 녀석들, 바로 gibbon이라 불리는 긴팔원숭이를 만났다. 나무에서 자유스럽게 다니는 녀석을 본 것은 아니고 다친 녀석과 엄마 잃은 녀석들을 보호를 위해서 철망으로 커다란 보호소를 만들어 놓았는데 바로 이곳에 입주한 녀석들이다. 사진에서 본 것처럼 진한 갈색의 수컷과 밝은 황금색의 암컷, 그리고 움직임이 활발한 개구쟁이 어린 녀석들이 구경꾼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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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팔원숭이를 지나 좀 더 깊은 정글로 들어간다. 역시 정글답게 나무가 울창하고 그 나무들에는 타잔이 매달릴만한 덩굴들이 매달려 있다. 큰 나무 밑으로는 작은 관목과 덤불들이 제법 빼곡하다. 이름을 알 수 없는 새들의 지저귐도 주의를 끈다. 가이드가 나무와 새와 곤충들의 이름과 쓰임새를 쉬운 영어로 설명해 주는데 그중에서 관심을 끄는 녀석이 있다. 정글에 들어서면서부터 눈에 많이 띄는 밝은 색 수피의 나무들이다. 이 녀석은 어릴 때는 원통형이다가 조금 자라면 밑 둥치가 삼각형으로 변하여 독특한 모습을 연출한다. 가이드가 이 녀석을 두들기니 마치 속이 빈 것처럼 퉁, 퉁 하고 울린다. 재미있는 것은 실제 이 녀석 이름이 퉁 나무(tung)란다.. 마치 대나무가 속을 비우고 빨리 자라는 걸 선택한 것처럼, 이 녀석도 빠르게 자라기 위해서 부드럽고 엉성한 몸체를 선택했으리라. 100년쯤 자란 것은 둘레도 둘레지만 수십 m의 엄청난 키에, 삼각형으로 치마처럼 뻗은 하단부가 마치 콘크리트 벽을 쌓은 듯. 그 위용이 대단하다. 우리나라에는 없는 형태의 퉁나무가 정글에는 왜 이리 많을까, 식물학자는 아니지만 내 나름대로 추측을 해본다. 수많은 나무들이 빽빽하게 자라는 정글의 특성상 빨리 키가 자라서 햇빛을 보는 것이 생존에 절대적으로 유리했을 것이다. 거기에 강수량이 많고 주변에 나무가 많다 보니 물이 부족하거나 세찬 비바람에 쓰러질 염려는 적은 환경이다. 이런 환경에서 굳이 뿌리를 깊고 넓게 내리느라 에너지를 쓰는 것은 불필요하다. 차라리 얼른 키를 키워서 햇빛을 독차지하고 어느 정도 자란 상태에서, 이제는 나무 밑동을 가장 안정적인 형태인 삼각형으로 변형시켜 무거워진 몸을 지탱하는 전략을 택했구나 싶다. 정글이라는 주어진 환경에서 가장 잘 적응한 녀석이 이 나무구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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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퉁나무를 괴롭히는 기막힌 녀석이 있다. 바로 피쿠스(ficus)다. 덩굴인 듯, 나무인 듯 이상한 이 식물은 어렸을 때는 전혀 위협적이지 않아 보인다. 퉁나무에 그저 조심스레 붙어있는 담쟁이덩굴, 잘해야 송담정도로 보인다. 그런데 이 녀석이 무서운 속도로 자라면서 결국은 퉁나무를 감싸 죽인단다. 재미있는 것은 퉁나무가 죽고 나면 이 녀석이 단단하게 목질화되어 마치 퉁나무인 것처럼 그 모양을 그래도 간직한 채 서서 생존한다는 거다. 정글을 걷다 보면 마치 그물망처럼 생긴 나무들도 보이고 피쿠스가 퉁나무를 다정스레 감싸 안고 있는 모습, 그리고 하얀 퉁나무에 이제 막 여릿여릿한 덩굴이 붙어 있는 모습까지 볼 수 있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라더니, 우수한 생존전략으로 번성하는 퉁나무를 희생양으로 삼아 생존하는 녀석들을 칭찬해 주어야 할까, 아니면 남을 죽이고 살아남는 그악스러움을 미워해야 할까 잠시 판단이 서지 않는다.


상상했던 것과는 달리 뱀과 독충들이 우글거리지는 않는다. 가끔 뱀이 나타난다는 안내를 들었지만 실제로는 딱 한 마리, 그것도 꼬리만 겨우 봤을 정도이고, 줄을 치고 영업 중인 거미와 낮잠에 빠진 박쥐 한 마리를 봤을 뿐이다. 아마도 건기이기 때문에 좀 더 쾌적한 것 아닌가 싶다. 그러나 위험요소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잠시 쉬는 사이, 가이드가 일행의 발들을 유심히 살피더니 작은 물체 하나를 떼어낸다. 불과 5-6mm에 불과해 보이는 진한 갈색의 연약한 몸체, 바로 거머리다. 봐서는 전혀 위협적으로 보이지 않지만 피를 빤다니 조심하지 않을 수 없다. 아침부터 덧신에 연고에 중무장을 한 이유가 바로 이 녀석 때문이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가이드의 복장이 재미있다. 덧신은커녕 양말도 없이 샌들을 신고 있는 것이다. 저러면 거머리가 아무런 장애물 없이 달려들 텐데 싶어서 괜찮냐고 물으니 자기는 괜찮단다. 이유를 물으니 자기는 익숙해져서 거머리가 달라붙으면 그 감촉을 알아차린단다. 하기야 몽골 초원의 현지인들은 엄청난 시력을 가졌다는데, 정글에서 대대로 이어 살아온 사람들이 그 정도의 감각을 지니게 된 것이 그리 이상할 것 같지는 않다.


울창한 정글 사이에는 오솔길들이 이리저리 나 있어서 걷기에 큰 어려움은 없다. 그러나 이정표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내비게이션이 길 안내를 해 줄 것 같지도 않다. 결국 가이드를 따라다니는 방법 말고는 없을 듯싶다. 실제로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정글 트레킹은 가이드와 동행해서만 허용된단다. 그렇게 세 시간쯤 걸어서 큰길로 나왔다. 정글 트레킹이 끝난 것이다. 앞으로 악어 늪에서 악어를 만나는 일, 정글 사이로 자전거 라이딩을 하는 방법 등이 남아있다. 우리 부부가 남깟띠엔에 머무는 기간이 일주일이니 조금씩, 야금야금 정글을 즐겨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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