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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물가, 흥정과 바가지

은퇴부부의 베트남 자유여행 14

by 심웅섭

시내 마트에서 식료품을 좀 샀다. 김치찌개 용 돼지고기와 샐러드를 해 먹을 채소, 양념, 수세미, 요구르트, 맥주, 쌀까지......, 제법 장바구니가 묵직해졌다. 보통 우리 부부가 일주일에 한 번 장 보는 정도의 익숙한 무게감, 한국에서라면 대충 6-7만 원 정도이겠다 싶다. 그런데 계산을 해보니 495,000동 (29,000원), 한국물가의 절반이 조금 안 되는 가격이다. 베트남 물가는 한국보다 싸다. 문제는 얼마나 싸냐는 건데 이건 사람마다 체감온도가 약간씩 다를 수 있다. 골프를 좋아하는 내 친구는 골프값이 한국과 비슷하다고 불평을 터뜨린 적도 있고, 수입공산품은 한국과 다를 바 없다. 대도시로 들어갈수록 비싸지니 지역에 따라서도 다를 것이다. 그러나 주로 소도시와 시골 마을에서 농산물과 현지 식사, 그리고 숙소 정도를 소비하는 우리 부부의 입장에서 보면 베트남의 물가는 한국의 40-50%선이라고 느껴진다. 그런데 이 베트남 물가에는 복병이 있다. 대부분의 한국사람들이 두 번은 놀란다는 베트남 물가의 복병은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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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베트남에 와서 놀란 것은 물가가 싸다는 점이었다. 쌀국수나 밥값이 대충 3만-5만 동정도, 한국 돈으로 치면 2-3천 원 정도다. 택시비도 웬만한 거리면 4-5천 원 정도로 제법 먼 거리까지 이동이 가능하니 전혀 부담스럽지가 않다. 대략 한국 택시비의 절반 정도 된다는 느낌이다. (물론 그랩택시의 경우를 말한다. 알다시피 그랩은 앱을 통해 영업하는 자가용들이며 일반적으로 택시보다 싸다). 방값은 그보다 싸서 2만 원-4만 원 정도면 제법 깔끔한 방을 고를 수가 있다. 물론 지역에 따라서, 혹은 선택하는 급에 따라서 천차만별로 다르겠지만 은퇴백수가 선택하는 웬만큼 깔끔한 비즈니스 호텔, 혹은 에어비앤비 숙소의 경우에 그렇다는 말이다. 이래저래 뭉뚱그려 본다면 베트남 물가는 한국의 40 -50% 선이라는 게 내 느낌이다. 이러니 처음 베트남 물가를, 관광지 물가가 아닌 현지인 물가로 접한다면 조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기분 좋은 놀람이다.


두 번째 놀라는 것은 가격의 크기, 숫자에 놀라는 경우다. 베트남 화폐단위가 우리나라에 비교해서 지나치게 커서 일어나는 해프닝이다. 다낭에 도착하고 이틀 뒤였으리라. 저녁산책을 마치고 마트에 들렀다. 요구르트와 맥주, 그리고 간단한 주전부리에 조그마한 선크림 하나를 골랐다. 그런데 가격이 78만 동이란다. 순간 그 숫자에 놀라버렸다. 계산서를 가만히 살펴보니 선크림이 문제였다. 다른 것들은 몇만 동인데 수입품인 요 녀석이 50만 동이 살짝 넘었으니 전체적으로 엄청난 숫자가 나온 것이다. 순간적으로 놀라서 이 녀석을 장바구니에서 뺄 뻔했다. 그런데 정신을 차려 계산해 보니 3만 원이 채 안 되는 돈이다. 아차, 내가 아내 앞에서 좁쌀영감 티를 낼 뻔했구나, 가슴을 쓸어내리고 태연하게 계산을 완료했다.


두 번째 놀란 것은 호이안에서 미용실에 들렀을 때다. 한국을 떠날 때부터 물가 싼 베트남에 가서 머리 염색을 한다고 생각을 하고 왔었다. 그런데 미용실에 들러 가격을 물으니 아주 간단한 영어가 되돌아온다.


"one million"


백만 원, 아니 동이란다. 순간 또 놀라버렸다. 곰곰이 따져보니 둘이 55,000원이다. 뭐 한국물가에 비해서 그리 싸지는 않지만 그건 시골에 사는 우리 부부의 물가개념 탓일 수도 있겠다 싶다. 한국에서도 호이안 정도의 도시에서 제법 사람이 북적이는 미용실이라면 이 정도 받겠지, 억지로 이해를 하고 시작을 했다. 그런데 염색을 마치고 보니 전혀 불만이 없다. 색도 자연스러운 데다가 냄새도 없고, 무엇보다도 머릿결이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게 내가 해 본 염색 중에 최고의 결과가 나왔기 때문이다. 뭔가 좋은 염색제나 모발 보호제를 썼나 싶다. 만족하며 주변을 둘러보니 북적이는 손님들 대부분이 염색을 하고 있다. 아마도 제법 유명한 염색 전문점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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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정작 조심할 물가 복병은 따로 있으니 바로 바가지다. 물가가 싸다고 방심하는 사이 은근히 나를 괴롭히는 바가지요금의 경우를 몇 가지 들어보자. 첫 번째 바가지는 다낭의 한시장에서 만났다. 이것저것 옷가지들을 만족한 가격에 사고 나오려다가 견과류를 파는 상점이 눈에 들어왔다. 여행 중에 출출하면 조금씩 먹으면 좋겠다 싶어서 캐슈넛 값을 물으니 40만 동 이란다. 뭔가 단위가 크다는 불길한 느낌에 마음속 경고등이 삐삐거린다. 평소 같으면 돌아섰을 텐데, 나는 깎지도 않고 돈을 지불했다. 전날, 그리 비싸지도 않은 선크림 가격에 놀란 게 생각이 나서 이번에는 거꾸로 대범한 척하다 보니 순간적으로 판단을 하지 못한 것이다. 나중에 따져보니 한국보다도 비싸게 캐슈넛을 샀다, 그것도 세계 최대 생산국이라는 베트남에서. 하긴 아줌마가 이것저것 서비스를 과하게 챙겨주는 걸 보고 직감을 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약간 찜찜할 정도의 조그마한 바가지는 그 후에도 몇 차례 겪었다. 다낭에서 6만 동에 사 먹었던 망고는 3만 동에서 나중에 2만 동까지 떨어졌으니 어찌 보면 그것도 바가지요, 3만 동 짜리를 4만 동에 반 미를 산 적도 있다. 물론 이 정도의 바가지는 써 봤자 기분이 살짝 나쁜 정도다. 한국 돈으로 치면 몇 백 원에서 이삼천 원 정도이니 말이다. 따라서 조심은 하되, 너무 철저하게 피하려고 여행의 분위기를 망칠 필요까지는 없지 싶다.


그런데 이 정도의 조그마한 바가지가 아니라 쓰면 휘청거릴 수도 있는 큰 바가지도 있다. 자칫 쓸 수도 있었던 바가지 미수사건을 공개한다. 달랏의 죽림선원에서 우연히 파이프 형 풍경소리를 들은 우리 부부는 그만 그 소리에 폭 빠져버렸다. 옳다구나, 저 풍경을 사 갖고 가자. 문제는 그 풍경을 파는 곳을 아무도 모른다는 거다. 대도시인 호찌민에서 이리저리 물어보고 호텔 리셉션에도 문의했지만 모두들 고개를 갸웃거리거나 엉뚱한 장소를 알려준다. 혹시나 한국의 인터넷을 뒤져보니 호찌민의 트랑나 거리에 불교용품을 파는 곳이 있단다. 냉큼 택시로 달려가서 물으니 창고 어딘가에서 풍경을 꺼내온다. 가격을 물으니 467만 동, 대략 25만 원 정도다. 가격도 세고 무게도 있어서 고민하다가 다른 곳을 가보기로 했다. 여기저기 다른 가게에 가서 물어보았다. 대부분 없다는데 딱 한 군데서 기다리란다. 그리고는 직원들이 아래위로 바쁘게 오가며 물건을 찾아왔다. 가격을 물으니 1,800만 동, 조금 전 가게에 비해 무려 4배, 한국돈으로도 100만 원에 달하는 엄청난 가격이다. 순간 숨겨놓았던 나만의 관심법을 발동하니 상인의 마음이 술술 읽힌다.


'어차피 평생 한 번 찾아오는 외국인이, 아무도 찾지 않은 희귀한 물건을 구하러 왔다. 이 외국인은 그 물건이 꼭 필요한 사람이고 물가 개념도 베트남 사람과는 다르다. 다른 가게에는 팔지 않고 정가표도 붙어있지 않다. 그렇다면 세게 한 번 불러보자. 비싸다고 하면 깎아주면 된다. 처음에 1,800만 동을 불렀으니 아무리 흥정을 해도 1,000만 동은 받을 테고, 어쨌든 오늘 큰 건 하나 터뜨리는 거다'


휴, 관심법 덕분에 바가지를 피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이 풍경은 베트남 물건이 아니구나 싶다. 어제 저녁에 인터넷을 뒤져보니 중국산이 있었는데 모양과 색깔과 모든 것이 정확히 일치한다. 대부분의 가게에 없다는 것도 이 물건이 베트남에서 흔하게 쓰이지 않는다는 거다. 이들도 중국에서 수입해다가 판다는 뜻이고 다시 말하면 내가 한국에 가서도 살 수 있다는 거다. 결국 베트남에서 사는 것을 포기하고 국내에 와서 176,000원에 무료배송으로 구입을 했다. 자칫하면 100만 원을 주고 사서 오버차지 물어가며 낑낑거리고 들고 올 수도 있었으니 만약 썼다면 아주 큰 바가지로 역사에 기록될 뻔했다.


바가지를 쓰지 않으려면 먼저 사전 정보가 필요하다. 내가 원하는 물건을 먼저 정하고 그걸 인터넷에 검색해 보면 유용한 정보들이 대부분 있다. 특히 한국사람들이 올려놓은 여행 후기가 도움이 된다. 즉석에서 사는 작은 기념품이나 길거리 음식이 아니라면 미리 한 번쯤 검색을 하고 쇼핑을 하길 권한다.


말이 나온 김에 베트남의 물건 값 흥정에 대해 한마디 하자. 우선 흥정을 하려면 이걸 게임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게임에는 절차와 요령이 있다. 옷이나 기념품을 살 때 먼저 마음에 드는지를 확실하게 결정하고 게임을 시작한다. 흥정하고 나서 다시 물건을 고르는 건 반칙이다. 물건이 골라지면 얼마냐고 묻는다. 상인이 가격을 이야기한다. 한국의 물가에 비하면 납득할 만한 수준이리라. 여기서 그냥 사버리면 그건 게임이 아니라 바가지 쓴 거다. 먼저 깎아달라고 말하는 것은 모양새도 빠질 뿐 아니라 칼자루가 아닌 칼날을 잡겠다는 뜻이다. 잠깐 고민하는 척하다가 다른 곳으로 가겠다고 한다. 이때 상인이 잡지 않으면 그건 흥정이 안 통하는 시장이라는 뜻이다. 흥정이 통하는 동네라면 상인은 계산기를 내밀며 네가 원하는 가격을 제시해 보라고 한다. 보통 한국사람이라면 여기서 약간의 에누리, 그러니까 15-20% 정도를 생각하기 쉽지만 그건 게임의 요령이 부족한 거다. 일단 제시된 가격의 절반, 혹은 그 이하를 제시한다. 이제부터가 눈치와 배짱과 타협이 맞부딪히는 흥미진진한 게임의 후반전이다. 상인은 70%를 제시하고 나는 다시 40%를 고집하고, 상인이 55%로 수정 제의하고 나는 45%로 간격을 좁힌다. 때에 따라서는 다른 곳으로 가겠다는 제스처로 흥정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는 것도 필요하다. 결국 50% 정도에 거래가 이루어지고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이 모두 만족해한다. 물론 모든 시장에서 게임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 부부가 흥정으로 물건값을 깎아 본 것은 다낭의 한시장과 호이안, 그리고 호찌민의 벤탄시장 정도로 모두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전통시장이다. 달랏 시장에서는 상인들이 전혀 흥정에 응하지 않았고 마트에서 사는 식료품들은 정찰제였다. 식당과 교통비, 혹은 숙박비도 깎는 일이 없으니 결국 일부지역에서만 통하는 게 흥정이란 말이다.


여기서 잠깐, 흥정과 바가지 얘기를 하다 보니 마치 베트남이 바가지가 횡행하는 위험한 나라라고 느끼는 분들이 있을 듯한데 그건 아니다. 대부분의 상인들이 순박하고 착한 가격에 물건들을 팔고 있다. 그 착한 가격 덕분에 은퇴부부도 중산층처럼 여유롭게 베트남 여행을 할 수 있었다. 다만 거래의 방식이 우리나라와는 좀 다르다고 보면 된다. 우리는 정찰제, 최저가 검색에 익숙해서 모든 가격이 투명하게 공개되어 있는데 비해 베트남에서는 물건에 따라서, 혹은 지역에 따라서 흥정이 필수인 경우가 많다. 따라서 처음 상인이 제시한 가격은 그저 '자, 이제 재미있게 거래를 시작해 볼까요?' 라는 시그널일 수도 있다. 그걸 덥석 사고 나서 바가지라고 욕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한국의 절반도 채 안 되는 저렴한 물가로 은퇴부부를 한 달간 받아준 베트남은 고맙고도 고마운 착한 나라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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