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어느 아침, 해가 뜰 무렵 마당으로 나선다. 뺨에 닿는 바깥 공기와 숲에서 들려오는 새소리가 달콤하다. 면장갑을 끼고, 낫과 톱을 챙겨들고 고욤나무 두 그루가 서 있는 밭둑으로 향한다. 일부러 심은 것은 아니고, 죽은 감나무 둥치에서 올라온 순들을 놔둔 것이 자랐으니 나의 게으름 덕에 살아난 나무들이다. 게으르기는 고욤나무도 마찬가지다. 남들은 대부분 어른 손바닥만 한 잎들을 매달고 있는데, 뒤늦게 내민 잎 순이 이제 겨우 새끼손가락만 하니 말이다. 아직 펴지지 않은 모습이 마치 오동통한 갓난아이의 주먹처럼 귀엽다. 이때가 차로 덖기에 맞춤한 시기이다.
어린 순을 따는 일은 어렵지 않다. 원래대로라면 하나씩 정성껏 따야하련만, 게으른 나는 장갑을 낀 채로 죽죽 훑는다. 높은 가지는 낫으로 걸어 휘어 놓고, 너무 웃자란 가지들은 톱으로 잘라 가지치기를 하면서 말이다. 한 시간 만에 작은 소쿠리가 그득할 정도의 소득을 얻었다. 이제 녀석들을 깨끗한 물에 잘 씻어서 채반에 담아 물기를 없앤다. 혹시나 섞여 있는 잔가지와 이물질들을 골라내는 것은 물론이다. 느긋하게 아침밥을 먹고 나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차를 덖는 시간이다.
먼저 덖음 솥을 깨끗하게 씻어서 제법 후끈한 열기가 느껴질 때까지 가스 불에 예열하고, 두꺼운 면장갑을 겹쳐 끼고는 고욤 잎을 부지런히 뒤적거려준다. 오른손 대신 부침개를 부칠 때 쓰는 뒤집개를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이렇게 4-5분 정도 바쁘게 뒤척여 주면 고욤 잎은 김을 내뿜으며 풀이 죽는다. 이를 제다법에서는 살청이라고 하는데 살아 있는 잎에 열을 가해서 생명현상을 멈추게 하는 과정이다. 다만 본래의 색깔과 향을 잃지 않으려면, 그리고 풍부하다는 비타민 C를 유지시키려면 너무 오랫동안 덖을 필요는 없다. 이제 김이 나는 잎들을 채반에 널어 식히고는 장갑 낀 두 손바닥 사이에서 비비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렇게 해야 잎을 보호하고 있는 피부막이 파괴되어 차가 잘 우러날 수 있는데, 이를 유념이라고 한다. 이렇게 유념한 차는 햇살에 널었다가 건조기에 넣고 적당한 온도에서 15시간 정도 건조를 한다.
이렇게 겨우 서너 시간 만에, 건조과정까지 해봐야 하루 만에 고욤잎차를 얻었다. 유리다관에 두 줌쯤 넉넉히 넣고 뜨거운 물을 넣으니 노르스름한 빛이 우러나는데 황금색이다. 오호라, 어린 고욤잎차는 황금차라고 이름 지어야겠구나. 조금 식기를 기다려 입에 대어본다. 먼저 잡힐 듯 말 듯 미세한 향기가 코를 간질인다. 조금씩 홀짝이며 혀끝으로 느껴본다. 달다. 설탕처럼 자극적인 단맛과 다른, 은은하면서도 몸과 마음을 잡아끄는 단맛이다. 목 넘김은 부드럽고 입안에 남는 여운이 상큼하다. 눈을 감으니 미세한 떨림과 열감이 슬며시 올라온다. 마셔 본 아내와 아이들도 모두 맛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렇게 맛있는 차를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내손으로 금방 만들다니, 뿌듯하고 감사하다.
나의 제다법에 대해서 반론을 제기하고 싶은 분들이 많을 것이다. 차를 만드는 시기나 덖는 방법, 특히 한 번만 덖고 유념한다는 대목에서 말이다. 나 역시 그동안 9증9포라는 말을 듣고 7-8번씩 덖고 유념을 했었다. 이렇게 만든 차를 우리면 갈색 찻물에 깊고 구수한 맛이 난다. 그런데 한 번만, 그것도 슬쩍 덖어서 건조시키니 황금색에 달고 향기로운 차가 된다는 걸 얼마 전에야 알았다. 둘 중에 어느 방법이 더 좋은지, 혹은 이보다 더 나은 다른 방법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차를 덖고 마시면서 내가 행복해한다는 것이다.
도시의 삶이 표준이 되어버린 시대에 문을 열고 몇 발자국만 나서면 고욤나무가 있고, 그 잎을 따서 새 소리를 들으며 차를 덖고, 가족과 함께 즐거워하며 마실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물론 이런 행복은 부동산 가격이 몇 배씩 오르고, 편하게 마트와 병원을 오가고, 교양 있게 문화생활을 누릴 기회를 모두 포기한 후에야 얻은 것이니 더욱 소중할 수밖에 없다.
(이 글은 2023년 5월 18일자 주간 '보은사람들'에 실린 본인의 칼럼을 옮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