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실업급여에 대한 논란들이 많다. 그 내용은 대체로 ‘노는 사람이 더 받아간다’, ‘실업급여 때문에 일을 안 한다’, '반복 수급이 많다'는 정도다. 그런데 이런 논란의 뒤에는 실업급여 수급이 ‘일하지 않으면서 돈을 받는 부도덕한 행위’라는 가치관이 깔려 있는 것 같다. ‘도덕적 해이’니 ‘시럽급여’니 하는 식의 저급한 선전전이 뒤섞인 것을 보면 말이다. 그런데 정년퇴직으로 이미 한차례 실업급여를 받았고 앞으로 한 번 더 받을 예정인 기간제 근로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이런 논란과 가치관은 사실이 아니거나 시대에 뒤떨어진 것들이 많다. 그 이유는 이렇다.
첫째 실업급여는 시혜나 적선이 아니다. 실업급여는 고용기간 내에 근로자와 사업자가 함께 부담하는 ‘보험’이다. 따라서 조건이 충족되어 수급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오랜 세월, 고민과 시행착오를 거쳐 채택한 제도이며 다른 많은 나라에서도 시행하고 있다. 가난하고 게으른 사람에게 국가나 지배층이 특별히 베푸는 적선이 아니다.
둘째, 실업급여 때문에 일을 그만둔다는 지적은 사실이 아니다. 우선 자발적 퇴직은 실업급여 수급대상이 아니다.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몇 달 쉴 수는 있지만, 이걸 받으려고 일을 그만두는 것은 불가능하다. 근로자들은 실업급여를 받기 위해서 그만두는 게 아니라 계약기간이 끝나서 어쩔 수 없이 '짤리는' 거다. IMF이후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엷어지고 대신 ‘노동시장 유연화’라는 그럴듯한 구호와 함께 비정규직, 기간제 근로형태가 대세를 이루고 있다. 민간기업은 물론이고 정부기관에서조차 몇 개월씩 기간제로 인력을 운용하니, 계약기간이 끝나면 그만두지 않을 방도가 없다. 짤린 후에 다른 일자리가 대기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계약직 일자리도 운이 좋아야 기회를 얻을 정도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새 일자리를 구하는 소득 공백기에 잠시 생존할 수 있는 수단이 실업급여다. 이를 두고 실업급여를 받으려고 일을 그만 둔다는 말은, 원인과 결과를 뒤바꾼 악의적 해석이다.
마지막으로 일하지 않고 돈을 받는 것은 더 이상 비난받을 일이 아니다. 듣는 이에 따라서는 다소 불편할 테지만, 차분히 생각해보자. 기업에서 아무리 좋은 물건을 많이 생산해도 시장에서 소비되지 않으면 이윤을 낼 수 없다. 시장에서의 구매력이 보장되어야 경제가 정상적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비록 일을 하지 않더라도 사람들에게 일정한 소득을 보장해 주는 것이 자본주의 사회 전체의 이익에 부합한다. ‘유효수요’니 ‘기본소득’이니 하는 말들이 모두 이런 원리에서 나온 개념들이다. 게다가 일자리는 점점 줄어들고 있다. 농경사회에서 산업화시대, 정보화시대를 거치면서 대부분의 생산과 유통 현장이 기계화, 자동화가 되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이제는 AI까지 인간의 일자리 위협하고 있다. AI가 스스로 공부하고 판단하고 창작까지 하는 세상, 이는 사람들의 일자리가 더욱 부족해진다는 말과 같다. 그렇다고 생산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일자리를 기계와 AI들이 대신해서 생산성은 더 높아진다. 문제는 이렇게 생산된 제품들을 소비하는 것은 인간일 수밖에 없고 이들에게 일정한 소득이 생겨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미래에는 조금씩 일하고 적당한 소득을 나누는 사회적 시스템이 필요해진다. 실업급여는 크게 보아 부족해 진 '일자리 나누기' 이며 미래사회의 노동시장을 미리 연습하는 기회다. 게으른 자들이 진딧물처럼 달콤한 시럽이나 빨아먹게 만드는 부도덕한 제도가 아니다.
실업급여는 오히려 확대되고 보완되어야한다. 우리나라의 실업급여는 하한액은 높지만 수급기간이 짧고 혜택에서 제외된 그룹들이 많다. 특히 현재 65세 이하의 수급대상을 노인인구의 증가와 수명연장 등을 감안하여 70세, 혹은 그 이상으로 상향해야 한다. 물론 민주사회에 어울리는 건강한 토론과 합의과정을 거쳐서 말이다. 그러나 그것이 당장 어렵다면, 실업급여가 부도덕하고 비효율적인 제도라는 식의 시대착오적이고 악의적인 공격부터 당장 멈추길 바란다.
<이글은 주간 '보은사람들'(2023, 8,17)에 기고한 본인의 칼럼을 옮겨적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