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서 발목부터 살핀다. 애매하다. 발목이 시큰거리고 약간의 통증은 남았지만 스틱에 의존하면 그런대로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일단 걷기로 했다. 이제는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배낭은 아내가 메고, 나는 맨 몸으로 절뚝절뚝 아내 뒤를 따른다. 중간 중간 볼거리들이 나타나는데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게다가 부르고스를 지나며 부터는 순례길이 고속도로와 자동차도로를 따라가는 일이 많아졌다. 굉음을 내며 달리는 자동차를 외면하며 아픈 발목으로 걷는다.
TV에서 본 티벳 순례자들의 모습이 떠오른다. 라싸로 향하는 티벳 고원의 어디쯤이었을까, 자동차가 쌩쌩 달리는 아스팔트길을 오체투지 하면서 걷는 순례자들 모습 말이다. 손과 무릎에 나무 조각을 비끄러매고 허름한 옷과 씻지 못한 더러운 얼굴로 위험한 아스팔트길에 온 몸을 내던지는 순례자들, 그들을 바라보면서 무모하다는 생각, 안타깝다는 생각, 성스럽다는 생각이 차례로 올라오던 기억.
고통 속에서, 어쩌면 고통을 통해서만 만날 수 있는 게 신일까, 예로부터 많은 종교에서 신에게 이르는 방편으로 고통과 절제를 강요해 왔으니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나는 신을 만나기 위해서 고통을 받아들일 준비가 전혀 돼 있지 않다는 거다. 만일 신이 인간의 고통과 믿음을 대가로 꼭 그만큼의 은혜를 주는 존재라면 나는 그런 신을 믿고 싶지 않다. 구원? 속죄? 그것도 필요 없다. 애초에 나는 30년 직장생활에 대한 포상 휴가로 이곳을 택했고, 오래되고 아름다운 순례길을 설렁설렁 여행하면서 기분만 내려는 여행객에 불과할 뿐이다. 지금까지 보름간 길을 걸은 것은 워낙 걷기를 좋아하니까 선택한 여행의 방법이었지, 신을 만나기 위해서 고행한 것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아도 모자랄 판국에 이 먼 외국에 내 돈 내고 와서 고행할 일이 무어란 말인가?
속으로 꿍얼꿍얼 온갖 불만을 터뜨리며 걷는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이런 나와 함께 걷는 아내는 아내대로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내색은 안했지만 30년 함께 산 부부인데 내 맘을 모를 리가 없을 터, 모른 척 함께 걷는 일 또한 고행이었으리라.
로스꼰데스 - 레디고스 11월 6일
아내와 헤어지기로 했다. 나는 발목이 아파서 걸을 수 없고, 아내는 한 구간도 빼놓지 않고 걷고 싶고, 결론은 잠시 헤어지는 거다. 구간을 조금 짧게 잡았다. 미리 숙소를 예약하고 나는 숙소 주인을 통해서 택시를 수배했다. 레디고스까지 채 30분이 걸리지 않았다.
예약한 숙소는 카페와 식당을 겸한 곳으로 제법 정갈하고 따듯하다. 숙소는 오후 2시가 돼야 체크인이 가능하단다. 카페 겸 식당에서 죽치면 되니 문제없다. 따뜻하게 피워놓은 벽난로도 있겠다, 세르베차와 커피도 있겠다, 무엇보다도 걷지 않는다는 사실이 행복하다. 오랜만에 스마트폰으로 국내 뉴스도 검색하고, 지인들과 카톡도 하고 음악도 듣는다. 오후 3시쯤 아내가 도착, 저녁식사가 뜻밖에 맛있다.
사아군 - 엘부르고 라네로 11월 8일.
벼룩이도 낯짝이 있지, 설마 오늘 또 택시를 탈 수는 없다. 무엇보다도 긴 긴 하루를 아내만 기다릴 수는 없다. 오늘은 걷기로 했다. 오늘은 비도 없고 바람도 불지 않는다. 계절도 춥지도 덥지도 않은, 그야말로 걷기에 참 좋은 날이다. 걸을 때마다 시큰시큰 기분 나쁜 통증이 올라오지만 뭐 주저앉을 정도는 아니다. 순례자가 거의 보이지 않는 한적한 순례길을 아내와 걷는다.
그런데 눈에 띄는 게 있다. 이 지역은 집들이 돌이 아니라 흙으로 지어져있다. 흙에 지푸라기를 썰어 바른 벽들이 마치 한국의 옛날 초가집 벽과 닮았다. 어쩌면 이 부근에는 돌이 귀했나보다. 괜히 정겹다. 눈길을 끄는 게 또 있다. 마치 옹기 가마를 이어 놓은 듯, 야트막한 언덕에 굴뚝들이 삐죽이 올라와 있다. 궁금해서 다가가보니 옛날 주민들이 살던 움집이란다. 지금은 와인 저장고로 쓰인다고 한다.
겨우 예약한 숙소에 도착했다. 오늘 숙소는 공립이되 가격이 정해져 있지 않은 곳이다. 알아서 기부금을 내면 된단다. 일단 숙소에 들어갔다. 작은 2층 건물인데 관리인으로 보이는 남자 한명이 앉아 있을 뿐, 순례자는 아무도 안 보인다. 약간 미심쩍은 기분이 들지만 그냥 봐줄만 하고 무엇보다도 활활 타고 있는 난롯불이 나를 유혹한다. 기부금은 알아서 내란다. 둘이니까 10유로씩 쳐서 20유로를 냈다. 관리인이 받는다. 자기가 대신 기부금 통에 넣겠단다. 상관없다. 그런데 관리인을 따라 2층 숙소에 올라가서는 입을 다물 수가 없다. 웬만큼 허름한 숙소에도 적응이 됐다고 여겼는데 여긴 그 이상이다. 서까래가 노출된 창고, 마루가 삐걱거리고 오래된 창문은 곧 떨어질 것 같다. 침대는 낡고 더러운 데다가 매트리스는 지푸라기를 넣었는지, 딱딱하고 좁다. 당연히 난방은 없다.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조금 전에 한국 음식을 판다는 조그마한 입간판이 보였기에 거길 찾았다. 한국 사람은 아니고 스페인 여자 둘이 운영하는데, 아마도 한국 순례자들이 많다보니 중국식품점에서 비슷한 재료를 사다가 파는 듯싶다. 오랜만에 컵라면과 순례자 메뉴를 시켜 맛있게 먹고 물어보니 숙소도 겸한단다. 방을 보여 달랬다. 새로 리모델링을 했는지 아주 깔끔하고 따뜻하다. 짧은 순간 아내와 눈빛을 교환한다. 그래, 20유로는 기부한 걸로 치고 여기서 자자.
배낭을 가지러 앞의 공립 알베르게에 돌아와서는 사정을 설명했다. 관리인은 먼저 돈 얘기를 꺼낸다. 이미 기부금 통에 넣었다, 돌려 줄 수 없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돈을 돌려받을 생각이 없다, 계획이 바뀌어서 미안하다. 그런데 배낭을 지고 내려오는 나를 관리인이 부른다. 다가가니 아무소리 없이 20유로를 내 민다. 그런데 그 표정이 너무 재미있다. 사실 관리인은 약간의 아둔함과 불량기가 묘하게 섞인 얼굴이다. 그런데 그런 친구에게서 악당이 갑자기 회개해서 착한 일을 하려는, 그런 묘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아니, 난 됐다. 이건 카톨릭에 기부한 걸로 쳐라, 그런데 한 번 착한 어린이가 된 관리인은 완고하다. 이럴 땐 못 이기는 척 받아줘야 한다. 결국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20유로를 돌려받았다. 이거 야고보 성인께서 너무 사소한 것까지 신경쓰시는 거 아냐? 아내와 농담을 주고받으며 문을 나섰다.
엘부르고 라네로. - 레온 11월 9일
다시 아내와 헤어졌다. 이번에는 좀 길다. 이틀간이다. 나는 발목이 아프고 아내는 아무렇지도 않다. 나는 순례를 멈추고 싶고 아내는 계속하고 싶다. 나는 레옹을 거쳐 사리아까지 버스를 타고 가서 며칠 쉬자는 입장이고 아내는 순례를 중간에 건너 뛸 수는 없단다. 어쩔 수 없다. 타협안을 찾은 게 이틀간 헤어지는 거다. 서로 짐을 나눈다. 무거운 건 내가 가져가고 가벼운 건 메고 걸을 아내 배낭에 넣고, 그런데 1박2일에 필요한 옷가지며 목욕용품들이 있으니 무작정 줄일 수도 없다.
결혼하고 나서 아내와 헤어진 적이 별로 없다. 회사에서 출장을 가 봐야 2-3일 정도, 기껏 긴 해외출장이라야 2-3주가 최고다. 어쩌다 아내와 떨어져있으면 편지글을 쓰곤 했다. 안부가 궁금하면 전화를 하면 될 테고, 심심해서라면 책을 읽거나 다른 사람들과 어울릴 수도 있을 텐데 그런 것들로 채워지지 않는 아내의 무언가가 있다. 편지글이라고는 해도 아내에게 대화하듯이 쓴다는 거지 편지지에 쓴다는 말도 아니고 편지로 보낸다는 말은 더욱 아니다. 그저 나에게 떠오르는 이런저런 생각들을 글로 풀기에는 아내에게 말하는 듯 쓰는 게 제일 편하기 때문이다. 그만큼 정서적으로 가깝게 밀착돼 있다는 뜻이다.
동그라미 두 개로 부부관계를 그려보라는 문제를 받은 적이 있다. 우리 부부는 둘 다 동그라미가 거의 밀착된 모습을 그렸다. 90% 이상을 겹치고 있는 모습으로. 별로 이상적인 부부관계가 아니란다. 좀 더 떨어져서 각자의 부분과 공유된 부분이 조화를 이루는 게 좋단다. 그런 우리 부부가 이틀이나 헤어지기로 한 것은 나름 비장한 결정이었다.
아내는 순례길로, 나는 마을에서 2km쯤 떨어진 기차역을 향해 숙소를 나섰다. 무거운 짐을 넣은 내 배낭을 둘러메고 절뚝거리며 걷는다. 그런데 기차역이라고 도착한 곳이 재미있다. 분명히 기차선로가 지나가고 플랫폼에 나무벤치도 있는 걸로 봐서 기차역인데, 사람 한 명 없는 것은 그렇다 치고 역사에 문조차 굳게 잠겨있다. 손님도 직원도 없는 기차역, 불안감을 누를 수가 없다.
자세히 살펴보니 안내전화번호가 있다. 일단 번호를 눌렀다. 스페인어 단어 몇 개에 영어단어를 섞어가며 통화를 했다. 기차는 온단다. 아무도 없는데 기차표는 어쩌냐고 물으니 기차에서 사면된단다. 순간 어릴 적에 본 영화, ‘지붕위의 바이올린’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텅 빈 벌판의 간이역에서 깃발을 올려놓고 기다리면 기차가 그 깃발을 놓고 정차하는 장면. 이거 깃발이라도 올려야하나, 내가 있는 걸 미쳐 못보고 그냥 지나치면 어쩌나 불안해하는데 웬 아저씨가 나를 부른다. 뭔가 싶어 달려가니 택시 운전수다. 대뜸 택시를 타란다. 이미 바욘에서 경험이 있으니 짐작이 가긴 하지만,확인은 해야겠다 싶어서 택시비가 얼마냐고 물으니 웃으면서 그냥 타란다.
스페인은 참 좋은 나라다. 발목도 아프고 마음도 지친 순례자를 엘 부르고 라네로에서 레온 역까지, 40분 쯤이나 달려서 공짜로 데려다주었다. 걸을 때엔 밉상이던 고속도로가 이제 보니 하늘과 들판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길이다. 택시 속에서 한 가지 다짐을 했다. 만일 스페인 사람이 한국을 찾아온다면, 그리고 내가 사는 보은 쪽으로 걸으러 온다면 우리 집에서 하룻밤 재워주고 맛있는 저녁대접을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