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공항에서 에어프랑스로 파리 도착, 예약해 놓은 게스트하우스에서 3일간 머물며 루브르 박물관과 오르세이 미술관, 파리 시내를 둘러본 나흘간은 그야말로 그렇고 그런 해외여행이었다. 세 번째 파리 방문은 신기하지도 않았고 이미 둘러본 바 있는 루브르 역시 감동은 별로 없었다.
개를 산책시키는 직업이 있나보다. 개들이 일사분란, 군인같다.
나의 무지함과 묘한 반감이 원인 이리라. 도대체 남의 나라 유적들을 통째로, 그것도 망자의 무덤까지 훔쳐다가 버젓이 전시해놓고 자랑하다니, 아무리 약탈을 승리로 기억하는 서양인들이라고는 하지만 영 마음이 편치 않은 것이다. 거리는 지저분했고 치안도 좋지 않아 보였다. 우리나라가 그동안 워낙 깨끗해져서 그리 느꼈을 수도 있고, 어쩌면 십여 년 전, 마지막 파리 출장의 안 좋은 기억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동료들과 밤거리 문화를 맛본다고 객기를 부리며 숙소를 나섰는데, 삐갈 광장의 어느 술집에서 엄청난 바가지를 씌웠고, 돈을 못 내겠다고 버티는 우리 일행을 한 시간쯤 감금하면서 공포 분위기를 만들었던 기억 말이다.
드립 커피에 비친 창문
그래도 몇 가지 기억에 남을 것들은 건졌다. 우선 숙소 부근의 카페에서 맛본 드립 커피. 깡통으로 만든 로스터로 커피도 볶고 내려 마시며 내 커피가 웬만한 커피숍보다 낫다고 큰소리치던 내가 그 커피 맛에 할 말을 잃었다. 씁쓸함에 신맛과 과일 향이 감도는 것 정도는 따라 하겠는데, 부드럽고 풍성한 느낌은 대체 뭐란 말인가. 로스팅인지 그라인더인지 드리퍼인지, 아니면 원두인지는 알아내지 못했지만 뭔가 특별한 비법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음, 커피 맛은 역시 파리군. 고개를 숙일 수밖에.
쎄느강 강변에 설치된 커다란 조각품들, 건물 벽을 캔버스 삼아 그린 그림들도 기억에 남는다. 건물 벽에 커다란 계단을 그려 놓아서 마치 막힌 벽이 아니라 언덕으로 오르는 통로인 듯 개방감을 준 벽화는 퐁피두센터 부근에서 봤다. 역시 미술의 도시인가 싶다.
그러나 진짜 드라마틱한 경험은 따로 있다. 파리의 택시에다가 스마트폰을 두고 내린 것이다. 아는 사람은 안다. 파리의 택시에 스마트폰을 두고 내렸다는 것이 무얼 의미하는지를. 우선 콜택시도 아니고 카카오 택시도 아니니 택시 번호나 회사를 알 수 없다. 설혹 기억하고 있더라도 말이 안 통하니 어디에 연락하기가 막막하다. 대부분 구형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파리에서 한국 사람들의 최신 폰은 제법 값이 나가는 귀중품이라서 훔쳐 가기도 한다는데, 기사와 연락이 된다 해도 순순히 돌려줄 가능성은 없다. 결론은 포기해야 한다는 것. 여행 시작부터 이게 웬 날벼락이냐? 멍청한 놈, 정신을 어디다 놓고 다니기에 그걸 두고 내렸단 말인가?
그런데 핑계 없는 무덤 없다고 잃어버린 나에게도 약간의 핑곗거리는 있다. 비가 조금씩 내리는 날, 택시를 잡아타고는 아내에게 내 짧은 불어 실력을 과시할 겸, 프랑스어로 숙소가 있는 하뽕가 몇 번지로 가달라고 주문했다. 그런데 걸어서 15분이면 도착할 짧은 거리를 20분 가까이 택시로 가는 것이 아닌가? 불안함을 눌러 참다가 드디어 다시 물었다. 우리가 하뽕가로 가는 거 맞냐? 그랬더니 흑인 혼혈로 보이는 운전수가 하뽕가가 아니라 자뽕가로 가는 중이란다. 아니 웬 자 뽕이냐, 하 뽕이라고 했지. 난 자 뽕이라는 동네는 알지도 못한다. 하 뽕이냐 자 뽕이냐를 두고 티격태격하는데 아내는 아무래도 나를 의심하는 눈치다. 억울하긴 하지만 객관적으로 그리 볼만도 하다.
어쨌거나 숙소인 하뽕가에 도착했는데 기사가 택시요금으로 40유로를 내란다. 이게 웬 말도 안 되는 소리냐, 나는 25유로만 주겠다. 바로 왔으면 20유로도 안 나올 텐데 그 이상은 못 준다. 단호하게 문을 닫고 내렸는데 아뿔싸, 뒷좌석에 내 스마트폰을 두고 내린 것이다.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한다더니, 순간의 욱함 때문에 큰 낭패를 보게 생겼다.
이럴 때 아내의 침착함과 날카로운 촉이 필요하다. 이리저리 천방지축 저지르는 나를 평생 뒤에서 받쳐 준 아내가 이번에도 방법을 제시한다. 내 번호로 계속 전화를 걸어라. 이미 몇 번 전화 걸었는데 안 받는 걸 어쩌냐고 하면서도 별다른 해법이 없다. 포기하는 심정으로 몇 번 더 걸었더니 전화가 연결된다.
우선 급한 대로 서툰 영어로 내 스마트폰 어쩌고 하는데 저쪽에서는 프랑스어가 튀어나온다. 짧은 프랑스어로 당신 주변에 영어 하는 사람 없냐고 물으니 거꾸로 당신 주변에 프랑스어 하는 사람 없냐고 묻는다. 요행히 이 말을 알아들었다. 순간 숙소 앞의 카페 주인 생각이 번뜩 떠오른다. 포르투갈에서 왔다는 잘생긴 카페 주인은 점잖고 품위가 느껴지는 데다가 영어도 잘한다. 파리에서 장사하고 있으니 프랑스어야 당연한 일. 어제저녁에 술 한 잔을 마시며 몇 마디 나눴으니 내가 아는 파리지엥 중에 제일 가까운 사이다. ‘잠시만 기다려요 (Attendez, s’il vous plait)‘ 30년 전에 배운 프랑스어를 머리에서 쥐어짜서 한 마디 던지고는 계단을 바람처럼 뛰어 내려갔다.
결국은 단돈 50유로에 내 스마트폰을 무사히 찾았다. 이곳까지 운행하는 택시비로 35유로를 요구한 것에 조금 더 보태줘서 말이다. 오, 이런 기적이. 아내에게 감사하고 택시기사에게 미안하다. 잘못은 오직 한 사람, 나뿐이다. 하뽕이냐 자뽕이냐 따지지 말고 그냥 40유로를 줬으면 이런 일이 없을 것을 그 착한 택시기사에게 화를 내다니, 아무리 봐도 동방예의지국에서 온 순례자가 할 행동은 아니었다. 설혹 그가 실수했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