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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택시의 행운

로드 에세이

by 심웅섭

4.공짜 택시의 행운

파리-생 장 피에드 뽀르. 10월 18일,


새벽에 숙소에서 나와 빵과 커피로 아침을 때우고는 바욘(Bayonne)으로 가는 TGV를 탔다. 바욘은 프랑스 길의 출발지인 생 장 피에드 뽀르(St Jean Pied de Port)에서 가까운 기차역이 있는 곳으로, 파리에서 약 네 시간이 걸리는 대서양 부근의 작은 도시다.


자다 깨기를 반복하다 바욘에 내려서 생 장으로 가는 기차표를 사려고 역무원에게 물어보니 기차가 없단다. 뭐라 뭐라 하는데 못 알아 들었고, 어쨌든 오늘은 기차가 없단다. 그럼 버스는 있냐고 물으니 저쪽에서 기다려 보란다. 몇 시에 온다는 말도 없고, 확실히 온다는 말도 아니고 그냥 기다리란다. 어쩐지, 여행안내서에 바욘에서 생 장으로 가는 기차가 계절에 따라 불확실하니 미리 알아 봐야한다는 말이 마음에 걸리더니, 시작도하기 전에 난관이로구나.



불안해서 역을 떠나지 못하고 광장 끝 노천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는 조금 전 역무원에게 다시 물었다. 대체 버스는 언제 오냐? 그런데 역무원의 태도가 조금 이상했다. 약간의 음모가 숨겨진 듯, 친절과 장난기가 살짝 섞인 표정으로 조금만 기다리면 좋은 방법이 생길 거란다. 특별히 너한테 가르쳐준다는 말과 함께. 뭐 특별히 나한테 친절할 이유가 전혀 없지만 기다릴 수밖에 없다.


잠시 후 역 광장 한 편으로 우리처럼 배낭을 멘 순례자들이 십여 명 모여들고 역무원이 우리를 부른다. 냉큼 달려가 보니 서너 명씩 조를 짜서 택시를 태워준단다. 얼마냐고 물으니 공짜란다. 헉, 이게 웬 기적이란 말인가? 내가 무슨 국빈도 아니고, 프랑스가 이렇게 친절한 나라란 말인가, 외국 여행자들에게 공짜로 택시를 태워주다니.


얼떨결에 택시에 올랐다. 새벽부터 숙소를 나서고 긴 열차 여행에 피곤할 만도 한데, 공짜 택시로 달리는 길은 아름답고 행복하기만 했다. 음, 이건 기적임에 틀림이 없다. 게다가 멋진 여행의 징조임이 분명하다. 공짜 택시로 대충 4-50분을 달려서 생 장에 도착했다.


독일 순례자 조지를 처음 만난 것이 바로 이날, 택시를 타면서부터다. 앞에서 말했듯이 역무원이 부르는 대로 모여 서서 눈치를 보고 있는데 웬 까무잡잡하고 자그마한 외국인이 다가온다. 반백의 짧은 수염이 얼굴을 감싸고 있고 무술이라도 하는지 온몸에 균형 잡힌 근육이 적당한데 눈빛은 선하다. 단촐한 배낭을 지고 있는 모습이 누가 봐도 순례자인데 정작 내 눈을 끈 것은 그 배낭에 비스듬히 찔러 넣은 기다란 나무 지팡이였다. 제법 사연이 있을 법한 나무 지팡이를 어깨에서 반대편 정강이까지 대각선으로 매단 모습이 마치 전장으로 나가는 장수가 칼을 차고 있는 듯, 순간 스타워즈의 제다이가 떠올랐다. 피부색도 몸집도 다른데 분위기가 비슷했나 보다. 내 쪽으로 다가오는데 나도 모르게 말을 걸었다. 독일에서 왔고 세 번째 순례길이며 일주일만 걷고 돌아갈 예정이란다.


나는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았다. 도대체 왜 택시가 공짜냐? 조지는 웃으면서 비수기라서 승객이 몇 명 안 되니, 기차회사에서 기차 대신 택시를 태워주는 거란다. 순간, 기적의 실체가 드러났다. 손님이 없다고 정해진 노선을 운행하지 않을 수도 없고, 손님 몇 명 태우느라 큰 기차를 운행하느니 차라리 택시 몇 대 임대하는 게 훨씬 더 경제적일 것이다. 그래도 우리 부부에겐 얼떨결에 생긴 행운인 것이 분명하다. 기차표를 아예 사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어쨌거나 기차표를 미리 산 조지와 무임승차한 우리 부부는 같은 택시를 타고 생 장까지 왔고 각자 헤어졌다.

생 장 피에드 뽀르 숙소부근


생 장에서 먼저 해야 할 일은 순례자협회 사무실에서 등록하고 순례자여권을 발급받는 것. 출입국에 필요한 진짜 여권은 아니지만 이게 있어야 가는 곳마다 스탬프를 찍고 도착지인 산티아고에서 완주증을 받을 수 있다. 여권을 받고나니 약간의 기부를 할 수 있단다. 공짜 택시도 탔겠다, 통 크게 20유로를 쾌척했다.



등록을 마치고 협회에서 추천하는 숙소에 들었다. 숙소는 오래됐지만 단아한 2층 목조 주택인데, 저녁과 아침 식사에 내일 점심 도시락이 포함된단다. 가격은 일인 당 35유로. 숙소에 들어서니 약간 히피풍이 느껴지는 젊은 남자가 나와서는 내 배낭을 보고 놀란다. 이미 말했듯이 80 리터 배낭에 배가 터지도록 짐을 구겨 넣어서, 멜라치면 어딘가에 올려놓고 꿇어앉아 메고 무릎을 펴야 할 정도니 놀랄 만도 하다. 너 이거 메고 걸을 예정이야? 그렇다고 했더니 너무 무거우니 짐을 줄여야 한단다. 이미 다른 순례자들의 가벼운 짐을 흘끗흘끗 살펴본 다음이라 저절로 수긍이 갔다. 에휴, 한국에서 여기까지 힘들게 지고 왔는데. 그러니 어쩌랴, 남은 거리는 오롯이 800km. 지금이라도 빨리 판단하지 않으면 중간에 뻗어버릴 수도 있는 것을.


그런데 무얼 버릴까? 우선 도톰한 옷 몇 벌을 골라냈다. 다음은 침낭. 잠은 따뜻하게 자야한다면서 영하 20도짜리 어마어마한 히말라야 침낭을 가지고 왔는데, 와 보니 그리 춥지도 않고 일단 너무 무겁다. 새로 사기로 했다. 시골 동네에서 사면 틀림없이 비쌀 텐데, 걱정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얇고 가벼운 거위털 침낭이 200유로 남짓, 인조 솜털이 들어가 있는 약간 무거운 침낭이 80유로 정도. 두 개에 한국 돈으로 30만 원 남짓을 주고 샀다. 음, 한국에서 미리 인터넷으로 샀으면 반값일 텐데, 속은 쓰리지만 지금으로서는 이게 최선이다. 거기에 다음날 우체국에서 한국으로 짐을 보내는데 20만 원 정도가 들었으니 참으로 사연 많은 침낭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실제로 순례길을 걸어보니 필요 없는 것들이 더 있었다. 매트리스를 감쌀 비닐봉투와 기피제는 빈대가 없으니 필요 없었고 비상약품은 웬만한 중소도시에 약국이 있으니 그야말로 최소한의 진통제나 구급약이면 충분했다. 비싼 돈 주고 산 통역기는 꺼내고 켜기 번거롭고 와이파이가 있어야 작동되니 쓰지 못했고 여행안내서는 워낙에 표지판이 잘 돼 있고 스마트폰 앱이 있으니 필요 없었다.



오만과 무지의 댓가는 혹독했다. 우리 부부는 두 번이나 필요 없는 짐을 한국으로 비싼 돈 내고 부쳐야 했고 남은 짐마저도 매일 5유로씩 내고 동키(숙소에서 다음 숙소로 차로 옮겨주는 유료 서비스)로 보내야 했다.

생 장에서 묵은 숙소

저녁 식사는 와인을 곁들인 가든파티란다. 사실은 파티라기보다 숙소에 머무는 손님들이 모두 모여서 식사와 가벼운 자기소개를 하는 자리다. 내려가 보니 캐나다에서 왔다는 단체 아줌마들이 7-8명, 그 외에 부부로 보이는 노인과 몇 명이 앉아있다. 집주인은 웃음 섞은 빠른 영어로 뭐라 뭐라 떠들면서 분위기를 띄우는데, 그 영어가 마치 오래된 라디오가 지지직거리듯이 들렸다 안 들리기를 반복한다. 내 귀에 닿기는 하는데 머릿속에서 미처 통역해대지 못하는 것이다. 아차, 이거 도망갈 수도 없고 벙어리 흉내를 낼 수도 없고 큰일이 났구나.


어쩌랴, 두근거리는 가슴을 쓸어내리고 긴장을 풀고, 귀에 들어오는 대로 가만히 들어보니 또 못들을 얘기도 아니다. 어차피 엄청나게 심오한 이야기도 아니고, 중간 중간 양념처럼 넣는 조크야 못 알아들어도 대세에 지장은 없고, 서서히 울렁증을 가라앉히고 내 차례가 되어 자기소개를 했고 아내의 한국말 소개를 통역까지 해냈다. 30여 년 전, 문법과 읽기 위주로 배운 영어 실력이야 뻔할 텐데, 뜻밖에 사람들이 잘 들어주고 즐거워하고 공감해주었다. 캐나다에서 온 선생님이라는 아줌마는 나에게 영어가 훌륭하다고, 어떻게 배웠냐고 물어보기까지 한다.


내 영어가 훌륭한지는 모르겠으나 나보다 영어 못하는 사람이 많은 것이 분명하다. 오스트리아에서 왔다는 노부부는 영어가 안돼서 쩔쩔매다 아예 입을 닫고 있다.


“아니, 왜 그러세요. 영어는 못하지만 독일어는 잘하시잖아요. 그리고 여긴 영국도 미국도 아닌 프랑스예요. 당신 말고도 영어 못하는 사람 많은데, 괜히 기죽지 마세요“


물론 내 마음속으로 한 말이다. 덕분에 내 영어 울렁증은 많이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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