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면서 크게 3번 산을 넘었다. 첫 번째는 첫날 넘은 피레네이고 두 번째 산맥이 바로 오늘 넘는 산이다. 숙소인 소모사가 해발 800 정도, 넘게 될 언덕의 최고봉이 1504m니까 700쯤 고도를 올리는 셈이다. 그러나 산들이 완만해서 산악행군에 익숙한 한국 사람들에게는 산에 오른다는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다.
순례자들이 거의 없다. 오늘 이 구간을 걷는 순례자 전부를 세어보면 열 명 정도가 될까 말 까다. 한적해서 좋을 것 같은데 너무 적으니 외롭다. 혼자서도 잘 놀고 아내와 함께라면 평생이라도 놀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가 보다. 북적거리는 것보다는 혼자서 조용히 노는 걸 좋아한다는 것도 사실은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에서 약간 떨어져서 폼 잡는다는 의미이지 아예 혼자라는 말은 아닌 모양이다.
순례자 한 명을 만났다. 키가 자그마하고 조용해 보이는 중년 남자인데 이탈리아에서 왔고 목수란다. 반가운 마음에 나도 아마추어 목수라고 소개를 했다. 웬만한 목공 공구와 작업실도 있겠다 전문 목수의 지도를 받아 멋진 참죽나무 테이블도 만들었겠다 아마추어 목수라는 표현을 못 쓸 바는 아니지만, 사실은 이탈리아 전문 목수님에게 감히 견줄 수준은 물론 아니다. 무슨 나무를 쓰는지, 어떤 가구들을 만드는지에 대해서 몇 마디 나눴는데 대화가 길게 이어지지 않은 것이 내 짧은 영어 때문만은 아닐 듯싶다.
몇 개의 시골 마을과 철 십자가를 지나고 언덕을 넘으니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멀리 들판과 강들이 펼쳐지고 예쁜 도시도 보인다. 경사가 가파르다. 조심조심 조금 더 내려오니 산허리에 작은 마을, 오늘의 목적지 아세보에 도착했다. 아세보는 돌로 지붕과 길을 포장한 아주 작은 산골마을이다. 숙소는 허름하지만 식사는 나름대로 괜찮다. 생각해보니 내가 스페인 음식에 아주 잘 적응하고 있다. 닭고기 스테이크에 감자튀김, 샐러드와 포도주가 원래부터 내가 먹던 음식인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엘 아세보 –까까 벨로스 11월 14일
알베르게의 기상시간은 거의 정해져 있다. 여러 순례자들이 함께 자지만 새벽부터 깨서 움직이는 사람은 없고 대충 6시 반에서 일곱 시가 기상시간이다. 침구를 정리하고 배낭을 싸 놓고 샤워를 하고 밥을 먹고......, 8시 출발 전에 모든 걸 끝내야 하니 사실 한 시간 반의 시간이 그리 여유 있지도 않다. 바쁘게 출근 준비하는 도시 직장인과 다를 바가 없다.
그런데 바쁘게 채비를 하고 알베르게의 출입문을 열었는데 허걱, 어둠 속에 눈이 내린다. 아니, 스페인도 눈이 오나? 스페인은 한국보다 따뜻하다고 생각했는데 꼭 그렇지도 않은가 보다. 11월 14일이면 한국에서도 첫눈 오기에는 빠른 시기인데, 그럼 스페인이 더 춥다는 말인가? 출발하기 전, 계절에 맞는 옷을 준비하려고 스페인 기후를 검색한 적이 있는데 뭔가 하나로 딱 잡히지를 않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땅덩어리가 넓고 이렇게 변화무쌍하니까 사실 완벽하게 준비하기가 어렵겠구나 싶다. 잠시 기다렸다가 용기를 내어 문을 열고 나섰다.
올해의 첫눈을 스페인에서 만났다. 그것도 겨우 조금 날리는 정도가 아니라 나무와 지붕과 길을 모두 하얗게 뒤덮은 제대로 된 눈을 말이다. 다행히 아세보에서부터는 길이 넓다. 사실 순례자를 위한 오솔길은 따로 있는데 미끄럽고 질퍽거리니까 이걸 피해서 아스팔트 길을 걷는 중이다. 차도 순례자도 걸어 다니는 주민들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
산을 내려오니 넓은 강과 어우러진 멋진 마을이 나타난다. 몰리나 쎄카다. 한눈에 보아도 깔끔하고 유서 깊은 휴양지의 느낌이 난다. 계곡은 마치 설악산이나 지리산의 계곡을 닮았고 숙소와 식당들도 정갈하다. 순례가 아니라면 하루 이틀 머물 수도 있을 것 같다. 까미노를 따라 걷다 보면 오래된 집과 가게들을 지나치게 된다. 그러나 정겹고 단아한 가게들은 대부분 닫혀있다. 시즌이 아니라는 거다.
빵집 하나가 열려있다. 한 눈에도 먹음직스러운 빵들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아내와 눈을 찡끗, 신호를 주고받고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적당히 구워진 바게트와 잡곡 빵들이 눈과 코를 즐겁게 한다. 모두들 내가 좋아하는 빵, 달지 않고 겉바속촉 거친 빵들이다. 가격은 대충 2유로쯤, 두 개를 사서 한 개는 먹고 한 개는 배낭에 넣는다. 스페인 여행을 마치고 제일 아쉬웠던 건 첫째는 와인이었고 둘째가 바로 맛있는 바게트였다. 왜 한국에는 이렇게 맛있고 값싼 바게트가 없을까? 물론 바보 같은 질문이다. 왜 스페인에는 한국처럼 얼큰한 김치찌개가 없을까라고 묻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폰 페레다에 도착했다. 제법 번잡한 도시다. 그런데 비가 억수같이 쏟아진다. 까미노 표시를 놓쳤다. 구글 맵을 켜려고 스마트폰을 열어도 내 위치가 안 잡힌다. 비구름대가 워낙 두꺼우면 그럴 수도 있겠지. 비가 너무 많이 오니 지나가는 사람에게 길을 물을 수도 없다. 카페에 들러 몸도 말리고 점심도 먹고 시간을 보내도 비가 그치지 않는다. 아내에게 제안했다.
“여보, 비가 너무 세게 오네, 길도 놓치고.
오후엔 그냥 택시 탈까? “
선선히 그러란다. 야호, 까까 벨로스까지 빗속에 두 시간은 걸어야 할 텐데 공짜로 간다.
예약한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깔끔하고 주방도 큼직한데 순례자는 한국 신혼부부와 달랑 두 팀이다. 신혼여행으로 산티아고 순례를 오다니, 참 대단한 부부다.
1990년 3월 31일, 우리 부부는 결혼을 했다. 첫 만남에서 결혼을 약속하고 두 달이 걸린 것은 아내의 언니, 처형의 결혼식이 2월 24일에 예정돼 있었기 때문이다. 합동결혼식을 하느니 한 달 후로 날짜를 따로 잡은 것이다. 결혼식이 끝나고 우리 부부는 평상복에 배낭을 둘러메고 완행열차를 타러 충주역으로 갔다. 조치원을 거쳐 부산에서 하룻밤 자고 제주도까지, 무전여행 같은 신혼여행을 떠난 것이다. 당연히 예약 같은 건 없었다. 내가 알고 있는 가장 낭만적인 여행, 늘 해보고 싶었던 여행을 신혼여행으로 선택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부산에서는 교사로 근무하는 친구를 만났다. 저녁을 먹고 자취방에서 소주를 마시고, 밤늦게 호텔방을 찾으니 방이 없단다. 내일이 군대 입대하는 날이라서 꽉 찼단다. 친구 자취방에서 잘까, 그래도 신혼 첫날밤이니 그럴 수는 없지 하고 찾은 것이 여인숙이다. 그 역시 내가 생각하는 최고의 낭만이었을까? 나는 별생각 없이 잘 잤는데 아내는 바퀴벌레 나올까 봐 불안했다고 아직까지 말한다.
다음날 아리랑 호를 타고 제주도로 갔고 제주도에서도 택시가 아니라 버스를 타거나 걸으면서 신혼여행을 했다. 성산 일출봉, 이름 모를 오름, 비를 맞으며 배낭을 메고 걷던 서귀포 부근 어디쯤......, 나와 평생을 함께 할 짝꿍이 생겼다는 건 아무리 봐도 마법이다. 길도 같이 걷고 밥도 같이 먹고 잠도 같이 자고, 자고 나서 눈을 떠도 내 옆에 아내가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좀 오버했나 싶다. 남들 눈치 보지 않고 자기 식대로 살겠다는 주체사상(?)은 그렇다 치더라도 꼭 여인숙에 시내버스로 다녀야 하느냐는 거다. 그러나 후회한다는 말은 아니다. 만일 내가 지금 다시 신혼여행을 간다 해도 준비된 신혼부부용 패키지와 호텔 숙박을 선택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저 부부처럼 이곳, 산티아고 순례길에 있지 않을까?
까까 벨로스 – 베가 데 발 카라쎄 11월 15일
어제 택시를 탄 덕분에 일찍 도착해서 푹 쉬었고, 옷들도 세탁기에 건조해서 보송보송 챙겨 넣었고, 발목도 씽씽해졌으니 이제 못 갈 곳이 없다. 그런데 약간의 변수가 떠올랐다. 신혼부부의 정보에 의하면 지금 우리가 향하는 발 카라쎄에서 오쎄 브리오까지 가려면 커다란 산을 넘어야 하는데 이곳이 폭설로 두절됐단다. 눈이 무릎까지 빠지고 버스도 못 다니고 체인을 장착한 차들만 겨우 넘는단다. 젊은 부부도 어찌할지 몰라서 고민 중이란다. 까짓 거 고민은 산 밑에 가서 하기로 하고 출발했다.
마을을 벗어나고 큰 계곡 사이로 난 찻길을 따라 순례를 계속한다. 다행히 지나는 차는 거의 없다. 오늘도 비가 제법 온다. 높은 산 위에서는 눈이 내리겠지. 빗속을 걷다 보니 조그만 순례자 둘이 앞서간다. 따라잡고 보니 한국에서 온 남자 초등학생이다. 체험학습을 받아서 태권도 선생님과 함께 왔고 선생님은 앞서서 걷는 중이란다. 내가 산티아고에서 만난 최연소 순례자다. 대견하고도 부럽다.
조그만 산 밑 마을, 발 카라쎄에 도착했다. 공립 알베르게에 도착해보니 문은 열려있는데 사람이 없다. 나중에 올 테니 알아서 침대를 골라서 자라는 안내문이 쓰여 있다. 방에 들어가 보니 이게 웬일, 한국 젊은 순례자들만 한 방 가득이다. 대부분 아는 얼굴들, 밥을 나눠먹었거나 최소한 인사라도 나눈 사이들이다. 젊은이들 입장에서 노부부가 끼는 게 그리 달갑지 않을 수도 있으려나 싶지만 어쩔 수가 없다. 방도 좁고 침대도 낡았는데 한국 사람들끼리 다닥다닥 붙어 있으니 아늑한 느낌이다. 오랜만에 한국말로 수다를 떨다가 편안하게 잠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