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은 사라졌는지 모르지만, 내가 학생이던 70 년대와 군인이던 80년대 초에는 단체기합이 흔했다. 초등학교 때는 ‘눈감고 손들어’나 ‘엎드려 뻗쳐’ 정도였지만 학년이 올라가고 군대에 입대하면서 종류가 다양해지고 강도도 높아졌다. ‘팔굽혀 펴기’ (일명 푸시업), 오리걸음, 낮은 포복, 원산폭격 정도는 보통이고 침상위에 수류탄, 김밥말이, 한강철교 등등 다양한 기합들도 있었다.
그중에서 가장 요상한 단체기합은 이등병으로 통신학교에서 후반기 교육을 받던 81년 여름에 맛본 녀석이다. 그날은 일요일이었다. 내무반의 모포와 매트리스를 모두 꺼내어 일광욕을 시켰는데, 그만 매트리스 한 장이 사라져버렸다. 점호시간에 그걸 발견한 내무반장은 기상천외한 명령을 내렸다. “전원 완전군장으로 막사 앞에 집합. 단 방독면을 착용하고 알철모에 판초우의, 한쪽 발은 영내화 한쪽 발은 전투화를 신는다. 실시” 여기서 군대에 가보지 않은 분을 위해서 약간의 통역이 필요하다. 알철모는 화이바(머리에 쓰고 그 위에 철모를 얹는 속모자) 없이 철모만 쓰라는 말이다. 이러면 철모는 머리에서 덜렁거리다가 흘러내려 눈을 가리거나 잘못하면 떨어져서 사정없이 땅에 나뒹굴게 된다. 한 손으로 꼭 움켜잡기 전에는 말이다. 판초우의는 비닐로 만든 두꺼운 비옷이다. 맑은 여름날에 입기에는 대단히 부적절하다. 영내화는 실내에서 신는 고무신이고 전투화는 흔히 워커라고 부르는 목이 긴 가죽장화다. 좌, 우가 높이와 무게가 다른 짝짝이 신발이라는 뜻이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해괴한 주문에 복장을 갖추느라 내무반은 그야말로 북새통이 되었고, 달밤에 막사 앞에 도열한 우리는 서로의 꼴이 우스워 더러 킥킥대기도 했나 보다. 그러나 뒤이어 내려진 단체기합은 전혀 우습지가 않았다. 막사를 중심으로 줄을 맞추어 뛰는 건데, 이게 만만치가 않다. 우선 왼손으로는 철모를 잡고 오른손으로는 어깨에 멘 총을 잡는다. 거기에 한쪽 발은 높고 다른 발은 낮으니 뛸 때마다 기우뚱거린다. 초여름에 판초우의를 입었으니 그야말로 찜통인데, 방독면까지 썼으니 숨은 가쁘고 입김에 시야까지 뿌옇다. 먼 코스를 뛰면 좀 나으련만 막사를 뱅글뱅글 돌자니 나중에는 멀미가 날 정도다. 그렇게 얼마나 뛰었을까, 내무반장은 뜀박질을 멈춰 세우고는 짧고 단호하게 말했다. “내일 점호시간에 다시 세어보겠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 없었다. 오늘 기합으로 죄가 사해진 것이 아니라, 내일도 모레도 계속된다는 말이었다. 효과는 강력했다. 다음날 점호시간까지 매트리스가 요술같이 제자리로 돌아왔으니 말이다. (심지어 예비로 하나 더 쟁여놓는 기적이 생겼다)
그런데 재미있는 일이 있다. 이렇게 짧고 강력한 단체기합을 받고 나니 모두의 마음이 하나로 모이는, 일종의 동지애가 강해진다는 거다. 누가 잘못했나를 따질 것도 없이 함께 힘을 모아서 그 고통을 끝내야 한다는 걸 절감했다는 말이다. 그 후로도 여러 종류의 단체기합을 받았는데 늘 비슷한 느낌이 들곤했다. 땀을 뻘뻘 흘려가며 땅에 구르다가 문득 옆의 동료와 주고받는 짧은 눈 맞춤, 고통을 모두 함께 받고 있다는 것, 언젠가는 끝나리라는 것, 우리의 젊은 날을 뜨겁게 보내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고통은 어느 순간 쾌감이 되기도 했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폭우가 찾아왔다. 100년 만이니 200년 만이니 하는 말은 현실감이 없지만, 시간당 50mm니 100mm니 하는 수치는 두렵다. 그야말로 양동이로 쏟아붓는 비에 밤잠을 설치곤 했다. 다행히 폭우는 지나갔는데 이번에는 폭염이 기승이다. 연일 35도에 육박하는 찜통 무더위에 숨이 턱턱 막힌다. 그런데 이런 날씨를 바라보며 자꾸만 ‘단체기합’이라는 단어가 떠 오른다. 문명과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마구 더럽혀진 지구가 참다못해 내리는 벌이란 말이다. 그러나 이번 단체기합은 매트리스 때와는 느낌이 좀 다르다. 마음을 모아서 해결하자는 동지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아니, 해결해야 할 문제라는 의식조차 부족하다. 고통이 계속되고 더 많아질 것 같은 불안감이 드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