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대통령 선거에서 우리는 아주 번듯한 대통령을 뽑았다. 명문 중의 명문이라는 서울 법대 출신의 검사인 데다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는 소신도 믿음직했다. 쌈박질만 해대는 기존 정치인이 아니라는 점도 참신했고 보수정당의 후보라는 점이 마음 편했다. 정책은 어차피 고만고만하니 잘 모르겠고, TV 토론회를 보니 좀 의심이 가긴 했지만 말보다는 행동파거니 믿고 투표했다. 그런데 뽑고 보니 총체적 무능과 아내 비리, 그리고 어이없는 계엄령으로 판단력마저 의심되는 사람이었다. 결과적으로 잘못 뽑은 건 맞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요즘 이런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열 길 우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댔는데, 점쟁이도 아니고 미래를 어찌 알고 뽑는단 말인가? 백번 이해되는 말이다. 그래도 우리는 문제를 찾아내야 한다. 그냥 넘어갔다가는 자칫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겨우 8년 만에 다시 맞는 정치 혼란에서 이번에도 제대로 된 교훈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몇 년 후 똑같은 사태가 일어나지 않으리라고 누가 단언할 수 있겠는가 말이다. 그래서 전혀 문제가 없어 보이는 지난 3년간의 과정을 꼼꼼히 살펴볼까 한다.
제일 먼저 떠오르는 건 사람을 고르는 방식이 잘못되었을 가능성이다. 얼굴이 잘생기고 학력이 좋고 믿음직하다고 골라서는 안 되는 거였다. 그 후보가 무슨 정책을 펼칠지에 대해 잘 살펴야 했다. 경제성장을 할 것인가 물가 안정과 복지를 선택할 것인가, 도시를 키울 것인가 농촌을 살릴 것인가, 미국과 일본에 치우칠 것인가 실리외교를 펼칠 것인가를 공약을 통해 꼼꼼히 살펴야 했다. 다소 귀찮고 머리 아프지만, 이 과정을 빼놓을 수는 없다. 사실 선거를 통해 우리가 선택하는 건 후보가 아니라 우리가 나갈 방향, 정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는 후보의 정책을 꼼꼼히 살피기보다 그의 이미지와 일부 집단의 선동에 휩쓸린 점이 없지 않다.
인물보다 후보가 속한 정당을 보는 것은 대통령을 고르는 훨씬 나은 방법이다. 그러나 당의 정책을 봐야지 색깔만 보고 무작정 따라서는 안 된다. 정책은 보지 않고 증오심을 불러일으키는 일부 유튜버들의 색깔 선동에 휩쓸렸다면, 나의 책임이 전혀 없지는 않다.
후보의 과거 행적과 발언, 가족들까지 살피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사적인 영역은 어디까지나 참고사항이다. 우리는 완벽한 인격의 통치자를 뽑아서 모든 걸 위임하고 알아서 다스려주길 바라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참신한 인물도 위험하다. 혁신적인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스타트업이라면 모르지만, 국가라는 거대하고 복잡한 집단을 이끌어달라고 낯선 이에게 위임하는 건 정치가 아니라 도박이다.
그러나 사람만 잘 뽑아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더 넓고 근본적인 대책을 세워야 한다. 우선 계엄령이 문제다. 전시나 사변 등의 국가 위기 상황에 신속하게 대처하는 수단이지만 지금처럼 개인의 잘못된 판단으로 국가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다. 제도의 보완이 필요하다. 한 사람에게 지나치게 많은 결정권을 주는 대통령제도 의심의 대상이다. 알다시피 대통령제는 최선의 정치제도가 아니다. 세계적으로도 미국과 신생독립국가 중 일부가 채택했을 뿐이며, 역사적으로 보면 군주제를 변형한 제도라고 여겨진다. 1789년, 독립전쟁이 막 끝나 혼란한 미국에게는 최선이었지만 교통과 통신, 시민의식이 폭발적으로 발전한 현시대와는 맞지 않는다.
기술발전에 따른 사회변화를 정치에 반영하는 것은 어떨까? 성인 국민 대부분이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고 본인인증 절차도 믿을만한 만큼, 중요한 국가 정책 결정에 실시간 국민투표, 혹은 여론조사를 하는 것이다. 이른바 스마트 민주주의가 되겠다. 물론 스마트폰이 없는 사람도 있겠으나 이는 다양한 대안을 통해서 얼마든지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다. 오히려 최대의 걸림돌은 반드시 투표소에서 종이로 투표를 해야 한다고 믿는 고정관념, 그리고 한번 뽑은 대통령이 잘해주길 빌어야 하는 현재의 제도가 최선의, 혹은 유일한 민주주의라고 믿는 무지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