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중 주부에게 가장 바쁜 시간은 아무래도 아침이다. 정해진 시간 내에 아내와 아들의 출근 준비를 차질 없이 해야 한다. 제일 먼저 전기밥솥에 밥은 있는지 살핀다. 현미밥 코스가 55분이나 걸리기 때문에 혹시라도 밥이 없거나 부족하면 낭패를 볼 수 있다. 반찬 재고를 살피고 샐러드와 하다못해 계란이라도 부쳐야 한다. 아침식사를 가볍게 하는 아들을 위해서는 요구르트, 우유, 과일을 함께 갈아 인도식 음료인 라씨를 준비한다.
아내가 일어나면 가볍고 상쾌하게 아침 인사를 건네고 등과 팔다리를 마사지한다. 전문적으로 마사지를 배운 적은 없지만 침술을 배우면서 경혈 자리도 대충 배웠고 야매 기치료도 해 봤으니 그래도 완전 엉터리는 아닐 것이라는 믿음으로, 가장에 대한 최대한의 존경의 마음을 담아서 정성껏 시술을 한다.
시간에 맞추어 식탁을 세팅하고 식사 중에는 중간중간 물을 끓이거나 커피를 갈아 놓는 센스를 발휘해야 한다. 같이 앉아 넋 놓고 밥을 먹다가는 커피를 내릴 시간이 부족하기 십상이다. 식사가 끝나면 커피와 후식 거리를 내놓고 아내와 아들이 세수를 하는 사이에 설거지를 끝내버린다. 그리고 가능하면 진공청소기로 청소까지, 청소는 두 사람이 출근하고 나서 느긋하게 할 수도 있지만 그냥 바쁘게 후딱 해 치우는 게 나중을 위해서 이득임을 길지 않은 주부생활에서 터득했다. 약간의 잔소리를 양념 삼아 아들 출근을 챙기고 뒤이어 아내까지 나가고 나면 짧고도 달콤한 주부의 시간이 찾아온다. 음악을 틀어 놓고 창 밖을 바라보며 커피를 마신다. 음, 좋다.
30여 년간, 그러니까 우리 가족이 탄생하고 나서 은퇴하기까지 돈을 버는 것은 항상 내 몫이었다. 나는 직장에 나갔고 아이들은 학교에 다녔으며 아내는 그런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집안 살림을 했다. 그런데 절대 바뀔 것 같지 않던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역할이 이제 완전히 바뀌었다. 이른바 바통터치가 이루어진 것이다.
바통 터치, 오랜 세월을 뚫고 뜬금없이 떠오른 단어. 내 기억은 순식간에 50년 전, 함성 가득한 학교 운동장으로 달려간다.
청군과 백군의 피할 수 없는 한 판 승부, 신나는 가을 운동회 중에서도 제일 스릴 넘치는 종목은 단연코 이어 달리기였다. 웃통을 벗어부친 형들의 기마전도 마치 전차부대의 실제 전투처럼 흥미진진했고 내가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한 종목인 줄다리기도 재미있었지만 어느 것도 이어 달리기의 짜릿함을 당해내지는 못했다.
이어 달리기는 그냥 빨리만 뛰면 되는 다른 달리기와는 격이 달랐다. 우선 다른 종목들을 모두 세운 상태에서 넓은 운동장 전체를 다 썼고 모든 학년이 고루 참여했으며 전교생과 선생님들의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이기는 팀에 주는 점수 배분도 커서 이어달리기에 이기는 팀이 그해 운동회의 승자가 될 가능성도 컸다. 어느 한 사람만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팀원 전체가 고루 잘해야 함은 물론이고 누구를 몇 번째 주자로 내보내느냐에 따라서 승패에 영향을 주기도 하니 고도의 작전이 필요한 경기이기도 했다. 거기에 승패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는 요소가 또 하나 있었으니 그게 바로 바통터치다.
달리는 사람은 손에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짧고 가벼운 막대기, 바통을 들고뛰다가 다음 주자에게 이걸 전달해야 한다. 그런데 빠르게 달리면서 다른 사람의 손에 이걸 쥐어 주는 일이 생각만큼 쉬운 것은 아니다. 자칫 바통을 놓치기라도 하는 날이면 멈춰서 그걸 주워야 하니 그건 거의 패배에 가까운 상황, 가능하면 속도를 덜 낮춘 상태에서 이걸 주고받기 위한 갖가지 작전들이 등장한다. 우선 다음 주자는 현재 주자를 뒤로 돌아보며 적당한 속도로 미리 달리기를 시작한다. 현재 주자는 적당히 속도를 늦추면서 다음 주자의 손에 바통을 넘겨야 한다. 가능하면 속도를 덜 줄이면서 정해진 구간 내에서 안전하게 바통을 전달하는 것이 이어 달리기의 핵심 요령인 셈이다.
전교생의 함성 속에서 엎치락뒤치락 선두를 다투며 바람처럼 달려 나가는 선수들, 자칫 바통 터치 과정에서 놓치거나 넘어지기라도 하면 동시에 터져 나오는 안타까운 탄식의 합창, 이제는 졌구나 생각하는 순간 마지막 주자가 갑자기 혜성처럼 뛰어나가 순식간에 역전 드라마를 펼칠 때의 환호성, 50년 전의 기억인데 마치 눈앞에 펼쳐진 듯 어찌 이리 생생할까?
그런 다이내믹한 바통터치가 30년 만에 우리 집에서 이루어지다니. 그런데 나는 제대로 바통을 넘겨주기나 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그냥 달리다가 그만 뛰어도 된다는 사인에 멈춘 것뿐이고 그즈음에 아이들이 다른 속도와 코스로 달리기 시작했다고 생각했다. 바통 터치라는 인식이 없었으니 제대로 했을 리가 없다.
바통터치는 그렇다고 치고, 그럼 달리는 동안은 최선을 다해서 남보다 빨리 달렸을까? 이 또한 자신이 없다. 남을 이기려고 최선을 다한 기억은 없고 그저 제멋에 겨워서 제 페이스대로 달리다 걷기를 반복했을 뿐이다. 남보다 빨리 달렸는가는 관심 없으니 알 수도 없다고 말하고 싶지만, 입사 동기들 중에서 가장 늦게 진급을 했으니 솔직히 할 말은 없다.
그런데 이렇게 아무 생각 없는 부실한 주자 치고 가족들의 응원만은 톡톡히 받았다. 좁고 어두운 셋방에서 아이 둘을 기르며 퇴근한 남편을 위해 맛있는 식탁을 꾸려내 온 아내, 집에 돌아온 아빠를 두 팔 활짝 펴고 달려들어 안기고 반기던 아들 딸, 졸린 눈을 비비며 동화책을 읽어주고 함께 씨름에 소놀이 말놀이에 몸을 비비던 지난 시간들, 생각해보면 모두 나를 100% 믿어주던 가족들의 응원이 아니었던가. 어쩌면 그동안 의기양양 잘 달릴 수 있었던 것은 내가 잘 나서가 아니라 이런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응원이 밑바탕이 된 것은 아닐까. 내 남편 내 아빠가 최선을 다해서 달리고 있다는 믿음으로 지켜보고 응원하고 자랑스러워하다가 내가 멈추자 아무 말 없이 각자 알아서 달리기 시작한 가족들이 대견하고 고맙다.
이제 나는 숨을 고르고 응원석에 앉았다.지금부터 내가 할 일은 목청껏 소리 높여 아이들을 응원하고 믿어주고 자랑스러워하고, 혹시라도 뒤쳐지거나 넘어지면 함께 안타까워하고 위로하고......, 그래서 결국은 아들 딸이 끝까지 잘 달리고 다음 주자에게 성공적으로 바통을 넘기길 바라는 일, 바로 가족들이 그동안 내게 해 왔던 그 일일 것이다. 처음 해 보는 응원이 좀 낯설기는 하지만 조금씩 배우고 적응해 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