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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웅섭 May 20. 2021

1년에 딱 한번, 엄마랑 밥 먹는 날

엄마 제사

아침부터 바쁘다. 제일 먼저 할 일은 바깥 청소, 잔디를 깎다가 비가 오는 바람에 미처 긁어내지를 못했으니 그걸 치우는 게 먼저다. 이어서 데크 청소에 쌓인 쓰레기도 정리하고 화단의 잡초도 좀 뽑아버리고 나니 집이 제법 훤해진 느낌이다. 바깥 청소를 마치면 이번에는 집 안 청소가 기다리고 있다. 거실에 주방과 안방은 물론이고 내친김에 2층까지 진공청소기로 구석구석 말끔하게 청소를 한다. 오늘은 특별히 귀한 손님이 찾아오는 날, 바로 내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는 엄마랑 1년에 딱 한 번 밥을 먹는 날이니 소홀할 수가 없다.


 그런데 청소를 하면서 슬슬 콧노래가 나오려고 한다. 이건 뭔가 싶어서 가만히 나를 들여다보니 엄마라는 말 하나에 행복해하는 거다. 이미 돌아가신 지가 30년이 다 됐는데, 내 나이가 벌써 환갑이 넘었는데, 직접 만나는 것도 아니고 제사일 뿐인데, 그러나 그딴 것 다 필요 없다. 그냥 엄마라는 말 한마디, 나에게도 엄마가 있다는 사실 하나가 나를 행복하게 한다. 


 콧노래의 이유는 또 있다. 우선 시간이 상당히 여유롭다. 식사시간이 늦은 밤이니 무려 15시간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상차림을 두고 눈치를 보거나 잔소리를 들을 일도 전혀 없다. 그냥 하고 싶은 대로, 마음 가는 정도만 준비하면 된다. 상차림의 대상, 손님이 바로 엄마이기 때문이다. 엄마는 절대로 내가 주도한 상차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서운해하실 분이 아니다. 엄마는 어떤 경우에도 나를 믿어주고 편들어주는, 영원한 내 편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이런 믿음을 바탕으로 평소보다 음식을 줄이기로 했다. 떡이며 전이며 동그랑땡은 시장에서 조금씩 사고 나물 몇 가지와 산적에 탕국만 끓이기로 한 것이다. 이유는 아내의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것, 며칠 전부터 감기가 왔는지 쉽게 피곤해하고 식욕마저 뚝 떨어졌다. 그런 상태에서 죽자사자 음식 준비를 할 필요가 없다. 외식과 배달의 시대니 만큼 몇 가지는 시장에서 사자는 게 내 제안이다. 아내의 의견은 약간 다르다. 1년에 딱 한 번인데, 좀 격식 있게 상차림을 하자는 편이다. 나에게는 엄마지만 아내에게는 시어머니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가벼운 논란 끝에 내 의견을 받아들이는 걸 보면 아내도 나이가 들긴 들었나 보다.


 아내는 엄마가 말하는 모습, 걷는 모습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엄마가 중풍에 걸려 거동도 자유롭지 않고 말도 못 하는 상태에서 나와 결혼했다. 사실 엄마는 변호사라는 별명으로 불릴 만큼 말을 재미있고 조리 있게 잘하셨고 쌀 한 가마니를 머리에 일 정도로 힘이 장사셨다. 평생 소화불량이나 그 흔한 감기 한 번 걸린 모습을 보지 못했다. 그러나 그건 내 기억 속의 엄마일 뿐, 아내가 본 엄마는 오른손과 다리를 못 쓰시고 말도 못 하는 데다가 지적인 능력도 떨어지는 장애인이었다. 그런 엄마를 몇 년간이나 집에서 모시느라 고생했는데 아픈 몸으로 식사 준비를 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는 없는 노릇, 엄마에 관한 한 아내는 이미 넘칠 정도로 충분히 했다.


 시장에 들러 장을 봐 와서는 본격적인 준비에 돌입했다. 아내는 무와 쇠고기를 넣어 탕국을 끓이고 나물 몇 가지를 삶아 무친다. 내가 뭐 도울 일이 없냐고 물으니 아내는 아무것도 없단다. 전과 동그랑땡만 빼도 일거리가 크게 줄었단다. 내가 겨우 맡은 일은 텃밭에서 쑥갓을 뜯어오고 밤을 까는 정도다. 오늘의 상차림은 이렇다. 밥과 탕국, 조기찜, 돼지고기 산적, 나물 5가지, 두부구이, 과일로는 수박과 참외, 싱싱한 딸기가 올랐다. 제일 손이 많이 간다는 전과 떡은 전통시장에서 정성껏 골랐다. 조율이시 홍동백서 좌포우혜 어쩌고 하는 격식은 고려하지 않았다. 그릇도 제기가 아니라 평소에 쓰는 접시를 썼고 술은 내가 좋아하는 와인을 올렸다.

 

   제사 순서도 내 맘대로 바꾸어보았다. 먼저 잔에다가 술을 조금 따라서 비우는 강신과 술을 올리고 절하는 헌주 절차는 그대로 따랐지만, 이후로 부복이니 국궁이니 축문이니 하는 옛 법은 모두 버렸다. 대신 식탁에 상을 차리고는 조금 떨어져 앉아서 15분 정도를 기다렸다. 사람도 이 정도의 식사시간은 필요하니 망자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식사가 끝나고는 물을 올리고 술을 첨잔하고 다시 3-4분 정도의 시간을 기다리고는 제사를 마쳤다. 향은 피웠지만 지방을 써 붙이지 않았다. 격식을 기억해내거나 따르려고 하지 않고 엄마와 아버지에 대한 좋은 기억을 되살리고 감사하는 마음을 떠 올렸다. 그동안 제사상만 차리고는 뒤에서 기다리다가 겨우 절 한번 허락받던 아내도 이번에는 처음부터 옆에 서서 같이 절을 하고 잔을 올렸다. 거기에 또 하나 새로운 제사 기법이 등장했으니 그게 비대면 제사다. 일본에서 직장을 다니는 딸이 페이스 톡으로 참석한 것이다. 제사상과 우리 부부가 훤히 보이는 위치에 스마트폰을 놓고 중계방송을 했고 딸은 그걸 조용히 지켜보는 것으로 참석을 대신했다.


 격식 따지는 옛날 어른들이 본다면 혀를 끌끌 찰 상차림과 제사법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전통이, 다시 말해서 과거가 현재와 미래를 지배할 수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어차피 시대에 따라서 음식문화도 바뀌게 마련이니 상차림과 형식이 바뀌는 것은 당연한 일, 그 시대에 구하기 쉬운 재료로 맛있는 음식을 정성껏 준비하면 된다. 따지고 보면 우리가 전통 제사음식과 예법이라고 알고 있는 것도 몇천 년을 전해 내려온 고정불변이 아니라 불과 100여 년 전쯤에 고정된 음식과 예법일 것이다. 


 나에게 제사는 아직도 내 맘속에 살아 있는 엄마와 일 년에 한 번 같이하는 식사 자리다. 

시대에 따라 새로운 요리를 대접한다는 의미로 요즘 음식을 정성껏 마련하고 외식도 활용할 생각이다. 아예 엄마랑 같이 앉아서 식사하거나 향 대신 아름다운 음악을 듣는 방법 등 새로운 방법도 시도해 볼 생각이다. 자식들의 참여를 강요할 생각도 없다. 오늘처럼 비대면으로라도 함께 한다면 고마울 뿐이다. 내가 전통을 내 나름대로 해석했듯이 내 자식들 또한 그들 방식으로 받아들일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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