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예순둘에 나도 자서전을 써 보기로 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나이를 먼저 말하기는 했으나 꼭 나이 때문에 쓰는 것도 아니다. 웬만하면 8-90까지 사는 세상이니 인생을 정리할 나이는 아직 아니고, 1년 전에 환갑을 지났지만 내가 무슨 음양오행 육십갑자 따지는 역술가도 아니니 이 또한 의미가 없다. 굳이 이유를 대자면 시간이 많다는 거다.
다니던 직장에서 정년퇴직을 하고 은퇴 백수가 된 지 이제 2년 반, 별일 없이 시간 보내는데 슬슬 적응이 될 만도 한데 아직 잘 안된다. 둘레길을 걷든 캠핑을 가든 뭔가 새롭고 역동적인 일을 가끔씩 해 줘야 심심하지 않다. 문제는 장마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이라는 거다. 조금만 움직이면 땀이 줄줄 나고 언제 비가 올지도 모르는 날씨, 더구나 코로나까지 기승을 부리니 어디로 움직일 재간이 없다. 그런데 이때 딱 좋은 놀잇감이 바로 브런치 글쓰기다. 시원한 에어컨 앞에서 커피 한잔을 내려 마시며 노트북만 열면 혼자서 몇 시간이고 놀 수 있는 놀이, 게다가 돈이 드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와 함께 해야 하는 것도 아니니 여름철 백수에게는 최고의 선택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무얼 쓸까? 남에게 뭔가를 가르치거나 설득하는 건 내 취향도 아니고 내공도 부족하니 제외, 산티아고 여행기는 이미 썼고, 백수 이야기야 앞으로 10년간은 천천히 우려먹어야 하니 아껴두고......, 그래, 아무래도 나만 아는 이야기, 내가 제일 자신 있는 이야기를 써 보는 게 좋겠다. 바로 내 인생의 이야기, 자서전 말이다.
사실 자서전을 써보고는 싶었다. 내가 무슨 니체도 간디도, 하다못해 히틀러도 아닌 주제에 많은 사람에게 내 인생을 자랑하거나 교훈을 주려는 의도는 1도 없다. 그러나 국가나 민족에게 기록과 역사가 필요하듯이 개인의 역사를 기록하는 일도 필요할 것 같다. 나는 누구인가, 자신의 정체성을 객관화해보고 현재 내가 겪고 있는 문제의 뿌리들을 살펴볼 수도 있으리라. 현재의 나와 과거의 내가 만나서 서로 토닥이며 위로를 나눌 수도 있으리라. 잘못된 선택과 실수로 아프게 한 사람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할 수도 있으리라. 그 사과가 상대방에게는 전달되지 못하겠지만 말이다. 아니 그런 엄청난 일이 없다고 해도 최소한 고향과 고향 친구들, 그리운 부모님과 가족들을 기억 속에서나마 만나볼 수 있으리라. 그리고 그런 만남들이 내 삶에 위로와 힘, 어쩌면 삶의 방향을 제시할 수도 있으리라.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걸 읽고 소비하느냐는 중요하지 않다. 내가 쓰는 나의 역사는 아주 소수의 독자들이 읽을 것이다. 어쩌면 나와 가족, 주변의 지인 몇 명만이 읽고 공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어쩌면 자서전은 읽히는 것보다 쓰는 과정에 더 큰 의미가 있을지도 모른다. 나 스스로 나의 삶을 기억, 기록하면서 차곡차곡 정리해 보는 일 말이다. 글로 기록하는 것과 그냥 기억에 남아 있는 것, 그게 무슨 차이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건 제법 다르다. 수많은 기억들 중에서 중요한 것들만 추려서 의미와 맥락을 부여하고 하나의 창작물(책이든 영상이든)로 만들고 나면, 그 창작물이 또 하나의 사실이 되어 복잡한 기억들이 정리되는 묘한 효과를 경험하게 된다. 기억들을 잘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해지고 앞으로 나아갈 힘이 생기는, 치유의 힘이 있다는 말이다.
얘기가 길어지고 커졌다.
한 번쯤 해보고 싶었던 일,
그러나 지금껏 시도해 보지 못한 일,
남의 역사(히스토리)가 아닌 나의 이야기(마이스토리)를 시작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