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아픈 기억들
4학년, 국민학교는 물론이고 어쩌면 평생을 두고도 가장 괴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원인은 딱 하나, 담임 선생님이었다. 군사부일체니 스승의 그림자니 그딴 교훈과 금기는 다 무시하고 그냥 다 풀어놓는다. 50년도 더 된, 그러나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태로 내 의식 깊숙이 아픔으로 남아있는 그 끔찍한 기억들 말이다.
우선 담임선생님은 수업은 대충하고 자습을 많이 시켰으며 특히 숙제를 엄청나게 많이 내주었다. 그 숙제를 다 하려면 밤잠을 줄여야 할 정도로. 자기 공부방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밤이 되면 호롱불을 켜던 시절이었으니 숙제를 다 하는 사람은 당연히 없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었다. 두 시간쯤 수업이 끝나면 숙제 검사를 하는데 대부분 검사를 통과하지 못하는데 유독 몇몇 동무들은 늘 검사를 통과하는 것이었다.
알고 보면 이유는 간단했다. 선생님이 봐주는 거다. 숙제 검사 차례가 다가오면 숙제장을 아무 데나 대충 넘기면서 '여기서부터, (펄럭 펄럭 펄럭) 여기까지요' 이렇게 말하면 선생님은 대충 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지나간다. 물론 그 부분은 어제 내 준 숙제가 아니라 옛날에 조금씩 한 숙제 중 일부다. 선생님이 모를 리 없다. 그냥 몇몇 선택된 아이들에게는 눈감아주는 거다. 어쩌다 보니 나도 그 몇몇 선택된 아이들 중 하나가 됐다. 처음에는 콩닥콩닥 가슴이 뛰고 호흡이 가빠졌지만 나중에는 아주 천연덕스럽고 당연하게 거짓말을 했다. 아니 그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선생님과 미리 공모된 떳떳한 거래였다. (물론 대 놓고 공모를 한 적은 없으니 순전히 내 생각이다)
숙제 검사를 마치면 책상을 밀어서 공간을 만든다. 1,2 분단을 붙이고 3,4 분단을 붙여서 가운데 통로를 만들고 숙제 검사를 통과하지 못한 대부분의 아이들을 이 통로를 거쳐 앞 뒷문과 복도를 지나는 코스로 토끼뜀을 뛰게 한다. 양손으로 귀를 잡고 쪼그려서 뛰는 바로 그 토끼뜀 말이다. 그리고 숙제 검사를 통과한 몇 명의 아이들은 코스 중간중간에 서서 한 손으로 슬리퍼를 들고 아이들의 등짝을 사정없이 후려 팬다. 그냥 토끼뜀만으로도 가혹한 체벌인데 거기에 동무들의 매질을 등에 받아가며 뛰어야 하는 것이다. 도대체 몇 분 정도나 그런 지옥 형벌을 가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내 기억으로는 최소한 한 시간은 숙제 검사와 토끼뜀이 이루어졌고 거의 매일 반복되었다. 거의 매일 나는 동무들의 등짝을 사정없이 매질하곤 했다.
숙제 검사가 끝나면 자습시간이다. 아이들은 와글와글 책을 읽고 선생님은 칠판과 창문 사이의 자리에 앉아서 그런 아이들을 대충 바라보며 쉬고 있다. 그렇게 앉아 있다가 아이들을 한 두 명씩, 혹은 집단으로 호출하는데 바로 숙제 검사를 통과한 아이들이다. 늘 같은 이야기였다. 환경미화를 해야 하니 부모님에게 말해서 재료비를 협찬하라는 거다. 얼마씩을 내라고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그중에서 제일 잘 사는 동무에게 한 말은 기억난다.
"너는 한 2,000원 가져오고"
자신이 생각하기에도 좀 큰 액수를 불렀나 싶었는지 입술이 묘하게 돌아가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었다. 그렇게 해서 부모님에게 돈을 받아다가 바치면 색 표지에 굵은 펜으로 몇 장 써서 교실 뒤 게시판에 붙이는 것으로 환경미화는 끝났고 대충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이런 일이 반복되었다. 어린 내가 보기에도 재료비는 그야말로 얼마 들지 않았고 그냥 돈을 뜯어내기 위한 명분임이 분명했다.
한 명씩 개인적으로 부르기도 했다. 와글와글 자습을 하다가 내 이름이 불렸을 때의 느낌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가슴이 쪼그라들고 몸이 얼어버릴 것 같으면서도 묘한 포기와 복종의 편안함이 혼합된 그 더러운 느낌 말이다. 최대한 공손한 얼굴로 선생님 앞에 선다. 늘 그 얘기, 아버지한테 얘기해서 사과 한 상자 가져오라는 말이다. 나는 횡설수설, 변명도 약속도 아닌 말들을 주절거린다. 아버지가 곧 주신다고 했다, 지금 사과가 맛이 덜 들었다, 약을 친지 얼마 안 됐다......, 어린아이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이런저런 핑곗거리들 말이다.
내가 아버지에게 선생님 말을 전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진즉에 아버지에게 전달은 됐다. 문제는 아버지가 영 기분이 언짢으셔서 안 보내시는 거였다. 아끼는 막내가 중간에서 괴로운 줄 너무나 잘 아시면서도 사과 한 상자를 보내기 싫을 정도로 굉장히 언짢으신 거다. 워낙에 불의에 타협할 줄 모르는 대쪽 같고 불같은 성격이시니 그러실 만도 했다. 결국 마지막에는 사과를 보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지만 이 사과 한 상자가 참 나를 힘들게 했었다.
숙제 검사를 통과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담임선생님에게 그룹 과외를 받았다. 학교가 끝나고 선생님 집에 가서 과외를 받았는데 과외비가 얼마인지, 무얼 공부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단지 시험 보기 하루 전에 그 아이들에게는 문제를 미리 가르쳐준다는 소문만은 여러 번 들었다. 나는 무슨 연유인지 그룹과외를 받지는 않았다. 부모님이 안 보내주셨는지 아니면 워낙 집이 멀어서 선생님이 아예 권하지 않았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정작 나에게 씻기지 않는 상처는 반복되는 거짓말도 사과 한 상자도 그룹과외도 아니었다. 선생님의 하수인으로 동무들을 사정없이 매질하는 악역을 아주 충실히 수행했다는 부끄러움이다
이 기억이 그렇게 오래 나를 괴롭힐 줄은 몰랐다. 언제부터 나를 괴롭혔는지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토끼뜀을 뛰는 동무들의 등짝을 슬리퍼로 사정없이 내려치던 그 손의 감촉은 결코 잊히지 않는다. 국민학교 동무들과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옛날 기억들을 떠 올리기도 하는데 나는 이런 순간이 두렵다. 나에게 등짝을 얻어맞은 동무는 아닌지, 그리고 그걸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겁이 난다.
50년 전의 동무들에게 사과하고 싶다. 그 사과가 전해질지, 이제 와서 사과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냥 진심으로 사과하고 싶다.
동무들아, 내가 너희들 등짝을 후려 팼단다. 그것도 힘을 주어 짝짝 소리를 내면서 말이야. 나도 사실은 무서웠어. 내가 너희들 등짝을 후려 패지 않으면 나도 토끼뜀을 뛰며 얻어맞아야 한다는 걸 눈치채고 있었거든. 그게 무서워서 너희들 등짝을 더 세게 후려갈겼을지도 몰라. 얼마나 분하고 아팠니? 왜 학교 밖에서 나를 두들겨 패지 않았니?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라도 한 번쯤 따지지 않았니? 아니 그냥 아무렇지도 않은 척, 지나가는 말로라도 얘기하지 그랬니?
동무들아, 무슨 말로 용서를 구해야 하겠니? 너무 미안하다, 너무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