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글첩

아내의 잔소리

2018년 7월

by 심웅섭

아내의 잔소리가 많아졌다. 사실 나는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있다가 어느날 갑자기 잔소리가 많아졌음을 깨닫게 되었는데 아주 야금야금, 조금씩 조금씩 늘어났기 때문이다. 마치 나이들어가면서 흰 머리카락이 소리 소문없이 하나씩 늘어나듯이 말이다.


잔소리의 내용은 뭐 그리 다양하지는 않다. 양말은 제대로 뒤집어서 빨래통에 넣어라, 거울에 튄 비누거품은 잘 지워라, 욕실에서 사용하는 세숫대야에 물은 늘 버려라, 찌개는 국물만 짜 먹지 말고 건더기까지 먹어라...... 등등을 비롯하여 반복되는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간혹 풀을 깎으라든가 무얼 만들어 달라든가 하는 새로운 내용이 첨가되기는 하지만 요것들은 잔소리와는 피부에 와닿는 느낌이 좀 다르다. 잔소리는 들을 때 약간 따끔따끔, 혹은 간질간질한데 반해 이런 새로운 과업들은 조심스럽게 내미는 손길 같아서 전혀 부담스럽지가 않다. 또 그런 과업들을 미루었다고 해서 잔소리가 되는 경우도 거의 없다.


결국 잔소리의 근본을 따져보면 깔끔한 아내와 지저분한, 아니 수더분한 남편의 충돌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아내는 밭에 풀이 자라거나 낙엽이 쌓이는 자체를 못 참는데 반해서 나는 아무렇지도 않고 때에 따라서는 멋스럽게 느끼기까지 하니 충돌이 있는 것은 당연한 노릇. 잔소리는 그 충돌을 참고 참다가 튀어나오는 작은 파편들일 것이다.


그런데, 이 정도의 분석으로 아내의 잔소리를 이해하는 것은 왠지 부족한 느낌. 그래서 나는 조금 더 다양하고 새로운 접근법을 동원하기로 했다. 우선 역사적 관점. 도대체 언제부터 잔소리가 시작됐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신혼 때는 물론이고 아이들 중고등학생 시절만 해도 아내의 잔소리에 대한 기억은 없다. 그렇다면 잔소리는 불과 10년 정도의 역사라는 건데, 이 시기는 어쩌면 우리 부부가 서로에 대해 더 깊이 공감하고 가까워진 기간과 거의 일치한다. 그렇다면 혹시 잔소리는 나를 사랑한다는 표현인가? 말도 안 되는 가설을 세우고 어느 정도 관찰한 결과 놀랍게도 이 명제는 참으로 보인다. 부부싸움 뒤에는 잔소리가 없고 아내와의 관계가 좋을수록 증가하는 상관성을 보였기 때문이다. 흠...... 놀랍긴 하지만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남편이 멀거나 밉거나 부담스럽다면 어떻게 잔소리를 할 수 있을까? 예쁘고 사랑스럽고 부담 없으니 할 수 있는 게 잔소리가 아닐까. 결국 잔소리는 내용과 다르게 날 사랑한다는 말이로구나.


이번에는 수학적 분석을 시도해 볼까? 아내와 나 사이에서 잔소리라는 매개변수를 제거해본다. 썰렁하다. 잔소리가 없으니 서로의 대화는 줄고 감정은 억제되고 결국 평행선 내지는 변화 없는 딱딱한 직선 그래프가 될 것이다. 잔소리를 통해 서로가 대화하고 교감하고 변화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번에는 부부 중 한 사람의 건강을 변수로 놓고 잔소리 양의 변화를 예측해본다. 마이너스의 상관관계, 아내가 아프거나 내가 병들면 잔소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만일 건강을 최소화, 다시 말해서 어느 한쪽이 죽는다면 당연히 잔소리는 0이 될 수밖에 없다. 이래서 수학이 필요하다. 내 느낌과는 다르게 아내의 잔소리는 부부가 아주 건강한 상태로 정상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증거일 가능성이 높다. 어쩌면 아내의 잔소리는 달콤한 사랑의 노래보다도 우리 부부의 삶에 필요한 필수품일지도 모르겠다. 마치 달콤한 설탕보다는 짭쪼롬한 소금이 요리에 더 필요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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