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치기와 딸기주

논산훈련소의 추억

by 심웅섭

1981년 4월, 현역 입영 영장이 나왔다. 4월 28일 두시까지 증평역에 도착하란다. 두렵지는 않았다. 지독한 방황의 끝, 더 이상 갈 곳도 할 일도 없다. 차라리 군대생활이 확실하게 내 젊은 날의 방황을 끝내줄 것 같은 묘한 기대감마저 느껴졌다. 아니, 막막한 내 현실에서 도망칠 수 있는 유일한 도피처라는 표현이 더 맞을 듯싶다. 마치 며칠 여행이라도 떠나듯 엄마에게 담담하게 인사를 드리고는 집을 나섰다. 손끝에 전해지는 빡빡머리의 감촉이 어색했을 뿐이다. 증평까지 간 길은 생각 나지 않는다. 다만 증평역에서 본 어느 여인의 눈물은 잊히지 않는다. 대부분의 장정들은 나처럼 혼자 오거나 부모님과 함께 왔는데 젊은 여인과 함께 온 장정이 있었나 보다. 분위기로 보아서는 누나나 여동생보다는 애인이었을 성싶다. 서서히 기차가 움직이자 잔잔히 웃으며 손을 흔들던 드레시한 정장 차림의 여인이 갑자기 주르륵 눈물을 흘렸다. 입대를 하는 애인이 나와 멀지 않은 듯, 시선은 거의 나를 보고 있었다. 순간 내 눈에서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래, 이제 정말로 떠나는구나.


그러나 이런 이별의 슬픔을 아주 짧은 순간에 효과적으로 잠재울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열차에 탄 호송병이 조그마함 작대기를 들고 기합을 주기 시작한 것이다. 먼저 앉아 일어서, 앉아 일어서를 반복하던 호송병은 갑자기


"의자 위에 수류탄"


이렇게 외쳤다. 대부분은 눈을 멀뚱멀뚱, 무슨 소린가 하고 있는데 눈치 빠른 몇몇이 열차 의자 밑으로 숨는 시늉을 했다. 옳다구나, 의자 위에 수류탄이 떨어졌으니 밑으로 기어들어가라는 뜻이로구나, 모두들 의자 밑으로 몸을 구겨 넣는데 물론 제대로 들어갈 리가 없다.


"의자 밑에 수류탄"


이번에는 반응들이 빨랐다. 의자에서 튀어나와 열차 의자 위로 몸을 숨긴다. 이렇게 한참을 후다닥 거리며 기합을 받고 나니 어느새 군기가 들어서 몸이 자연스럽게 직각 자세가 된다. 이것이 군대로구나, 이제는 죽었구나 싶다.


논산훈련소에 도착해서 3일간은 보충대에 머물렀다. 보충대는 정식으로 훈련소에 입소하기 전에 임시로 수용하는 시설로 장정들은 이곳에서 다시 한번 신체검사를 받으며 입소 순서를 기다린다. 나는 3일 정도 보충대에 머물렀는데 딱히 인상적인 기억은 남아있지 않다. 다만 입고 온 사복을 벗어서 집으로 보내면서 이 옷 보따리를 보면서 엄마가 얼마나 눈물을 흘릴까 걱정하기는 했다. 어렸을 적에 큰 형님이 입대 후 사복을 보내왔는데 이걸 보고 엄마가 펑펑 울던 기억 때문이었다. 또 하나 기억나는 것은 적당히 도망가는 요령을 배운 것이다. 보충대는 사실 특별한 일과가 없다. 밥 먹고 나면 어영부영 영내를 돌아다니며 시간을 때우는데 기간병들이 눈에만 띄면 장정들을 불러서 작업을 시키곤 했다. 처음에는 부르는 대로 따라가서 고분고분 시키는 일을 했지만 겨우 하루가 지나자 새로운 이곳만의 대처법을 터득했다. "어이, 거기 장정!" 소리만 들리면 일단 뒤돌아보지 않고 줄행랑을 놓는다. 누가 따라와서 잡히거나 벌을 받을 가능성은 없었다. 장정들은 그야말로 넘쳐났으니 다른 녀석들을 잡아서 일을 시키면 그만이었고 어차피 명찰도 없이 고만고만한 빡빡이 중에서 나를 알아볼 수도 없을테니 말이다. 3일 동안 잠시 군기가 빠질만하자 훈련소 입소 명령이 떨어졌다. 나는 25 연대 3대대로 배속되었다.


"사나이로 태어나서 할일도 많다만

너와 나 나라지키는 영광에 살았다"


줄을 맞춰 군가를 부르며 훈련소로 향했다. 훈련소에서는 보충대와는 완전히 다른, 그야말로 지옥 같은 순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키가 자그마하고 코가 큼직한 기간병(구대장이라고 했다)이 들어와서는 사정없이 얼차려를 주고 매타작을 놓는데 그야말로 정신이 쏙 나갈 지경이었다. 내무생활에 대한 설명은 일단 미뤄놓고 군기 먼저 잡기로 작정을 한 듯, '앉아, 일어서'에서 '대가리 박아', '한강철교', '김밥말이' 등등 온갖 듣지도 보지도 못한 얼차려들이 화려하게 펼쳐졌고 조금이라도 늦거나 틀리면 군홧발로 사정없이 걷어차였다.

식사시간이 되었다. 당시 논산훈련소는 구내식당이 없이 밥을 타다가 내무반에서 배식을 하는 형식이었다. 밥은 오래되어 약간 노릇한 색을 띠는 정부미 쌀밥이었는데 문제는 솥에 안쳐 뜸을 들인 밥이 아니라 식판에 증기로 찐 밥이라는 점이다. 밥이 익기는 했는데 고두밥 보다도 더 고슬고슬하고 단단했으며 무엇보다도 묘한 곰팡이 냄새 같은 것이 역하게 났다. 국과 반찬도 허름했다. 그런데 정작 더 큰 문제는 밥이 아니라 식사시간이었다. 구대장은 배식이 끝나자 큰 소리로 외쳤다.


"자, 지금부터 2분의 식사시간을 준다. 2분이 지나서 계속 밥을 먹는 놈들은 각오해라, 내가 군대가 뭔지 확실히 보여주겠다. 그리고 2분을 주는 건 내가 맘이 좋기 때문이다. 다른 내무반에서는 1분인데 내가 특별히 2분을 주는 거다. 자, 식사 개시"


원래 밥을 좀 천천히 먹는 나는 그야말로 허겁지겁 밥과 국과 반찬을 쓸어 넣었으나 절반도 못 먹어서 야속한 2분이 끝났다. 물론 다른 훈련병들도 대부분 비슷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키가 크고 착하게 생긴 훈련병 하나가 한 숟가락 더 떠서 입에 넣다가 구대장의 눈에 걸린 것이다. 구대장은 예의 화려한 발차기로 사정없이 응징했고 그 착한 인상의 훈련병은 겨우 밥 한 숟가락에 흥건한 매타작을 반찬으로 얹어야 했다. 바라보는 소대원 모두가 그야말로 군기가 바짝 든 것은 물론이다.

공포의 점호가 끝나고, 취침나팔 소리와 함께 드디어 침상에 모포를 깔고 잠자리에 들었다. 마음이 복잡했다. 여기가 사람 사는 세상인가, 영화에서나 보던 포로수용소나 감옥도 이보다는 나았는데 내가 과연 남은 군대생활을 잘 해낼 수 있을까, 엄마는 나를 군에 보내 놓고 또 얼마나 보고 싶어 하실까......, 누군가가 조용히 훌쩍이고 있었다. 애써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울음을 삼켜가며 훌쩍이는 소리는 분명 한 사람이 내는 소리였지만 내무반에 누워있는 50여 명 모두가 함께 울고 있었으리라.


하루 동안의 엄청난 변화와 공포로 피곤한 몸과 정신은 나를 빠르게 잠재웠고 그야말로 눈만 감았을 뿐인데 야속한 기상나팔소리가 고막을 타고 들어왔다. 전날 바짝 군기가 들어서일까, 모두들 소리 없이 일사불란하게 침구를 정리하고 군복을 차려입고 연병장에 집합, 인원점검이 끝나고 구령에 맞춰 구보를 했다. 모두가 명령 하나에 로봇처럼 착착 움직이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했다. 5월 초의 시원한 봄날, 안갯속에 구령을 붙여가며 뛰는 아침 구보는 나름대로 할만하다는 생각도 얼핏 들었다. 식사가 끝나고 개인정비가 끝나면 8시부터 훈련일과가 시작되는데 이 또한 교련시간에 대충 해 본 적이 있는 제식훈련과 총검술, 각개전투 등이어서 크게 어렵거나 힘들지는 않았다. 처음에 공포 분위기로 맞아주던 구대장도 슬금슬금 풀어주는 분위기였고 어느새 우리는 조심조심 떠들기도 하고 웃기도 하면서 훈련소에 적응해나가고 있었다.

사소한 재밋거리와 새로운 체험도 생겼다. 처음 생긴 재밋거리는 몰래 건빵 먹기, 나눠주는 건빵을 군복 윗주머니에 적당히 까서 넣고 훈련장으로 향한다. 그리고는 기간병의 눈을 피해 몰래 하나씩 꺼내 입에 물곤 했는데 특히 PRI시간이 먹기에 좋았다. 잠시 땅에 엎드렸다가 일어나서 총을 들고 뛰어가는 훈련이라서 땅에 엎드릴 때 입에 하나 넣으면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다. 물론 입을 놀리며 우적우적 씹을 수는 없었고 침으로 살살 녹이면서 조심조심 빨아먹었다. 혹시라도 교관이나 기간병에게 걸리는 날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매타작이 기다리고 있는 줄은 뻔히 알지만 달고 향긋한 건빵의 맛과 이 통제된 집단에서도 나만의 즐거움을 누린다는 묘한 스릴을 포기할 수는 었었다.


새로운 체험이란 다름아닌 바로 도둑질이었다. 물론 도둑질은 사회 용어이고 군대에서는 위치 이동이라는 전문용어를 썼다. 어차피 국방부 물건이니 그게 누구 손에 있느냐는 중요하지 않은, 위치 이동일뿐이라는 말이다. 게다가 위치 이동을 할 수밖에 없는 사회이기도 했다. 맨 처음 경험은 빨래 감시 중에 이루어졌다. 일요일이면 모두들 빨래를 널고 도둑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 내무반에서 한 명씩 감시조를 세웠다. 문제는 몇 개의 내무반이 한 장소에서 빨랫줄을 나눠 쓰고 있다는 점이었다. 내무반별로 나온 감시조는 서로 얼굴 잘 아는 이웃 내무반 훈련병들이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훈훈한 분위기였지만 잠시 눈만 돌리면 서로가 빨래를 훔쳐다가 자기 내무반 줄에 걸곤 했다. 최초의 도둑질을 한 친구가 빨래를 잃어버려서일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그저 재미 삼아, 혹은 여유 있게 미리 챙긴다는 의미로 위치 이동을 했으리라. 문제는 당하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는 점이었다. 당연히 나도 처음에는 떨리는 마음으로, 나중에는 편안한 마음으로 위치 이동에 동참했다. 5월의 햇살 아래 평화로와 보이는 빨래 건조장은 사실은 기가 막힌 눈치와 스릴이 넘치는 게임장이었던 것이다.


재미를 들인 나는 나중에는 보다 대담한 위치 이동에 도전했는데 다름 아닌 날치기였다. 배출(훈련소 졸업을 이르는 말)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어느 날, 갑자기 문제가 발생했다. 우리 내무반에 국자가 하나 없어진 것이다. 누가 어떻게 잃어버렸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이걸 배출전에 채워 넣지 않으면 훈련소를 졸업할 수 없다는 구대장의 엄포에 모두를 긴장했고 내가 불쑥 나서서 훔쳐오겠다고 공언했다.문제가 있었다. 배출이 얼마남지 않아서 하도 위치이동이 많다보니 모두들 극도로 조심한다는 것이다. 식기 세척장에서 보니 국자와 식판을 얼마나 철저히 감시하는지, 한손으로는 꼭 붙잡고 나머지 손으로 일을 하는 정도였다. 계획을 바꿨다. 이번에는 좀더 다이내믹한 위치이동, 날치기로 정한것이다.사실 나는 중학교 졸업할 때 100m를 13.8에 뛸 정도로 단거리에 자신 있었고 빨래 위치 이동으로 어느 정도 정신적인 훈련도 됐으니 은근히 자신 있었다. 작전도 세웠다. 한 친구에게 내가 국자를 잡아채서 뛰면 따라오는 국자 주인과 일부러 부딪쳐서 속도를 늦추라는, 제법 그럴듯한 계획까지 세웠다. 문제는 이 녀석이 머뭇거리다가 제대로 부딪치지 못해서 추격자를 놓쳐버린 것이다. 나는 국자를 움켜쥔 채 복잡한 사람들을 헤치고 뛰었고 따라오는 친구는 이미 갈라진 인파 사이를 직선으로 뛰었다. 결국 짧은 추격전은 끝나고 머쓱한 표정으로 국자를 건넸고 아무렇지도 않게 넘겨받는 것으로 나의 날치기 시도는 실패로 끝났다. (나중에 복기해보니 작전이 부실했다. 최소한 두 세명의 훼방꾼을 거리를 두고 배치했어야 했다 )


빼놓을 수 없는 나의 논산 무용담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딸기주 밀송 사건이다. 졸업을 얼마 앞두고 마지막으로 야간 매복 훈련을 나갔는데 하필이면 주변에 딸기밭이 있었고 이곳에서 달착지근한 딸기주를 판다는 정보를 누군가가 입수했다. 문제는 돈이었다. 훈련소에 입소할 때 가진 돈들을 모두 영치하고 대신 표를 받아서 지니고 있었다. 그런 종이 쪼가리를 받고 딸기주를 줄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술이 고팠다. 고된 훈련과 낯선 격리생활을 한지가 벌써 한 달, 그동안 알코올이라고는 냄새조차 맡아보지 못했으니 말해 무엇하랴. 모두들 수군수군 회의를 해보니 마침 누군가가 돈을 몰래 지니고 있었다. 졸업할 때 나누어 갚기로 하고 그 돈을 빌려서 몰래 딸기주를 사는 데는 성공했다. 그러나 훈련 중에 술을 마실수는 없으니 내무반에서 마시기로 하고 몇 명이 수통에 나눠 담았다. 훈련이 끝났다. 그런데 줄을 세운 구대장이 갑자기 수통 검사를 시작했다. 한 줄씩 수통을 열어 냄새를 맡고는 술이 든 수통이 나오면 두말없이 빼앗았다. 흠, 이게 모두 부처님 손바닥, 아니 그들의 작전이었구나. 어쩐지 딱 딸기주를 사 올 만큼만 감시가 소홀하더니 이렇게해서 술을 뺏는 거로구나. 순간적인 기지가 필요했다. 키가 작아서 맨 뒤쪽에 서 있던 나는 어둠을 틈타서 재빨리 검사를 마친 옆줄 훈련병과 자리를 바꿨다. 내무반에 돌아와 보니 무사한 수통은 내 것뿐이었다. 모두들 환호를 하고 나는 갑자기 영웅이 된 듯 으쓱, 한 모금씩 입을 대고 나눠 마신 달착지근한 딸기주는 그야말로 모두를 하나로 이어주는 동지주가 아닐 수 없었다.

졸업 날이 되었다. 나는 대대에서 3등으로 졸업했다. 상장도 상금도 성적표도 없는 3등이었지만 나로서는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공부도 시험도 아닌 군대에서, 머리가 아니라 몸으로 때우는 일에서 최초의 성과를 낸 것이다. 어릴 때부터 키도 작고 허약해서 약골인 줄만 알았는데 어쩌면 나는 몸도 강한 강골 인지도 모르겠다는 자신감이 불끈 올라왔다. 이제 더 이상 군대생활은 두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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