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일남책 Oct 06. 2024

10장. 허지광 vs 가족.

가장의 무게.

10장. 허지광  vs 가족.



        

오늘 변 사장이 갑자기 죽었다는 부고를 받았다. 

김 사장 때문에 평소 얼굴만 알고 지내던 사람이긴 했지만 요즘 자신의 주변에서 사고가 자주 일어나는 것이 지광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었다. 


이번에도 음주운전으로 인한 교통사고였는데 주변 차량의 목격담을 전해 들어보니 사고 나기 직전에 차량이 비틀대며 곡예 운전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아마 만취였거나 졸음운전이었을 거라고 경찰은 판단하고 있다는데 지광은 김 사장의 사고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주변 지인들에게 수소문 해 보니, 부검 결과 음주운전은 맞지만, 소량의 알코올만 채취되었기에 만취라고 보기는 힘들다고 했다. 다만, 극소량의 수면 성분이 함께 채취되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워낙 소량으로 검출되어서 혹시 감기약 성분일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을 뿐이었다. 


지광은 애써 침착하게 행동했지만, 자신과 관계된 사람들, 특히 김 사장과 관계된 사람들에게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직감이 들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지금 이 상황에서 내가 모르고 있는 게 뭐가 있을까?     

      

하지만 다른 생각을 하기에 지광은 자신의 살길이 너무 막막했다. 모아둔 돈도 세금을 감당하기에 부족하고…. 가족들에게 지금의 상황을 설명하거나 이해시킬 방법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들은 그냥 원래 하던 대로 하고 싶어 할 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의 이 고통은 가족들 몰래 지광이 오롯이 감내하고 극복해야만 하는 것이었다.   

             

세무조사가 나온 후 며칠이 지나자, 지광은 어째 세금은 내가 벌어들인 돈보다 더 많이 나올 수 있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됐다. 해마다 다르긴 했지만 거의 평균적으로 1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5년 정도 유지했었는데…. 같은 기간의 세금이 10억 가까이 예상된다니, 이게 말이 되는 것인가? 


물론 세무사의 설명은 들었다. 5년간 누락한 매출이 50억 정도인데 부가가치세가 10%이므로 5억. 거기에 신고불성실 가산세 40%가 붙으니 2억이 추가되고, 가공계산서 발행으로 인해 조세범처벌로 인한 벌금과 납부불성실가산세가 추가된 후 소득세 수정신고까지 한다면 총 10억 정도 예상된다는 것이었다. 이렇게 설명을 들으면 잘은 몰라도 수긍은 갔다. 


하지만 조금의 시간만 지나면 다시 생각이 원래대로 돌아와서 어찌 내가 번 돈보다 세금이 더 많이 나올 수 있는지 황당하다는 생각을 계속 반복했다. 

‘이건 말이 안 돼.’               


절망적인 생각에 축 늘어진 어깨를 하고 터덜거리는 걸음으로 집에 도착했더니 아내와 아이들이 평안한 모습으로 자고 있었다. 왜 내 가족들은 잘 때가 가장 예쁜 건지…. 저 사랑스런 모습들을 보며 지광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둘째의 통통한 볼을 살짝 깨물고 싶기도 했고, 첫째의 엉덩이를 ‘톡’하고 건드려 보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자신의 컨디션으로는 애들을 깨워서 감당할 자신이 없었기에 그냥 멀찍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때였다. 쌔근쌔근 숨소리를 내며 자는 아이를 보니 지광은 문득 자신이 더욱 힘을 내야 맞는 것인지, 가족과 함께 세상을 끝내야 맞는 것인지 생각해보게 되었다. 아….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생각인가, 지광은 나쁜 생각을 떨치려는 듯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얼른 방문을 닫았다. 


애들이 자는 방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지려는 듯이 거실로 나와 털썩 소파에 앉았는데 좀전의 생각이 이어졌는지 지광은 핸드폰으로 ‘동반자살’을 검색해봤다. 수많은 뉴스와 관련 글들이 쏟아져 나왔는데 오히려 그의 눈에 띈 것은 ‘동반자살’이라는 말을 더 이상  쓰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글들이었다. 그것은 자살이 아니라 한 사람이 무고한 다른 생명을 빼앗는 명백한 살인이라고….


잠시나마 나쁜 생각을 가졌던 자신을 자책하며 지광은 핸드폰을 내려놓고 소파에서 그대로 잠을 청했다. 옷을 갈아입고 양치를 하는 것조차 사치라고 느껴지는 심정이었다. 복잡한 머릿속을 정리하며 잠을 청하는데 쉽게 잠이 올 것 같지는 않았다. 심지어 내일은 아이들을 데리고 수학 게임을 하는 가족대항전에 함께 참석해야 하는데 세상의 모든 것들이 자신을 힘들게만 하는 것 같았다. 


‘휴….’하고 한숨을 쉬고 담배를 줄지어 피워봐도 답답한 가슴이 뚫리지 않아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는데 이 와중에도 지광은 수학대항전에서 어려운 문제를 잘 풀어내는 멋진 아빠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떠올리며 다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는 내일 대결할 수학 게임을 연습했는데 아마 오늘 밤은 한숨도 잘 수 없을 것 같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