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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남책 Oct 06. 2024

11장. 허지광 vs 수학대항전

실력 vs 행운

11장. 허지광 vs 수학대항전          



다음날 일찍부터 부산하게 아이들을 준비시켰다. 

모든 시험이 그렇듯이 일찍부터 준비해서 컨디션을 관리해야 더 잘 할 수 있는 것이라 믿기 때문인데 오늘따라 아이들이 따라주질 않는다. 


“ 얘들아, 일어나. 오늘 가족대항전 하는 날이잖아.” 


사실 애들은 이렇게 느긋한데 부모들만 애타게 준비하는 게 맞나 싶으면서도 좋은 부모가 되고 싶은 마음이 더 크기에 어쩔 수가 없다는 것을 지광도 알고 있다. 그래서 지광은 어젯밤을 꼴딱 새며 오늘의 대결을 준비했었는데 ‘칠교 퍼즐’의 예제를 보며 열심히 연습하고 유튜브를 통해 ‘기차 폭발 게임’의 필승전략을 면밀히 연구했었다. 그래서 잠을 못 잔 탓에 컨디션이 좀 안 좋을 뿐 게임에서 좋은 결과를 얻을 자신은 있었다. 


‘오늘 우리 애들에게 반드시 멋진 아빠의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꼭 1등 상품을 안겨주고 싶다.’ 

굳게 다짐을 반복하며 지광은 긴장을 풀 듯 호흡을 가다듬었다.      



가족대항전을 진행하는 곳은 구청의 대강당이었는데 그곳에 도착하니 이미 주변은 수많은 사람으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이 비싼 수업을 듣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구나. 

사실 이 대항전은 해당 수학학원에 다니는 아이들과 그 가족들만 참가하는 것인데 지광은 항상 수업료가 너무 비싸다고 생각했었기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이 수업을 듣는다는 사실에 꽤 놀라워하고 있었다.  

    

지광은 잠을 못 잔 여파인지 머리가 몽롱하긴 했지만, 최대한 집중하려고 한쪽 구석에서 스트레칭을 했다. 그 모습을 보던 둘째 녀석이 갑자기 등에 올라타 버려서 엉망이 되었지만, 덕분에 잠을 깨려는 목적은 충분히 달성되었다. 지광은 예리한 눈빛을 발사하며 약간은 긴장한 얼굴로 주변을 살폈는데 어떤 엄마가 똑똑해 보이는지, 어떤 아빠가 샤프한 느낌이 드는지를 유심히 관찰하며 경쟁상대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분석하고 있었다.      

게임의 룰은 이랬다. 

대결에서는 두 가지의 게임을 진행하는데 각각 완료한 시간을 합산해서 최종적으로 최소시간을 기록한 사람이 우승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칠교 퍼즐은 빨리 풀어내는 것이 관건이었고, 기차 게임은 상대방을 잘 만나는 것이 꽤 중요했다. 룰을 제대로 모르거나 시간을 많이 끄는 상대를 만나면 절대 우승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첫 번째 게임은 칠교 퍼즐이었다. 총 3문제가 나오는데 한 개씩 완성할 때마다 심사위원의 확인을 받고 그다음 문제로 진행하는 방식이었다. 지광은 제발 어제 연습한 그림이 나오길 간절히 바라면서 자신의 대기석에 앉아있었다. 모든 참가자에게 문제지가 나눠지고 시작한다는 사회자의 우렁찬 소리가 들리자, 조용하면서도 부산한 소음이 순식간에 강당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문제지를 받은 지광은 자신이 어제 연습한 것과 다른 문제라는 사실에 약간 실망했지만,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풀이에 집중했다. 6가지 각기 다른 퍼즐로 여러 가지 도형으로 이루어진 그림을 맞추기는 여간 쉽지 않았다. 하지만 밤새 연습한 덕분인지, 첫 번째 그림을 너무도 쉽게 패스했다. 여러 개의 삼각형을 이용해서 큰 사각형을 만드는 게 포인트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후….’ 

지광이 한숨을 돌리고 두 번째 문제를 시작하려는데 옆에서 누군가가 첫 번째 문제를 패스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렇다는 것은 저 사람이 자신과 시간이 조금밖에 차이가 안 난다는 것이므로, 지광은 충분히 빠르게 잘하고 있음에도 왠지 쫓기는 기분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윽고 두 번째와 세 번째 문제까지 무난히 잘 풀어낸 다음 지광은 심사위원에게 시간을 멈춰달라고 요청했다. 


자신이 이 강당의 모든 사람 중 가장 빨리 완성했다는 것에 기쁨의 포효를 했는데 그 시끄러운 소리에 다른 사람들의 눈총이 이어졌다. 세어 보진 않았지만 100명도 넘게 모여있는 이 강당에서 자신이 가장 먼저 패스를 한 것이니 자기 스스로 정말 자랑스러웠다. 지광은 뒤에서 기다리는 가족들에게 힘차게 손을 흔들며 자랑스러운 아빠의 모습을 만끽했다. 

‘ 얘들아, 보고 있지? 아빠가 해냈어.’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세무조사건 납부할 세금이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을 느끼고 있는 지광이었다.      



지광은 이제 기차 게임의 전략만 잘 통하면 우승은 따놓은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다른 사람들이 언제쯤 완성을 할지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때 누군가가 환호를 지르며 완성했음을 알렸다. 아까 옆에서 자신과 비슷한 속도로 따라붙던 그 사람이었다. 자신보다는 조금 늦었지만 어쨌든 최종적으로 이 사람과의 경쟁이 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잠시 휴식 후 다시 시작된 2차전. 기차 게임의 상대는 살짝 백치미가 있어 보이는 30대 후반의 여자였다. 지광은 어리숙해 보이는 그녀를 바라보며 살짝 만족스런 미소를 지었다. ‘내가 승리하는 건 문제가 없어 보이네. 아줌마, 제발 엉뚱한 실수만 하지 말아주라.’ 기차 게임은 상대가 룰을 어기면 함정에 빠진 것처럼 정답을 찾을 수 없어지는 문제가 있는데 그래서 자신의 전략도 중요하지만, 상대방이 오류를 범하지 않는 것도 굉장히 중요했다. 

‘부디 룰 대로만 해주라. 제발.’ 


“ 자,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자의 외침과 함께 게임은 시작됐다. 지광은 숫자를 얘기했고 처음부터 ‘명중’을 받으며 좋은 출발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첫 번째 기차를 찾아내고 두 번째 기차도 금방 찾아냈다. 정말 승승장구 그 자체였고, 이미 승리는 포기한 듯 마음을 내려놓은 듯 미소를 짓고 있는 상대방을 보며 지광은 쾌재를 불렀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아무리 해도 세 번째 기차를 찾을 수 없던 것이었다. 시간은 계속 흘러가고 주변에서는 여기저기 승리의 환호가 들리기 시작했다. 조급해진 지광은 다시 집중했다. 


‘ 아…. 이건 내가 적당히만 해도 우승인데…. 미치겠네….’ 


칠교 퍼즐에서 꽤 많은 시간을 절약했기에 이번 게임에서 다른 사람보다 조금 늦더라도 지광은 우승이 가능했다. 그래서 지금의 상황은 너무도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도저히 세 번째 기차는 찾을 수 없었고 결국 옆에서 지켜보던 심사위원이 개입했다. 심사위원은 지광의 상대방에게 명중과 불발을 잘 못 외쳤다는 것을 뒤늦게 알려줬는데 그 말은 들은 여자는 얼굴이 발개지며 ‘아 죄송해요.’라는 말과 함께 실없이 웃었다. ‘이런 미친….’ 지광은 불같이 화가 났지만 차마 표현할 수는 없었다. 저 여자는 백치미가 아니라 그냥 백치 멍청이였다. 


지광은 결국 우려하던 대로 상대방을 잘 못 만났고 모든 계획은 물거품이 되었다. 그렇게 밤새 노력했는데…. 기차 게임에서 백치 멍청이를 만나버리다니…. “아니, 심사위원님. 이건 제가 잘 못 한 것도 아니고 재경기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 지광은 억울함을 호소하며 분노에 가득 찬 주장을 펼쳤지만, 최소시간을 기준으로 이미 우승자가 가려졌고 누군가가 벌써 시상대로 향하고 있었다. 지광은 속에서 천불이 난다는 말의 의미가 무엇인지 오늘 깨달았다. 앞에 있는 이 여자의 머리끝이라도 붙잡고 화풀이를 하고 싶었지만, 현실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이 더욱 화가 났다.   

       

“ 와아, 아버님 우승 축하드려요. 평소에 연습을 많이 하셨나 봐요? ” 

사회자의 멘트가 들려와서 지광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우승자를 바라봤다. 


“ 아뇨, 매일 바쁜 일상이라 사실 연습도 몇 번 못하고 겨우 참가만 했는데 어제 풀어본 문제가 마침 운 좋게 출제되어서 이렇게 좋은 결과가 나와버렸네요. 하하. 감사합니다.” 

이런 젠장. 운이 좋다니. 드럽게 겸손한 척하네. 


지광은 저 말이 설사 겸손의 말이라고 할지언정 이미 기분 나쁘게 듣고 있었고 자신의 장이 배배 꼬이는 느낌이 드는 걸 겨우 참으며 배를 움켜잡았다. 한숨도 못 잔 피로가 이제야 급격히 몰려오는 것만 같았는데 배까지 아프니 짜증이 배가 되고 있었다. 


“ 아니, 이 퍼즐이 한번 연습했다고 외워지는 게 아닌데 아무리 운이 좋았다고 하더라도 대단하시네요. 혹시 수학 선생님이세요? ” 

사회자는 준비된 멘트를 쉴 새 없이 내뱉고 있었는데 지광은 공정하지 못한 이 게임을 마음대로 마무리한 저 사회자도 너무 꼴 보기가 싫었다. 


“ 아니요. 경찰입니다. ” 


그 남자는 마냥 사람 좋은 웃음으로 하하하 웃으며 자신의 신분을 밝혔는데 경찰이라고 말을 했다. 

‘ 경찰이라고? ’ 

지광은 예상치 못한 그의 대답에 잠시 멍해지다가 그때까지 째려보던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면서 자신의 가족을 찾아 강당 뒤쪽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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