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촉.
13장. 최순경 vs 서형사
며칠 사이 연이어 발생한 교통사고를 보며 뭔가 이상함을 직감한 최 순경이 사고자료를 각각 비교하기 시작했다. 아직까지는 직감일 뿐이지만 이건 사고가 아니라, 사건이라는 느낌이 확실히 들고 있었다.
최 순경은 얼마 전 징계로 인해 비록 지금은 교통경찰로 근무 중이지만 한때 강력반 형사였기에 항상 자신의 육감이 살아있음을 느끼고 싶었는데 마침 좋은 사건이 걸려들었다고 생각했다.
‘맞아, 이건 사건이야. 누가 사고로 조작한 느낌이 들어. ’
최 순경은 과속단속카메라 설치와 상습정체 구역 교통정리 등 오늘도 일정이 빡빡했지만 잠시 짬을 내어 자신의 옛 선배에게 이 사건을 알렸다.
“어이 어쩐 일이야? ”
선배의 반가운 목소리에 최 순경은 갑자기 울컥함을 느꼈다. 갑자기 이런 느낌이 들지는 생각도 못 하고 전화를 걸었는데 막상 목소리를 들으니 차마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울컥함은 뒤이은 선배의 농담 한마디에 모든 것이 풀어져 버렸고, 최 형사는 울컥함이 짜증으로 바뀌는 것을 느꼈다.
“야, 그나저나 요즘 회사 앞 사거리에 차가 너무 막히더라. 너희 일 제대로 안 하냐?”
“ 아이 선배 진짜 이러기에요? 교통이라고 놀리는 건 인신공격이에요.”
얼마 전 받은 징계로 보직이 변경된 것을 선배가 곧바로 후벼파고 있었다.
사실 몇 달 전 최 형사는 어떤 사람을 범죄자로 확신하고 그 집에 쳐들어가서 체포하느라 난장판을 만들었는데 그 사람은 범인이 아니라 무고한 일반인이었다. 그 결과로 최 형사는 그 일에 대한 책임을 혼자서 지고 교통계 순경으로 보직 이동했던 것이었는데 강력반 시절 촉 하나는 연금술사인 서 형사도 인정하는 부분이었다. 단지 마무리가 아쉬울 뿐….
그래서 최 형사의 촉과 서 형사의 마무리는 항상 최고의 조합이었는데 지금 그 콤비네이션이 다시 이루어지고 있었다.
“ 선배, 장난치지 말고 이 사건 하나만 좀 봐줘요. 저 촉 좋은 거 아시잖아요.”
자신의 처지가 신경 쓰였는지 최 순경은 괜히 자기 능력을 한 번 더 어필했다.
“ 야, 나 바빠. 여기가 누구 의뢰나 받아줄 정도로 한가한 줄 알아? 그리고 그렇게 촉 좋은 놈이 무고한 시민을 죽도록 두들겨 패고 집을 난장판으로 만드냐 인마? ”
“ 아, 진짜 왜 그래요? 선배까지…. ”
최 순경은 금세 기가 죽었다.
“ 아니, 최근에 교통사고 두 건이 있었는데 진짜 좀 이상해서 그래요. 그러지 말고 한 번만 조사해 주세요. 선배는 나랑 다르게 운이 좋잖아!! 그것도 기가 막히게….”
“ 얀마, 운이 아니라, 실력이라고 인마! 그리고 나 지금 그 필요도 없는 유명세 덕분에 할 일이 태산이야. 딴 데 가서 알아봐!”
사실 서 형사는 좀 전까지 서장실에 불려가서 옥신각신 실랑이하고 있었다.
“ 서장님. 아니 형님! 이거 너무 하신 거 아니에요? 바빠 죽겠는데 무슨 국회의원 경호까지 하라고 하세요? ”
“ 야, 김 의원이 자기가 신변의 위협을 받고 있다고 정식으로 신변 보호 요청을 해 왔는데. 그럼 아무나 붙여주냐? 젤 유명한 놈으로 붙여줘야 체면이라도 서지.”
“아니, 그래도…. 휴….”
서 형사는 한숨도 쉬어보고 큰소리로 떼를 써 보기도 했지만, 서장의 단호한 표정을 볼 때 지금의 결정은 조금도 바뀔 여지가 없어 보였다.
“ 내일부터 1주일간 휴가라 생각하고 죽은 듯이 딱 붙어있다가 와. 괜히 정치하시는 분들한테 이래라저래라 헛소리 지껄이지 말고.”
서 형사는 이렇게 서장의 명령으로 갑작스레 국회의원 경호업무를 보게 되었는데 그것은 싫은 놈을 앞에 두고 억지 미소를 짓는 일처럼 힘든 일이 될 것이 뻔했다.
그리고 이건 휴가도 아니고, 그 기간 동안 담당 사건을 빼주는 것도 아니다 보니 시간만 잡아먹을 테고 서 형사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었다. 그래서 짜증이 폭발하고 있을 때쯤 최 순경의 전화가 온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