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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남책 Oct 08. 2024

15장. 허지광 vs 세무사

정상적인 것이 귀한 세상. 

15장. 허지광 vs 세무사       


   

지광은 막상 세무조사를 받고 나니 정말 전문가 다운 사람을 찾고 싶어졌다. 

세무공무원에게 뒷돈이나 주자고 떠들어대는 그런 구시대적인 인간들 말고 진짜 세무의 전문가를 만나서 상담받고 싶었다. 그래서 인터넷도 뒤져보고 여기저기 소개도 받아 가며 진정한 세무사를 찾아 발품을 팔았는데 이렇게 힘들게 찾아가서 겨우 상담을 받아보면 거의 비슷한 대답에 뒷돈 해결책만 내놓는 무성의한 세무사들이 대부분이었다. 


힘들고 지쳐 포기할 때쯤 지광은 지인을 통해 한 명의 세무사를 더 추천받았는데 이 사람은 합법적인 방법으로 절세하는 정상적인 세무사라고 소개받았다. 


‘하아. 정상적인 사람이 이렇게 귀한 것인가?’ 

지광은 세상의 이치에 황당함을 느꼈지만 더는 지체할 수가 없었기에 그날로 바로 찾아가 상담을 요청했다.      

소개로 찾아간 이 세무사는 처음부터 지광의 기대에 딱 맞게, 정말 제대로 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드디어 제대로 된 사람을 한 명 찾았네.’ 

지광은 첫 상담만으로도 이미 편안함을 느꼈고, 그의 인상에서 풍기는 이미지는 남의 돈을 뺏거나 등쳐먹는 것과는 정반대의 느낌이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워낙 많은 상담을 경험하고 오다 보니, 지광은 잠깐의 대화로도 차이를 알 수 있었고 이내 자신의 현 상황에 대해 모든 것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 아이고, 걱정이 많으시겠어요. 사실 사람들이 물건을 좀 더 싸게 사려고 그냥 현금으로 사 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누락 된 매출일 텐데…. ” 

자신의 상황을 이해해주고 함께 걱정하는 말투에서 지광은 짧은 시간 만에 그를 신뢰하게 되었다. 


“ 보통 혐의사실이 명백할 때 이런 조사가 나오는데요. 아마 조사 시작 전에 불법행위가 포착된 상태였을 겁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는 법률로 대응하는 것보다는 혐의 금액을 최소화해서 납부세액이 줄어들도록 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뭔가 전문가다운 답변과 자신을 이해하고 안타까워해 주는 세무사의 말을 듣고 지광은 지체없이 이 사람에게 자신의 모든 업무를 맡기기로 마음먹었다. 


이처럼 사람을 신뢰하는 데는 그 사람의 인격이 중요한 것이지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지광은 신뢰라는 것에 대해 이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의문이 들었다. 과연 내가 지금까지 믿은 사람들은 계속 신뢰해도 되는 것일까? 난 믿을 만한 사람을 믿은 것이 아니라, 그냥 오래 만난 사람을 믿은 것이 아닐까? 지광은 잠시 자기를 돌아보며 그동안의 일을 회상했다.      


“ 근데 매출 누락은 어쩔 수 없었다고 해도 가공계산서를 발행하신 건 큰 잘 못이 맞습니다.” 

세무사가 얘기했다. 


연이어 현 상황을 풀어주는 세무사의 말을 듣고 나니 지광은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무엇이 문제가 되었는지 왜 내가 번 돈보다 더 많은 세금이 나오는지 조금은 수긍이 되었다. 자신은 세법의 영역에서 범죄자와 같은 상황이었다. 


“지금은 일단 가공으로 발행된 계산서를 세무서에서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가 중요한 상황이고요. 우리로서는 일을 빨리 마무리 지어서 밝혀지는 거래가 최소가 되도록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범위가 확대될수록 우리한테는 불리한데 과세 관청에서 가공계산서에 대한 처분은 매우 강하게 진행하는 편이거든요.”   

   

“ 네. 세무사님.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지광은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숙이고 존칭이 나오는 것을 보며 그동안 답답했던 마음이 편해지기 시작했는데 드디어 뭔가 일이 제대로 돌아가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며칠이 지나 세무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관할세무서에서 변 사장과 관련한 추가 자료를 요청한다는 것이었다. 순서대로 연락이 오는 것을 보니 김 사장에 이어 변 사장에게 가공계산서를 발행한 내역도 아마 오픈된 것 같았다. 다음은 또 누구일까? 


그나저나 지광은 걱정이었다. 세무서에서 자료를 요청하는 사람들과 죽어 나가는 사람들이 일치한다는 느낌이 자꾸 들기 때문이었다.

 ‘에이. 설마…. 아니겠지..’ 


그럼에도 주변에서 자꾸 죽어 나가는 사람들이 신경 쓰이는 것을 피할 수가 없었는데 지광은 혹시 내가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건가? 라고 계속 의문을 가지기 시작했다.      

     

“ 저, 세무사님. 죄송하지만 변 사장님은 얼마 전에 교통사고로 사망하셨습니다. ” 


“ 아이고.” 


세무사는 짧은 응답으로 그의 마음을 모두 표현했다. 하지만 사람이 죽는다고 사건이 덮어지는 것은 아니기에 이 거래가 실제 거래임을 입증할 수 있는 서류들이 필요하다고 했다. 


오히려 이 건은 변 사장과 직접거래 한 적이 없음에도 통장에 이체내용이 있다는 것이 문제였다. 따라서 지광은 어쩔 수 없이 변 사장과의 거래는 실제 거래이지만, 매출을 누락 한 것으로 소명할 수밖에 없었다. 

가공계산서 거래로 인정되는 것이 훨씬 리스크가 크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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