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기 싫은 일.
14장. 서형사 vs 김의원.
내비게이션을 따라 주소지 근처에 도착하니 양쪽으로 높은 담장을 둘러친 저택들 사이로 급경사의 오르막길이 나타났다. 골목은 차 두 대가 여유 있게 지나갈 정도로 꽤 넓은 편이었는데 사람이 한 명도 다니지 않고 골목의 입구엔 정장 차림의 남자 두 명이 뭔가를 지키듯이 서 있었다.
그들은 경찰차를 보고도 전혀 동요하거나 변화 없는 표정으로 저벅저벅 걸어왔는데 어떤 설명도 없이 대뜸 질문만 던졌다.
“ 어떻게 오셨나요? ”
그들의 질문에 서 형사는 황당함을 느꼈다. 그것은 이들이 이 넓은 골목 전체를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는데 요즘 세상에도 이런 것이 가능하구나. 라고 생각하며 일부러 퉁명스러운 말투로 대답했다.
“ 김 의원님 경호 건으로 왔어요. ”
서 형사는 기분이 별로였기에 알았으면 빨리 비켜서라는 말투였지만, 사실 안 비켜준다면 더 좋겠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혹시라도 진입을 거부당한다면 두 번 이상 묻지 않고 바로 차를 돌려 회사로 복귀할 생각이었기 때문이었다.
“ 아, 네 연락받았습니다. 들어가시죠”
당초 예상과 달리 확인 전화 한 번에 게이트는 너무나 쉽게 열려 버렸고 서 형사는 맡은 임무를 다하기 위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아 있는 담벼락이 있는 집으로 천천히 차를 몰았다.
‘ 드럽게 높네. 뭘 숨길 게 많은가 봐.’
“ 어이, 이게 누구야. 내가 이제 좀 발 뻗고 자겠구먼. ”
집안에 들어서자 양쪽 볼에 욕심이 덕지덕지 붙고 거미의 몸통같이 배불뚝이 몸매를 한 김 의원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눈빛이 꽤 날카로웠는데 인상만 봐도 딱 나쁜 짓을 할 것만 같은 이미지였다.
‘ 이 인간은 관상을 모르는 내가 봐도 나쁜 놈인지 금방 알겠네. ’
김 의원의 나쁜 인상을 보며 서 형사는 자기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렸는데 김 의원에게서 풍기는 기분 나쁜 향수와 찐득한 얼굴의 기름기는 그 불쾌함을 더욱 증폭시켰다.
“ 앞으로 1주일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
사실 영혼이 1도 없는 멘트였지만, 꼭 해야만 하는 말이었고 서 형사는 싫은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이 한마디를 운전 중에 수없이 연습해야만 했었다.
잠시 소파에 앉아 김 의원과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경호팀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다가왔다. 그는 경직된 표정으로 경호원들의 기본적인 움직임에 대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서류와 보안등급에 따른 명단을 전해주었는데 그 종이에는 김 의원과 가까이 접촉할 수 있는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었고 그들에 대한 간단한 소개와 함께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 여기에 적힌 분들을 제외하고는 저희 경호팀이 의원님 곁에 있을 때만 접촉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
“ 아, 네…. 저는 기본적으로 경호팀의 움직임을 따라갈 테니 1주일간 정보공유만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
김 의원이 뭘 그렇게 두려워하는지 모르겠지만, 서 형사는 자신의 처음 생각보다 경호 수준이 강했기에 그냥 그들을 따라다니며 관망하기로 마음을 먹고 있었다.
‘ 에라이, 그냥 푹 쉬었다 가자. ’
서 형사가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핸드폰을 꺼내서 게임을 시작하려 할 때였다.
현관을 통해 어떤 미모의 여성이 그 집안으로 당당히 걸어들어오고 있었는데 서 형사는 순간 반해버린 눈빛을 보내다가 이내 정신 차리고 자신의 본분에 맞게 그녀의 용모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사실 서 형사가 운이 좋아 사건을 잘 해결하는 것은 맞으나 남들이 잘 모르는 한 가지 능력이 있었다. 그것은 사람의 외모를 기억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이었는데 예전에 마약반과 함께한 소탕 작전도 잠시 스친 할머니의 외모를 잘 기억했기 때문이었다. 서 형사는 분명 남보다 사람의 얼굴을 잘 기억하는 능력이 있었고 그것이 좋은 운과 함께 조화를 이루는 것이었다.
미모의 여인은 일부러 염색했나 싶을 정도로 새까만 머리카락이 어깨 살짝 위까지 부드러운 커브를 그리며 찰랑이고 있었고, 눈썹부터 얼굴의 대부분을 가릴 정도로 큰 선글라스를 낀 채 날씬한 몸매와 어울리지 않는 풍만한 가슴을 드러내며 걸어오고 있었다. 누가 보면 외모에 반해 아래부터 위를 훑어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지만, 서 형사는 그녀의 걸음걸이 하나에도 집중하며 이미 눈여겨보고 있었다.
“ 저분은 괜찮습니다. 아까 드린 명단에 포함된 분입니다. ”
경호팀장이 서 형사의 불편한 시선을 눈치챘는지, 급한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 당당히 들어오길래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워낙 일반인의 느낌이 아니라서 괜히 시선이 끌리네요. 하하하. ”
서 형사는 멋쩍은 듯 크게 한번 웃으며 자신의 행동을 설명했지만, 수상할 정도로 아름답고 의문스러운 여인에게 끝까지 눈을 떼지 않았다.
“ 의원님의 정치를 보좌하며 뒤에서 궂은일을 해주시는 분입니다. 정치인들에게는 꼭 필요한 유형의 사람이죠. ”
경호팀장은 묻지도 않았는데 뭔가를 설명해야 한다는 느낌을 받았는지 스스로 대답했는데 막상 그의 부연 설명을 듣고 나니 서 형사는 더욱 놀라웠다. 저렇게 아름다운 미모의 여인이 도대체 어떤 궂은일을 맡아서 처리해 준다는 것인지…. 서 형사는 속으로 생각했다.
‘ 그냥, 김 의원 첩이라고 얘기해 인마.’ 하긴 저 못생기고 늙은 김 의원의 욕정을 풀어주는 거라면 궂은일이라고 할 만은 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서 형사는 짧은 치마를 입고 높은 구두를 신은 그녀의 매끈한 다리가 계단 끝으로 사라질 때까지 지켜봤다.
‘ 쩝, 이쁘긴 이쁘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