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사람들.
16장. 허지광 vs 최사장
“ 당신 때문에 내가 죽게 생겼어. 나 좀 도와줘”
인근에서 음향기기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최 사장이 문을 열자마자 갑자기 자신에게 영문도 모를 말을 내뱉고 있는데 얼굴에는 핏기가 하나도 없고 딱 죽기 직전의 느낌이었다.
“ 아니, 최 사장님, 뭐 땜에 그러세요? ”
지광은 당황하며 물었고 그가 대답했다.
“ 나한테도 곧 세무조사가 나올 수 있을 것 같아. 허 사장 창고에 있는 물건들을 내 매장으로 일단 좀 옮기고 우리 거래는 실제로 있었던 거라고 말을 맞추자. 응? 안 그러면 나 진짜 죽어 ”
지광은 갑자기 나타난 최 사장이 도통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 아니, 왜 그러시는 거예요? ”
지광의 말에 그는 세찬 손사래를 치며 그냥 자기가 하자는 대로만 하면 된다고 했다. 지광의 어떤 질문에도 계속 같은 말만 반복했고 다른 말은 들으려 하지 않았다. 지광은 하는 수 없이 그의 말을 들어주기로 했는데 그래도 뭔가 스토리가 필요하다고 본능적으로 느꼈다.
사실 컴퓨터 도매상과 음향기기 매장이 실제 거래를 2억이나 증명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었다. 세무조사가 나오지 않았다면 이깟 업종차이쯤이야 문제가 되지도 않았을 텐데, 막상 조사가 시작되고 나니 업종이 다른 것이 꽤 골치가 아파져 왔다.
“ 요즘 블록체인 때문에 서버를 대량으로 구매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제 말을 듣고 그것을 유통하려는 욕심에 최 사장님이 업종과 다른 제품을 왕창 구입했다고 하면 어떨까요?”
사실 전혀 터무니없는 얘기는 아니었다. 지광은 최근에 중국 바이어가 서버를 대량 구매했던 것을 떠올리며 그것과 비슷한 아이디어를 냈기 때문이었다.
“ 그러면 세무서에서 믿어줄까? ”
최 사장은 지광의 좋은 아이디어를 얻었음에도 애가 타는 표정으로 굳이 더 확신을 받고 싶어 했다.
그런데 사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지광은 이미 세무서에 최 사장과의 거래는 가공계산서라고 밝혔었는데 하필 자신의 꼼꼼함으로 인해 누락 된 매출과 그것을 메우기 위해 가짜로 발행된 계산서가 정확히 일치하는 상황이라 그 거짓말이 통할지 의문이던 것이었다.
지광은 세무서에서 다시 문의가 오면 그렇게 대답해 보겠다고 최 사장을 진정시킨 후 인사를 하고 돌려보냈다. 그런데 허겁지겁 자신을 찾아온 최 사장의 모습을 보며 왠지 모를 찝찝한 느낌을 받았다. 내가 진짜 뭘 모르는 게 있는 건가?
세무조사를 받는다고 자신이 곧 죽을 것처럼 얘기한 것이 너무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지광은 작은 한숨을 내쉬며 잠깐 다른 생각을 했는데 최 사장의 특이한 행동이 그 생각에 기인한 것으로 결론을 내리니 이내 마음이 편안해졌다. 얼마 전 자신도 잠들어 있는 애들을 바라보며 함께 모든 것을 끝내야 옳은지를 생각했던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세무조사는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것이었다. 이게 최 사장을 바라보며 지광이 내린 결론이었다.
나중에 세무서 공무원을 통해 알게 된 사실이지만, 최 사장은 이미 사망한 김 사장의 주요 거래처였는데 지광의 세무조사로 인해 그들의 거래가 가짜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세무조사가 파생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었다고 했다.
‘세무조사…. 말로만 들었지, 정말 무서운 것이구나. 나만 죽는다고 되는 게 아니었네.’
그 후로 며칠 후 최 사장은 급하게 물건을 정리하고 폐업을 했다. 지광은 주변의 지인들을 통해 최 사장이 어디 시골로 내려갔다는 말만 들었을 뿐 자세한 것은 듣지 못했다. 세무서에 실제 거래를 소명하려 시도했던 것이 잘 못 된 것인지, 진짜 자신이 모르는 누군가로부터 생명의 위협을 받은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지금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왠지 자신과 관련이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 김 사장이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