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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남책 Oct 07. 2024

12장. 서형사 vs 할머니

연금술사.

12장. 서형사 vs 할머니.          



강력반 서 형사는 매일 같은 설렁탕집에서 매일 같은 종류의 설렁탕을 항상 똑같은 방식으로 먹는다. 

뜨거운 뚝배기에 설렁탕이 나오면 고기를 건져 간장에 우선 찍어 먹는데 이는 국물이 식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도 있지만, 맛있는 고기의 맛을 온전히 따로 느끼고 싶기 때문이었다. 


그다음은 국수를 넣어 살짝 데친 후 깍두기를 한입 먹으면서 후루루 입에 넣고, 마지막으로 국물과 함께 밥을 먹는다. 이때도 밥은 절대로 국물에 말지 않고 따로 먹는다. 이상하게 국물에 말아 먹으면 맛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절대 남에게 같은 방식을 강요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들이 서 형사를 스스로 따라 할 뿐이었다.      



설렁탕을 한 그릇 후딱 비우고 불룩해진 배를 두드리며 서 형사가 얘기했다. 

“나랑 같이 산책하고 들어갈 사람? ” 

다들 서 형사의 눈길을 피하며 한 명씩 슬금슬금 일어섰다. 


“ 아니, 이것들아. 내가 뭐 잡아먹냐? 그냥 회사로 돌아가는 길에 골목길로 살짝 돌아가면 소화도 되고 좋은 거 아냐! ” 서 형사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짜증 섞인 목소리를 냈지만 다들 듣는 둥 마는 둥 엉덩이를 떼며 식당 입구 쪽으로 이미 나가고 있었다. 


“ 아니, 형님! 형님이야 실적 좋은 팀장이니까 그 정도 여유를 부려도 되지만 우리 같은 인간들은 눈치 보여서 빨리 들어가야 해요. 우리는 밥 먹고 절대 한 시간씩 산책 못 하지. 저희는 바로 잘려요. 진짜….” 평소에 가장 친하게 지내는 김 형사가 보다 못해 현실적인 이유를 몇 마디 내뱉고는 다른 이들의 등을 툭툭 치며 다들 어서 복귀하라는 신호를 줬다.   


   

무리를 지어 가는 동료 형사들을 바라보니 서 형사는 자신이 은근 왕따가 된 것 같기도 하고 묘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자기는 좋은 실적으로 남보다 나은 대우를 받는 것인데 이상하게도 오히려 왕따가 된 기분이기 때문이었다. 

‘ 젠장, 운이 너무 좋아도 문제네….’   

  

회사로 가는 길을 일부러 우회하면 아주 가파르고 오래된 골목길을 만나게 된다. 

서 형사는 이 골목길을 참 좋아하는데 운동도 되지만, 돌멩이가 드러난 길바닥과 옆으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들의 모습이 옛날 그대로라서 자신이 어릴 적 살던 동네를 추억하기에 딱 좋았기 때문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시 빠져 걷고 있는데 저만치 앞에서 어떤 할머니가 작은 손수레에 커다란 가방을 실어서 끙끙대며 끌고 가고 있었다. 도와줘야겠다는 맘은 먹었지만 가파른 길을 바라보니 뛰어갈 자신은 없어서 바로 포기했다. 

‘ 내 걸음이 더 빠르니, 자연스레 따라잡고 마주칠 때 도와드리자.’ 

서 형사는 할머니의 뒷모습을 보며 서서히 거리를 좁혀가고 있었다.      


“ 어이. 할매. 오늘은 양이 좀 많네? 고생이야. 킥킥킥 ” 

어떤 조폭 양아치처럼 생긴 젊은 놈 두 명이 할머니에게 아는 척 인사를 건넨 것이었는데 그게 인사인 건지 약 올리는 건지 분간이 안 됐다. ‘ 저거 싸가지 없는 놈들이네.’ 그런 생각을 하며 내리막길을 털래털래 내려오는 놈들과 눈이 마주쳤는데 서 형사는 자기도 모르게 눈을 바닥으로 깔아버렸다. 

‘에이씨, 쪽팔려. ’ 


평소 싸움에 크게 자신이 없는 서 형사는 자신도 모르게 강해 보이는 놈을 만나면 눈을 까는 습관이 있었는데 그 행동을 할 때마다 스스로 부끄러워하며 이렇게 자책을 했다. 

‘ 그래, 내가 뭔 싸움이야. 그냥 나답게 저 할머니나 도우러 가자. ’ 

체념하듯 오르막을 걸으며 고개를 드는데 할머니는 아까 그 젊은 놈들이 떠들며 나온 그 가정집 앞에 멈춰있었다.

 ‘ 그 싸가지들이 설마 친손주였나? 요즘은 애들 말버릇이 워낙 고약하니, 뭔 대화로 관계를 짐작할 수가 없네! 제길. ’ 

잠깐 생각하는 동안 할머니는 집으로 들어가 버렸고 오래간만에 선행할 기회를 잃어버린 서 형사는 털래털래 여유 있는 걸음으로 회사에 복귀했다. 


          

“ 팀장님. 아 왜 이렇게 늦게 오세요? 저번에 마약반에서 공조 요청한 사건 기억나시죠? ” 

김 형사가 헐레벌떡 뛰어오며 대뜸 얘기했다. 


서 형사는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는데 여유를 챙기려는 듯 재킷을 한쪽 팔에 걸치며 호흡이 돌아오길 잠시 기다린 후 대답했다. 

“ 어, 기억나지. 근데 왜? ”

“ 왜라뇨? 지금 현금 인출 한 일당 중 한 명의 CCTV가 확보됐어요. 점조직 중의 한 명일 수도 있지만, 그 일당인 건 확실합니다. 한번 와서 보세요. 화질도 선명하니 죽입니다. 흐흐흐” 

김 형사는 자신의 결과물이 만족스러웠는지 CCTV가 고화질인 것조차 자신의 업적으로 생각하는 것 같았다.

  

서 형사는 침착함을 유지하며 김 형사의 자리로 가서 모니터를 확인했다. 막상 화면을 보니 흰머리가 머리 전체를 덮을 정도의 백발노인이 CD기 앞에서 현금을 인출하고 있었는데 서 형사는 이런 사람도 범죄를 저지를까? 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며 눈을 찌푸린 후 약간은 성의 없이 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 서 형사의 눈이 갑자기 커지고 마치 호흡을 멈춘 것처럼 몸이 굳어졌다. 


“야, 멈춰. 다시 돌려봐.” 


서 형사는 그 노인이 고개를 들고 돈을 가방에 주섬주섬 넣기 시작하는 것을 반복해서 보고 있었는데 화면에 얼굴 전체가 또렷하게 잡혔기에 서 형사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계속 다시 돌려보고 있었다. 그 사람은 아무리 다시 봐도 아까 골목길의 그 할머니였기 때문이었다. 


“ 뭐야 이거? 확실한 거야? ” 


서 형사는 설마 그럴 리 없다는 듯 김 형사를 추궁하듯이 물었는데 주변에 기다리던 후배 형사들은 이미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 관련 자료를 서 형사에게 내밀었다. 


“ 그럼, 저 할머니가 진짜 자금책이고 그 일당 중 한 명이라는 거야? ” 


“ 아이고, 몇 번을 말해요. 이제부터 저 동네 CCTV 싹 수거해서 노가다만 시작하면 끝입니다. 이 사건은 우리가 해결한 거예요. 흐흐 ” 

김 형사는 앞으로 자기가 할 일을 얘기하며 자신 있게 어깨를 으쓱했다.     


김 형사의 말을 들었음에도 서 형사는 잠시 침묵을 지키며 한동안 생각에 빠졌다. 그 모습을 본 동료 형사들은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는데 다들 조용히 서 형사의 다음 말을 기다리는 눈치였다. 항상 저 침묵 뒤에는 뭔가 대단한 결론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 마약반에 연락하고 험한 상황에 대비해서 지원팀도 요청해. 출동주소는 내가 직접 찍을게. ” 

침묵하던 서 형사가 말문을 열었는데 그의 말을 들은 동료 형사들은 놀란 눈으로 경악했다. 


“설마, 이 노인, 아는 사람이세요? ” 

서 형사는 대답도 없이 CCTV를 다시 한번 확인하고 있었다.    


       

좁은 골목길에 파란색 줄무늬가 있는 경찰차들이 종류별로 들어섰다. 그중에는 커다란 스타렉스 차량도 있었기 때문에 골목길은 어느새 경찰차들로 가득 들어찼고 도주에 대비해 사이렌은 울리지 않았지만 이미 동네는 충분히 어수선해졌다. 


강력반 형사들은 지원팀과 함께 최대한 빠른 속도로 위치를 선점했는데 이는 서 형사가 그 집을 알고 미리 도주 경로와 지원팀 배치에 대해 조언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 저 뒤쪽에 3명, 저 위로 2명, 진압팀은 내 뒤로 대기해.” 

진압팀의 리더가 손을 흔들며 신호를 보냈고 그에 따라 전술팀이 일제히 움직였다.     

 

잠시 후 평범한 가정집의 문을 부수고 경찰진압팀이 먼저 들어갔다. 집안은 이내 빠르게 땅을 구르는 발소리들로 가득해지며 뒤를 잇는 형사들이 순서대로 진입했다. 집안에서 일부 남성들이 강하게 저항을 시도했지만, 계속 밀고 들어오는 경찰들의 압도적인 병력을 확인하고는 결국 순순히 손을 들었다. 


주방에 있던 할머니는 아무것도 모르는 척 연기를 하고 있었는데 서 형사는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주름이 가득한 그 손목에 가차 없이 쇠고랑을 채웠다. 여기저기 변명의 목소리와 저항하는 남자들의 쉰 소리가 들려왔지만 의외로 그 할머니는 어리둥절한 표정만 지을 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 이제부터는 증거를 찾는 게 관건이다. ’      


이미 많은 경찰이 소파를 뒤집고 천장을 뜯어내며 집안 곳곳을 뒤지고 있었지만, 이렇다 할 증거를 찾지 못하고 있었는데. 서 형사의 눈에 주방 뒤쪽 베란다 공간에서 작은 손수레에 얹어진 익숙한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 


“ 저거네. 야, 저 가방 열어봐.” 


서 형사의 확신에 찬 말에 김 형사가 가방을 열었고 그 안에는 비닐에 쌓인 백색 가루 50봉지가 나왔다.      

아마 내일 서 형사의 책상 위에는 ‘연금술사’라는 책이 또 한 권 추가될 것이다. 

그리고 주변에 있던 후배 형사는 이미 핸드폰으로 인터넷 서점에 로그인을 하고 있었다. 

아마 리본은 따로 준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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