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하지만 나를 지키는 사람이 되려고 하는 편

익숙함 속에 사라지는 설렘, 그럼에도 믿고 싶은 관계에 대하여

by 리사
우리는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잖아?


문 앞에 쌓인 택배 박스는
잠시나마 나를 설레게 한다.

하지만 포장을 벗긴 순간부터
그 물건은 곧 익숙함이 되어
그저 또 하나의 소유가 된다.

요즘 사람 사이의 관계도
이와 비슷한 흐름으로 다가온다.

몇 개의 어플만 켜도
이상형에 가까운 이성과
쉽게 대화하고, 쉽게 만날 수 있다.

(사용해본적은 없다)

사실 이런 방식이
머리로는 이해가 된다.
현명한 방법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직은 내 스타일이 아니다.


내가 누군가의 이상형 조건에 맞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점도 부담스럽고,
무엇보다 이런 만남들이 반복될수록
택배 물건처럼 권태로워지는 기분을 지우기 어렵다.


우리는 물건이 아니라, 사람이잖아?

그래서 나는
하나의 인연을 가볍게 넘기지 않으려 노력한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믿고 싶은 편이고,
만남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한다.


하지만 요즘 들어 점점 느끼는 것이
관계를 ‘진지하게 정의내리는 사람’은 생각보다 드물단거다.


그리고 때때로,
나의 순수함을 지키는 일이
나의 안전까지 위협하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벅차오르기도 한다.

그래도 나는 믿고 싶다.
택배처럼 쉽게 익숙해지지 않는,
그런 단단하고 깊은 관계가
이 세상 어딘가엔
아직 남아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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