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시간들
2025년의 추석은 하루 종일 비가 내렸다.
쏟아지듯 내리는 비는 여름을 떠올리게 하고,
부슬부슬 내리는 비는 봄이 오는 소식 같다.
토닥토닥 내리는 비는 가을이 익는 소리다.
나는 교실에서 창밖을 바라보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했다.
머릿속을 가득 채운 생각들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 묻혀버릴 것만 같았으니까.
교과서 속 여백이나 유인물의 빈 공간을 빼곡히, 혹은 덩그러니 채워 넣은 그림들은
나만의 언어로 표현된 생각의 결과물이었다.
그림의 주제는 대부분 운동장 위 햇살이 움직이며 만든 그림자들,
그리고 멀리 보이는 학교 앞 아이스크림 가게였다.
물론 많은 순간들은 ‘회피’를 위한 낙서였지만,
유독 물리 시간만큼은 이상하리만큼 수식을 적고 이해하는 게 즐거웠다.
비가 내리는 날은 늘 설렌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의 운동에너지가 바닥에 닿으면,
‘푝’ 하고 먼지가 옆으로 터진다.
그 터진 먼지가 은은히 공기 중에 섞이며 코로, 입으로 들어오면
곰팡이 냄새, 흙냄새, 비린내가 뒤섞인 그 비 냄새가 나를 자극한다.
많은 사람들은 비가 오는 날이면 우산을 쓴다.
하지만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비 오는 날이면 반바지에 얇은 방수 점퍼를 걸치고 집을 나섰다.
떨어지는 빗방울이 피부와 천 위로 닿으며 만드는 진동,
그 리듬이 내 귀를 간질이는 소리가 좋았다.
기억 속에 진한 냄새로 남은 두 시간이 있다.
하나는 장마철,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 속에서 반대항전 축구를 하고
젖은 옷을 선풍기 위에 걸쳐 놓고 듣던 수학 시간.
또 하나는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쏟아지는 소나기 속,
여덟 명의 남자 고객들과 함께했던 훈련 같던 서핑 강습 시간.
그때의 공기에는 이상하리만큼 꼬릿하고 짜릿한 냄새가 있었다.
길게 늘어놓은 이야기의 결론을 그려 보면,
결국 하나의 의성어로 귀결된다. **‘토닥토닥’.**
떨어지는 빗방울이 얇은 옷 위로 내려앉으며
내 몸과 귀를 감싸는 그 소리.
토닥토닥.
내가 좋아하는 시간의 1번은
얇은 점퍼 하나 걸치고 비 내리는 거리를 거닐며
그 무한한 ‘토닥토닥’을 듣는 순간이다.
내 모든 여행에는 언제나
얇은 점퍼와 빗속을 뚫고 걸었던 기억이 있다.
때론 친구가 말한다.
“야, 너 그러고 여자 뒤에서 걷지 마라.”
물론 나도 안다.
누가 본다면 좀... 공포스러울지도 모른다.
비 이야기를 마치며,
2025년 봄의 산불로 사라져간 모든 자연과 생명을 애도한다.
도시인으로서 너무 무심했음을 고백한다.
그 뜨거운 열기가 자연을 덮치고,
공포 속에서 사라져갔을 모든 생명들에게 위로를 보낸다.
그리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다시는 그런 불을 맞지 않을 수 있을까.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다시 깊이 고민해 본다.
부디 이 글이
‘내가 좋아하는 시간들’을
당신도 잠시 떠올려보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