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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쓰기라는 목표를 향한 발걸음으로 브런치 글을 쓴 지 한 달쯤 되어 갑니다.
때로는 시간이 빨라 주 2회 쓰기라는 목표가 어렵기도 하고, 또 실패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글의 방식을 바꾸어, 하나의 시처럼 휘갈겨 나가 보려 합니다.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군복과 총을 좋아하며 군인을 꿈꾸던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 소년은 시골에서 유년기를 보내며 논밭을 뛰어다니는 것을 좋아했지요.
시골에는 또래가 생각보다 적었고, 가장 친한 친구는 모래였던 적도 있습니다.
매일 유치원과 학교가 끝나면 집 앞 초등학교의 모래사장으로 달려가
모래를 파고, 다듬고, 쌓으며 시간을 보내곤 했습니다.
생각한 모양을 만들어가는 것이 일상이 되었고,
친구와 무언가를 하기보다는 혼자 앉아 모래를 파는 것이 삶의 큰 부분이었습니다.
소년은 자라며 중학교에서 진로를 고민하는 시간에 15년짜리 계획을 세웠습니다.
해군사관학교 진학
해군 장교
국방과학연구소 연구원
그는 커다란 꿈들을 적으며 그런 사람이 되리라 믿었고, 계획했습니다.
또한 절에서 스님을 통해 현역 해군 장교들과 인연을 맺으며
해군 장교라는 꿈이 차츰 가까워지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 여름, 그는 사고로 다리를 다치게 됩니다.
진료 중 의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스트레스 촬영 결과를 보여주며 말했습니다.
“인대 파열이네요. 군 면제입니다.”
‘뭐, 그럴 수도 있지. 군인이 되는 방법은 여럿 있을 테니까.’
그는 그렇게 스스로를 달래며 밤새 신체 규정을 뒤지고 관련 기사를 찾아봤습니다.
그러나 꿈은 무너졌습니다.
해군 신체 규정에 따르면 그의 부상은 임관이 불가능하다고 명시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10여 년 동안 그려온 꿈이 물거품이 되어버렸습니다.
아직까지도 그날의 허망함은 마음 깊은 곳에 흉터로 남아 있습니다.
친구들이 군대에 가는 모습을 볼 때면
미안하기도, 아쉽기도 했습니다.
“누구나 가는 곳인데 나는 못 가다니!”
바보 같은 자책감이 몰려들곤 했습니다.
다녀온 친구들은 장난스럽게 말하곤 합니다.
“너는 딱 짬 중사인데.”
그러나 또 다른 친구들은 말합니다.
“넌 군대 안 가서 진짜 다행이다.”
저는 그 말 속에서 깨달았습니다.
아마도 저는 군대라는 조직과는 맞지 않는, 자유로운 영혼이었던 것이지요.
저는 꿈속에서 꿈을 후회하기보다,
박제된 꿈을 안고 살아가는 행운을 얻은 것입니다.
사라진 오랜 꿈의 자리에는
내 첫 친구였던 모래놀이가 들어왔습니다.
어릴 때의 놀이 방식이 습관이 되고, 장기가 되어
지금은 건축을 전공하고 있습니다.
삶을 살아가는 길은 다양합니다.
내가 자연스럽게, 혹은 의도적으로 해온 모든 행위들이
삶의 자산이 된다는 사실을 조금은 일찍 깨달을 수 있었음에 감사합니다.
저는 여전히 그 여름 밤을 기억합니다.
담담한 표정과 멍한 눈빛으로 거리를 방황하며 거닐던 순간을요.
하지만 아직 꽃송이 같은 나이이기에,
저는 오늘도 새로운 꿈을 향해 항해하려 합니다.
그렇게 살아간다면, 그것이 곧 꿈에 다가가는 길일 테니까요.
지나친 어둠은 생각보다 빛 가까이에 있습니다.
한여름의 태양을 맨눈으로 바라보면 오히려 어둠이 찾아오듯,
저는 차분히 살아가려 합니다.